“정유라때도 이렇게 허탈하지 않았는데…” 분노·좌절

  • 강승규,유승진,정우태,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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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4 07:24  |  수정 2019-08-24 08:00  |  발행일 2019-08-24 제3면
조국 의혹 일파만파…커지는 국민 박탈감
20190824
고대생 진상규명 촉구 집회//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촛불 대신 휴대전화 불빛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입시와 관련된 온갖 특혜 의혹이 쏟아지면서 대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모두 분노하고 있다. 조 후보자는 특혜 의혹이 근거 없는 ‘가짜뉴스’라고 정면 대응에 나섰지만 악화된 여론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되레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힘들게 대학에 입학해 또다시 힘들게 취업 준비를 하는 입장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진다”고 호소했다. 또 정유라 사건에 빗대며 “현 정권에서 또다시 현대판 음서제도가 등장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딸 수시전형·의전원·장학금
모두 합법이라니 더 화난다”
“자격증·스펙·어학점수도 돈
출발선 자체 다르다” 하소연
“曺 임명땐 法 신뢰 땅에 추락”

SNS 상의 ‘경북대학교 대신 말해드려요’ 페이지에는 “누구는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가고, 누구는 명문 학교들을 시험 한 번 안 치고 간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입장에서 기분이 매우 나쁘다”라는 익명의 글이 올라왔고, 이어진 댓글들도 이에 동조했다.

경북대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조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인용해 “모두가 용이 될 필요없다 했지만 자기 딸만큼은 용이 되길 원했던 그”라는 풍자글이 올라왔다. 회원들은 이에 동조하며 “오늘의 조국은 어제의 조국과 싸운다”고 비판했다.

“스카이캐슬도 이 스토리로 만들었으면 욕 먹었다”라는 익명의 글도 등장했고, “청문회까지는 모두 다 보고 비판하려 했는데, 해명 하나하나가 거짓이니 신뢰도가 떨어진다. 다른 부처도 아닌 법무장관 후보자가 거짓말을 한다. 임명되면 법에 대한 신뢰는 땅끝 밑으로 추락할 게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대학교 커뮤니티에는 “조국 딸이 학사로 우리 학교에 입학했던 거라면 이렇게 난리지 않았겠지”라는 자조적인 글까지 올라왔다.

노진철 경북대 교수(사회학과)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쌓인 불만이 이번 일을 계기로 터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8~9년 전 벌어진 문제를 인지 못했다는 건 조 후보자 개인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인식된다. 현재 젊은 층이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수험생들의 반응 역시 쌀쌀했다.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씨(27)는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던 정부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교수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공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힘들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저처럼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청년이 많은데, 정치인 자녀들의 특혜 의혹에 좌절감이 든다”고 말했다.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지현씨(여·28)는 “조국 딸이 저랑 동년배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자격증 취득, 어학시험 점수 등 취업준비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고 있는 저로서는 이런 이야기 들으면 힘 빠진다"고 하소연했다.

평소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던 이들도 실망감을 내비쳤다. 정연수씨(33)는 “조국 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정의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던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는데, 뒤에서 그렇게 많은 청탁과 비리가 있다는 생각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60대 이상에서는 조 후보자 임명에 대한 반대의 뜻이 분명했다. 이순화씨(66)는 “누군가를 지적할 때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데, 조 후보자는 앞으로 자기 자신을 반성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정권의 이중성의 상징이 바로 조 후보자”라고 강조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 후보를 찍었다는 김모씨(66)는 “문제의 핵심은 탈법, 불법, 편법도 아니다. 조 후보자 바로 자신이다. 조 후보자가 그동안 보수 정치인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 왔는가. 그때 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의 불만도 확산되고 있다. ‘공정성’이 핵심인 입시에서조차 사회 고위층 자제에게 은밀한 특혜가 제공됐다는 현실에 허탈감을 느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달성군 현풍읍에 사는 김모씨(57)는 “이번 조국 사건을 보면 진짜 허탈한 마음과 세상은 다 똑같다는 생각뿐”이라며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우리가 한발한발 성실히 나갈때 저 사람은 백 발짝씩 나가는 것 같아 속상하다. 한편으로는 불법은 아닌 길로 피해가기까지 하니 화가 난다”고 했다. 이어 김씨는 “보통의 학생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논문 저자 등록, 외고 출신이 고려대 이과 수시전형, 의전 입학, 유급성적 장학금 등이 모두 합법인 것이 더 놀랍다”며 “이 나라에 공정, 공평, 정의란 가치는 서민들만 찾는 것 같고, 무엇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인 우리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학모 박모씨(60)는 “정유라 때는 이 정도로 허탈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자리는 체육 특기생의 자리여서 우리 아이같이 평범하게 열심히 공부해서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정말 힘 빠진다”며 “소위 최상위층이라고 생각되는 집단의 카르텔이 참 무섭고 두렵다. 특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국 후보자만큼은 절대 아닐 것이라고 믿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강승규·유승진·정우태·서민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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