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간섭주의자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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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1   |  발행일 2019-05-21 제30면   |  수정 2019-05-21
자신의 예측능력 과신하고
세상을 다 알고 있다는듯
의기양양한 ‘간섭주의자’
체감되지 않는 경제정책
후에 어떻게 책임질 건가
[화요진단] 간섭주의자
장준영 교육인재개발원장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든 위기를 초래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는 책임지지 않는 인간이다.’

대학교수이자 밀리언셀러 작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10여년 전 자신의 저서 ‘검은 백조(The Black Swan)’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월가의 현자’로도 불리는 그가 ‘인세르토 시리즈’를 완결 짓는 역작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을 최근 내놓으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탈레브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등에서 공부했고 20년 이상 월가의 파생상품 트레이더·위기관리 전문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한글로는 다소 낯선 ‘간섭주의자’. 탈레브는 책에서 ‘책임지지 않는 인간’을 그렇게 표현한다. 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세상문제를 보는 시각도 매우 날카롭고 현실적이다. ‘주식시장은 작은 문 하나만 나 있는 대형 극장과 같다’고 표현하는 그는 간섭주의자들의 특징을 ‘생각이 단편적이어서 다음 단계를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는 다차원인데 해석은 일차원이며 특히 그런 사실 자체도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정의한다.

이와 함께 탈레브는 지식인이나 권력자 중 상당수는 어느 한 부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전체로 확장시키는 오류를 일상적으로 범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점점 더 사태 변화를 예측하기 힘든 국제 형세와 복잡하고 민감한 주변 환경 속에서 무책임하게 떠들기만 하고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 간섭주의자들과 가짜 전문가들의 행태는 ‘제2의 블랙 스완’을 유발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궁극적으로 그가 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행동과 책임의 균형’으로 보인다. 탈레브는 배타적이면서 절대적인 권리를 추구하는 정치인이나 관료, 자신의 예측능력을 과신하는 기업인, 이익만 챙기고 손실은 회피하는 전문가, 세상을 다 안다는 듯 섣불리 덤비는 가짜 지식인 등을 간섭주의자들로 분류한다. 이들의 전횡이 몰고오는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나 구성원·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모든 언행에는 크든, 작든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러나 권력과 권한이 커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판단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아무런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으려는 부류가 어떤 특정 사안에 개입을 하고, 심지어 의사결정에까지 참여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잘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행여 잘못돼 부작용이나 후폭풍이 만만찮더라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 경제 정책과 상황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주변에는 많이 힘들다는 한숨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는데 청와대는 아니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정부의 경제정책 성과가 당장은 체감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 공식평가를 담은 기획재정부의 ‘최근 경제동향’(일명 그린북) 5월호는 “광공업 생산·설비투자·수출 등 주요 실물지표 흐름이 부진하다”며 상당히 결이 다른 분석을 내놨다.

물론, 통계와 현장의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의 폭을 훨씬 뛰어넘는 차이는 시각이 아예 다르거나 어느 한쪽의 입장이 엄살 또는 거짓임을 반증한다. 당정청이 소득주도성장론을 위시해 각종 경제정책을 흔들림없이 추진하고 있지만 당장 체감은 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 느낄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호기롭게 경제정책을 핸들링했던 인사들은 그때를 ‘2018년 하반기’라고 했다가 ‘올해 상반기’라고 말을 바꿨고 다른 자리에서 다른 일을 보고 있다.

지난 17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12월 결산법인의 1분기 실적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매출액은 늘었지만 영업이익·당기순이익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장사를 잘못한건지, 잘 안된건지 몰라도 아직 체감단계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장준영 교육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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