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IB 유감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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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1   |  발행일 2019-05-21 제30면   |  수정 2019-05-21
[취재수첩] IB 유감
이효설기자<사회부>

대구시교육청은 지난달 17일 스위스 비영리교육재단 IBO와 ‘IB 한국어화 추진 확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초 계획했던 ‘협약식’이 돌연 ‘기자회견’으로 바뀐 것이다. 행사 하루 전날 대구와 함께 IB(Intenational Baccalareaute) 교육을 추진 중인 제주시교육청이 ‘대구교육청은 예산이 없어 협약식을 못한다’는 입장을 한 매체에 공개적으로 밝힌 후 벌어진 사태다. 결국 16일 한밤 회의를 통해 ‘협약식을 못하니 기자회견을 하자’고 중지를 모은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교육청은 협약식 불발 사유에 대해 “협약을 위한 제도적 근거가 미흡했다”면서 미흡한 내용에 대해선 “IBO가 공개를 안 해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대구시교육청이 협약 체결 준비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서울까지 가서 망신을 당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물건(IB) 사러 서울(협약식) 간 사람이 돈을 안 들고 갔다”는 비아냥도 흘러나왔다.

IB는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의 대표 공약이다. ‘국제 인증 교육 프로그램’으로 토론 위주 수업, 논술·서술형 평가가 핵심이다. 평가에 대한 객관성 확보가 가능한 것이 가장 큰 메리트다. 교육의 틀은 국내 2015개정교육과정과 유사하다는 게 대체적이다.

강은희표 IB교육, 과연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일을 진행하면서 발생한 절차상 하자를 놓고 IB의 명운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IB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을 너무 많이 접해서다.

IB를 반대 혹은 기피하는 이들은 ‘벤츠’를 굳이 수입해야 하느냐는 입장이다. 우리 힘으로 좋은 국산 차를 만들면 되지 왜 남의 나라 비싼 차를 수입하냐는 것. 최근 학교에서 만난 한 초등교사는 “2015 교육과정과 IB의 내용이 거의 유사한데 IB를 추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이해 안 된다”고 지적했다. IB 도입의 필요성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다. ‘그동안 진행해 온 교실수업 개선을 꾸준하게 잘해 나가는 게 학생들에겐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에 대해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IB를 도입하는 것은 완제품 벤츠를 수입하는 게 아니다. 우리 힘으로 벤츠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IB의 적극 도입을 주문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구시교육청이 세련된 선진 문물인 IB를 도입하고, 그 노하우를 습득해 우리 학생들에게 더 맞게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일개 시교육청에 요구할 순 없는 일이다. 교육부에서 대구시교육청과 제주시교육청을 지정해 국가 차원에서 IB를 도입하고, 희망 학교들이 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순서다.

대구시교육청은 IB 관심학교·후보학교를 선정한 것은 물론 일부 초등학교에선 IBO의 승인을 대기 중이다. 승인을 받으면 교육청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 훗날 ‘IB, 잘 도입했다’는 칭찬을 들으려면 냉정해지자. 공약을 강행하기보다 한 템포 쉬면서 심사숙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강 교육감의 교육행정이 이제야 본궤도에 올랐다. 아직 숙고할 시간이 남아있다.
이효설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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