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정치적 고려의 후유증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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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5   |  발행일 2019-04-15 제31면   |  수정 2019-04-15

2016년 6월. 박근혜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고 대신 김해공항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대선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난이 나오자 하루 만에 ‘김해 신공항’이라고 호도했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관제탑을 새로 지으니 신공항이 맞다”고 강변했고 “밀양도 가덕도도 아닌 김해공항 확장안을 선택한 건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의 전환”이라고 자찬했다. 정략적 미봉책을 콜럼버스의 발상에 비기다니 ‘영혼 없는 공무원’의 농설(弄舌)이라 하더라도 도가 지나쳤다. 심지어 한 중앙 일간지는 ‘신의 한 수’라고 고무(鼓舞)했다. 하지만 신의 한 수가 아니라 ‘신의 꼼수’라는 말이 더 적확한 표현 아닌가. 당시 용역기관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도 ‘법적·정치적 후폭풍을 고려한 결정’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2016년은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겐 잔인한 시간이었다. 박근혜정부는 사전 통보도 없이 조 회장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내쳤다. 주변에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적게 낸 데다 최순실과의 알력 등으로 정권에 밉보였단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다. ‘뒤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진해운이 유동성 위기를 맞았을 때도 박근혜정부는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 세계 7위 해운업체는 그렇게 퇴출됐고 애써 쌓아올린 해외 네트워크도 함께 날아 갔다. 당시 1조원만 지원했으면 살릴 수 있었던 한국의 해운 경쟁력은 지금으로선 회복이 요원하다.

조양호 회장이 숙환으로 타계하자 일부 정치인은 “문재인정부의 간접 살인”이라고 힐난했다. 지나친 비약이자 견강부회다. 국민연금의 반대에 밀려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데 따른 좌절도 있었겠지만, 조 회장의 죽음은 가족의 ‘땅콩’과 ‘물컵’ 갑질의 나비효과로 보는 게 맞다. 한진해운 파산 또한 지병 악화의 원인이 됐을 게다.

원칙을 외면한 정치적 결정이 어떤 후유증을 낳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들이다. 한데 문재인정부의 주요 국책사업 역시 ‘정치적 고려’에 흔들리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마뜩잖고 원전해체연구소의 입지 결정에도 정치색이 녹아들었다. 사업의 백년대계보다 선거 승패에만 눈독을 들이는 구태와 정략은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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