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임시정부 100주년

  • 박진관
  • |
  • 입력 2019-04-12   |  발행일 2019-04-12 제22면   |  수정 2019-04-12
[미디어 핫 토픽] 임시정부 100주년
1922년 1월1일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신년 축하식에 참석한 임정요인들.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포털사이트 실시간뉴스 검색어로 임시정부 100주년, 임정 100주년, 정부수립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이 상위에 올랐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도 임시정부 100주년을 축하하는 글들이 넘쳤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11일 조국광복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됐다. 3·1운동 이후 태동된 만큼 환국 직전까지 삼일절을 경축일로 지정하고 매년 성대하게 기념했다. 4월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 도의 대의원 30명이 모여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했다. 상하이 임시정부를 제외한 이전 여러 정부들은 실질적으로는 임시정부였지만, 자체적으로 임시정부라는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다. 임시정부는 정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국명은 엄연히 대한민국이었다.

임시정부 위치는 처음 상하이 시내 프랑스 조계지역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훼방과 중일전쟁이 심화돼 계속 중국 서부로 이동했다. 1932년 항저우로 이사를 간 뒤 전장(1935)~난징·창사(1937)~광저우·류저우(1938)~치장(1939)~충칭(1940)으로 옮겼다. 해당 지역엔 아직 당시 건물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의 초석을 세운 임시의정원 제1회 의원은 김대지·김동삼·김철·남형우·백남칠·선우혁·손정도·신석우·신익희·신채호·신철·여운형·여운홍·이광·이광수·이동녕·이시영·이한근·이회영·조동진·조동호·조성환·조소앙·조완구·진희창·최근우·한진교·현순·현창운 등 29명이다. 이 가운데 남형우(고령·법무총장, 교통총장)와 김동삼(안동·국민대표회의 의장) 등이 지역 출신이다. 이후 경북 출신으로 김응섭(안동), 김창숙(성주), 김정묵(선산), 장건상(칠곡·외무차장), 손진형(경주) 등이 활약했고 대구 출신으로는 백남규(백남채의 동생)와 현정건(현진건의 형), 이상정(이상화의 형) 등이 참여했다.

임시정부는 입법 기관인 임시의정원, 사법기관인 법원, 행정 기관인 국무원을 두어 3권분립 헌정 체제를 갖추었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선출됐으나 1925년 미국에 ‘위임통치청원서’를 썼다는 이유로 임시정부로부터 탄핵됐다. 당시 단재 신채호는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라며 크게 분노했다. 이승만이 쫓겨난 뒤 박은식(2대 대통령)을 거쳐 정부형태가 국무령제로 바뀌면서 초대 국무령에 안동 출신 석주 이상룡이 취임했다. 이후 이동녕, 안창호 등이 하다가 주석제로 변경, 김구가 맡게 됐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나와 있다. 즉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가 한국 독립의 모태가 되고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 되었음을 명시한 것이다. 박진관 뉴미디어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