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팔팔순두부’대구점 미담 스토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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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5   |  발행일 2019-03-15 제41면   |  수정 2019-03-15
시련 딛고 절박함으로 끓여낸 ‘순두부’…최적의 간수로 구수함 살린 착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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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희망의 맘을 보태준 관계자가 모인 가운데 그랜드 오픈한 팔팔순두부 대구점. 어머니 김경희씨와 사장 박준홍씨가 후원자들이 식당에서 직접 만들어 전달해준 ‘덕분입니다’란 문구가 적힌 덕담지를 맞잡고 희망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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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생산된 콩을 갖고 최적의 간수만 사용해 콩 특유의 구수한 향미를 그대로 살려낸 팔팔순두부. 위에서부터 양념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백순두부, 청국장이 들어간 청국장순두부, 해물이 들어간 얼큰한 해물순두부.

◆아듀! 박진환 음식칼럼니스트

지난해 10월24일 지역 외식업계는 소중한 음식칼럼니스트 한 명을 잃었다. 그의 이름은 박진환. 대구음식문화를 선도했던 그는 단체급식 전문업체 <주>신천을 이끌면서 2003년부터 무려 15년간 초창기 고정코너인 ‘박진환의 별난집 별난맛’을 연재했다. 그는 그 무렵 발간한 자신의 4번째 저서인 ‘미식사전’ 출판기념회 문제로 기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운명하기 전 기자에게 난데없이 사업이 크게 난조를 보여 당분간 칼럼을 쉬어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직감적으로 그의 사업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는 대구의 첫 푸드칼럼니스트. 한때 대구는 음식 불모지였지만 그의 열정 덕분에 대구음식은 이제 전라도와 실력을 견줄 수 있게 됐다. 그는 기자와 함께 11년전 ‘대구십미(大邱十味) 선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구에서 태어난 로컬푸드 10가지를 푸드스토리마케팅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또한 ‘<사>대구음식문화포럼’ 산파역이기도 하다. 그는 경북대 외식산업최고경영자과정에 특히 애정을 가졌다. 우물안 개구리로 매몰된 지역 외식업자의 안목을 한 차원 제고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식당사장 CEO만들기에 올인했다.

고인은 상당한 빚을 남기고 갔다. 유족이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다. 외동아들 준홍씨에겐 버티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때 희망의 불빛 하나가 유족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대구 첫 푸드칼럼니스트 박진환
음식문화 선도, 스토리마케팅 등 열정
사업난 겪으며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
남은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상당한 빚
평소 경북대 외식산업경영자과정 애정
총동창회 주도 모금행사…온정 이어져

구미 팔팔순두부 박동주 대표
故人과 음식문화 배우며 각별한 친분
혹독한 실패 경험, 누구보다 아픔 이해
조리기술 故人 아들에 전수, 재기 도와

유족들 팔팔순두부 대구점 오픈
덴마크산 요거트 떠먹는 풍미 백순두부
해물·들깨·차돌박이·청국장 6가지 메뉴
가공의 맛 배격…순수 담백함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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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순두부 대구점의 밥상은 인공 재료를 철저히 배격한다. 특히 온정의 손길로 문을 열었는데 요리연구가 등이 만들기 까다로운 반찬 조리 노하우를 전해줬다.(위)홀 한편에 놓인 통나무 구유에 담긴 영천산 대두. 이것으로 순두부를 만든다.

◆유족살리기에 나선 사람들

고인의 죽음에 가장 충격을 받은 건 경북대 외식산업최고경영자과정. 특히 현재(5대) 총동창회장인 구미 팔팔순두부 박동주 대표와 전임(3대) 총동창회장인 나드리김밥 조송연 대표가 손을 잡았다. 둘은 유족이 삶의 희망을 잃지 않게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총동창회 주도로 유족돕기 모금행사를 시작했다. 지난 1월초부터 2월말까지 무려 5천여만원의 성금이 모금됐다. 덕분에 자본금 한푼 없는 유족들도 희망의 맘을 낼 수 있었다.

그무렵 상주 준홍씨는 웃음을 잃어버린 사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과거는 나름 잘나갔고 유복했다. 그는 10세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지방 출신 최초로 고려대 아이스하키부에 입학했다. 4학년 때는 팀의 주장은 물론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주장으로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한다. 졸업 후 스포츠경영에 관심이 있어 고려대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이란 주제로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대구로 내려와 모 중학교 체육교사로 2년 정도 일했다. 하지만 교육현장은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뭔가 분출하고 싶은 의지가 내면에 숨어 있었다. 사업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도 어렸을 때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운동선수가 되었기에 잠시 그 욕망을 내려놓고 지냈다. 그는 점차 아버지의 파트너로 사업 일선에 조심스럽게 나선다.

그렇게 해서 수성못 서쪽에 있는 레스토랑 ‘무무스’를 떠맡게 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역 외식업계 대부로 불리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전국 맛집은 물론 해외음식기행도 자주 다녔다. 아버지는 그에게 국내외 음식역사는 물론 오감을 이용해 음식에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남들보다 미각이 뛰어나기도 해서 나름 외식업을 하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 사업과 현실의 사업은 천양지차였다.

“사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외식 트렌드, 그리고 셰프가 아닌 제가 빛처럼 빨리 변하는 푸드트렌드에 맞춘 메뉴개발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기본에 충실한 메뉴보다는 사진에 잘 나오는 메뉴, 이색적인 메뉴 등에만 집중하게 됐죠. 모르긴 해도 SNS마케팅에 너무 경도됐던 것 같습니다. 겉멋만 들었던 거죠. 결국 음식의 기본이 무너졌고 경영악화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죠.”

◆러브콜한 팔팔순두부

패닉상태의 준홍씨를 위해 금오산 입구 팔팔순두부 구미 본사 박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순두부 기술을 가르쳐줄테니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제안이었다.

인천 출신인 박 대표는 44년전 구미로 와서 외식 외길을 걸어왔다. 뚱이네마실이란 쌈밥 전문점을 냈지만 경험부족으로 무려 2억여원을 날렸다. 죽을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들 유족의 슬픔이 어떤 강도인가를 잘 안다. 그는 그때부터 절망에서 희망을 잡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십시일반 정신으로 도와준다는 좌우명을 실천하게 된다. 이후 그는 ‘숲속이야기’란 한정식을 통해 확고한 기반을 잡았고 8년 준비 끝에 꿈에 그리던 팔팔순두부를 오픈하게 된다.

특히 고인과는 최고경영자과정 때부터 무척 친한 사이였다. 부족한 음식문화를 배우기 위해 툭하면 전라도로 맛기행을 떠났다. 8년전 어느 날 전라도 ‘화순순두부’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순두부 본연의 맛이 느껴졌다. 그는 언젠가 경상도에서 제대로 된 순두부 전문점을 성공시켜보겠다고 결심한다.

일단 영천, 의성 등에서 국내산 콩을 전량 매입한다. 매일 자신만의 온도와 화력, 그리고 간수를 투입해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식감·향미·염도 등을 가진 순두부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상당수 순두부는 간수가 너무 세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콩 고유의 담백한 맛까지 달아난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그걸 극복했다.

기본 순두부를 완성시킨 후 해물, 청국장, 들깨, 차돌박이, 짬뽕, 부대찌개 등 무려 20종의 식재료와 궁합이 맞는 별별 순두부 메뉴를 개발했다. 하지만 메뉴가 너무 많았다. 그게 오히려 단골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백순두부·해물·들깨·차돌박이·청국장 등 6가지만 낸다.

◆따뜻한 맘이 속속 답지

유족돕기에 많은 맘이 보태졌다. 일단 15명의 지역 외식업체 대표가 현금과 현물을 보내왔다. 특히 지역에 궁중백숙 신드롬을 일으킨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큰나무집 조갑연 대표는 성금은 물론 하루가 멀다하고 물김치, 우엉강정 등 자신이 갈무리하고 있는 반찬을 지원사격해줬다. 요리연구가 김숙란씨도 자신의 요리비법을 유족을 위해 사용하기로 맘을 먹었다.

드디어 지난 3월6일 그랜드오픈을 했다. 무무스 레스토랑은 팔팔순두부로 변했다. 이날 오픈식을 위해 유족을 도운 분들이 속속 가게로 왔다. 가게 번창을 위해 ‘덕분입니다’란 문구와 축하객의 덕담과 사인이 빼곡하게 적힌 ‘덕담지’도 즉석에서 만들어져 유족 모자에게 전해졌다. 유족은 이걸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 것이다. 눈시울을 적시는 어머니(김경희)의 표정을 미소로 받아준 준홍씨는 팔팔순두부 대구점 사장으로서의 첫 출발을 외치면서 어머니와 덕담지를 맞잡고 기념촬영에 응했다.

올케의 슬픔을 남기고 도저히 미국으로 갈 수 없었던 준홍씨의 고모도 유족을 위해 한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기로 했다. 20년전 요리를 너무 좋아해 서울의 유명 요리연구가 밑에 들어가 고급 한식과정을 익히기도 했는데 그때 그 솜씨를 지금 이렇게 사용하다니…. 고모는 유족에겐 또 다른 빛이다.

어머니는 현재 사장인 아들을 도우며 주방을 총지휘하고 있다.

준홍씨는 어금니를 악 물었다. 1개월간 구미 본사로 가서 순두부 요리 전과정을 익혔다. 박 대표가 준홍씨한테 각별한 맘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그의 아들과 준홍씨가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선후배 간이기 때문이다. 준홍씨는 매일 구미로 가서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콩을 물에 불려 삶은 뒤 갈고 거기에 적당량의 간수를 넣어 순두부를 빼내는 과정을 반복연습을 통해 익혀나갔다. 아이스하키 때 사용하던 그 근육은 무용지물이었다. 고된 작업을 견뎌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본금 한 푼 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모자를 향해 다가섰다. 그게 너무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래서 또 다짐하고 기도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어머니와 나의 삶도 없다.’ 그는 순두부 배우기에 배수진을 쳤다. 무무스 시절 트렌디푸드에 대한 욕망도 완전히 내려놓았다.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음식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이제 준홍씨는 매일 하루 두 차례 홀 한편의 작업장에서 순두부를 만든다. 오전 8시30분부터 10시, 오후 2시30분부터 4시까지. 그렇게 하루 3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순두부를 빼야 한다. 아직 서툴다. 박 대표는 “이제 목표치의 8분 능선에 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가난을 나라조차 책임질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따뜻한 맘이 모여졌지만 영원히 도움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팔팔순두부 미담 후기

기자는 다섯 가지 순두부를 다 맛봤다. 여느 순두부집과 맛이 확연히 달랐다. 과학적 간수관리 등 가공의 맛을 철저히 배격한 탓이다. 양념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8천원짜리 백순두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덴마크산 요거트를 떠먹는 풍미랄까. 숭늉이 끓고 있는 가마솥, 공짜로 주는 비지 등도 토속스러워 좋지만 전기밥통에 담겨 꺼내먹을 수 있는 옥수수 강냉이와 야관문차, 그리고 시중 빙과류와 차원이 다른 두부아이스크림(2천원)이 착한 먹거리를 찾는 손님의 입을 훈훈하게 감싸준다.

아버지를 여윈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주장이 어머니와 손을 잡고 순두부란 ‘희망일기’를 적기 시작 했다. 모두 그 대목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준다. 수성구 용학로 13. (053)762-7555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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