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기로에 선 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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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8   |  발행일 2019-02-18 제30면   |  수정 2019-02-18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단축
소득주도성장의 전부 아냐
보유세 강화와 복지 증세 등
구원투수 빨리 등판시켜야
분배→성장→고용 ‘선순환’
[아침을 열며] 기로에 선 경제정책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문재인정부 출범 20개월이 지난 지금 경제정책의 방향을 놓고 공방전이 치열하다. 지난주 있었던 한국경제학회 연차 총회에서 문재인정부가 채택했던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효과가 없으므로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실증 분석 결과는 조금도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지난 20개월 동안 문재인정부는 사실상 소득주도성장을 적극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의 간판 정책인 것처럼 간주돼 왔으나 그것은 잘못된 평가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의 적당한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수단이 될 수 있으나 과도한 인상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크다. 그래서 현재 상황이 나빠진 것이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 잘못된 것이지 소득주도성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제 실패한 주전 투수를 강판시키고, 참신한 구원투수를 빨리 등판시켜야 한다.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의 진짜 구원투수들은 아직 등판조차 못했다. 대표적인 선수를 들자면 보유세 강화로 불로소득 환수하여 부동산투기 종식, 빈사 상태의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대기업의 수탈 근절, 복지증세를 단행하여 소득재분배를 도모하고 사회안전망 갖추기. 이 세 가지는 우리 경제의 3대 고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이며, 그만큼 대대적 개혁을 요구한다. 비상한 각오와 의지로 달려들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역대 정부는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입으로는 좋은 말을 많이 하고, 크고 작은 여러 정책을 나열해 왔으나 한번도 본격적 처방을 시도한 적이 없다. 그래서 늘 악순환이고, 백년하청이다.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을’의 고통은 끝날 줄 모른다.

그래도 이번만은 달라질 줄 알았다.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그래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출범한 정부가 아닌가. 그래서 기대가 컸다. 게다가 소득주도성장, 포용국가를 내세우니 더욱 믿음이 갔다. 그러나 지난 20개월의 정책을 돌아보면 세 가지 문제에 대한 획기적 처방은 보이지 않는다. 개혁, 성장, 분배 개선을 이룰 호기를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재벌, 보수 정당, 보수 언론 등 개혁을 늘 반대하는 세력이 저지른 잘못이 워낙 커서 궁지에 몰린 이 시기에조차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도대체 언제 개혁은 가능한가.

소득주도성장이 효과가 없다는 보수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틀렸다. 소득주도성장은 불평등이 큰 나라일수록 강력한 효과가 있다. 지난 20개월 동안 효과가 없는 것은 소득주도성장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성장, 고용, 분배 지표가 모두 나쁘다. 최근 나온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상위 10%의 소득몫이 드디어 50%를 넘었다고 한다. 이는 불길한 숫자다. 미국이 1929년 대공황 때, 그리고 2008년 금융공황 때 이 숫자가 50%에 도달했다. 이처럼 불평등이 심한 상황에서는 분배 개선이 급선무다. 분배가 개선되면 성장이 따라온다. 성장이 올라가면 고용은 마지막에 따라온다. 분배 개선을 통한 성장, 이것이 바로 소득주도성장이다. 현재의 우울한 경제상황은 소득주도성장의 등판을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예사 정책이 아니고, 근본적 개혁이다. 미국의 뉴딜이 바로 그러했다. 뉴딜은 전형적 소득주도성장이고, 성공하지 않았던가. 미국뿐만이 아니고 대다수 선진국에서 전후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온 것은 바로 뉴딜의 효과였다.

지금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을 놓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요구가 많다. 특히 규제완화, 기업가 기살리기, 혁신성장 요구가 거세다. 그러나 대개 번지수가 틀렸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 기살리기 같은 로렐라이 언덕의 달콤한 목소리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재벌에 투자 애걸하는 것은 더더구나 안 된다. 지금은 만시지탄이지만 비상한 각오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의 한국판 뉴딜, 즉 대대적 개혁에 나설 때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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