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성준 2군 감독

  • 명민준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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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6   |  발행일 2019-02-16 제22면   |  수정 2019-02-16
“기량 성장 서두르다 치명적 부상…2군 육성에도 ‘느림의 미학’ 필요”
현역시절 완급조절 투구로 97승 달성
은퇴 후 코치생활…2015년 친정 복귀
1군 지원군 역할…부상 방지가 최우선
넉넉하고 체계적인 선수 훈련 스케줄
유망 신인들 조기 승격도 가급적 배제
[Y인터뷰]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성준 2군 감독
13일 경산볼파크에서 성준 삼성라이온즈 2군 감독이 미소짓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야구만큼 속도의 가치가 높은 스포츠도 없다. 느리게는 130㎞대에서 빠르게는 160㎞에 육박하는 속구가 투수손에서 뿌려져나오면 비로소 야구가 시작된다. 이 공을 받아친 타자의 타구속도는 어마무시(?)할 정도다. 주자를 잡기 위한 야수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송구과정도 빠르기는 마찬가지다. 이 같은 야구판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있다. ‘느림의 미학’. 속도전에 울고웃는 야구판에서 나온 역설의 극치다. 두산 유희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구속이 느림에도 불구하고 리그를 대표하는 선발투수 중 한 명으로 군림하고 있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에도 ‘느림의 미학’이 존재했다. 성준 삼성라이온즈 2군 감독이다. 성 감독은 선수시절 투구 사이의 시간 간격이 길기로 유명했다. 포수의 사인을 본 뒤에도 모자와 로진백을 한참 만지다가 타자가 집중력을 잃을 쯤에야 130㎞대 느린 공을 손에서 떠나 보냈다. 보는 이들은 답답했지만, 이것은 영리한 야구를 펼치던 성 감독의 심리전이자, 그의 필살기였다. 1986년 삼성에서 데뷔해 1999년 은퇴할 때까지 100승에 3승 모자란 97승을 찍은 기록이 그를 대변한다. 은퇴 이후 SK에서 코치로서의 삶을 시작한 성 감독은 2015년 삼성으로 돌아와 육성군 투수 코치를 지낸 뒤 2016년 2군 감독으로 부임해 선수단의 육성을 총괄하고 있다. 선수시절 동료들과 삼성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지만, 변화의 파도 속에 이제 동료들은 다 떠나고 성 감독만 남아있다. 몰락을 맛본 삼성이 강도 높은 체질 개선과 변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성 감독이 여전히 팀에 남아있는 비결은 특유의 ‘느린 삶’ 때문이라고 야구인들은 말한다. 지난 13일 경산볼파크에서 성 감독과 만나 그의 야구인생과 요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은퇴 이후 2001년 SK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다. 2015년 다시 삼성으로 돌아왔을때 상황이 어땠나.

“2014년말에 당시 류중일 감독이 ‘인자 고향와야죠’ 하면서 삼성 코치직을 제안했다. 선수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김)성래형과 밑에 김용국, 이종두, 강기웅 등이 다 삼성에 있으니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생활을 SK에서 오래 했는데, 성준하면 ‘푸른색’ 아니겠는가. 1999년 롯데에서 은퇴하기는 했지만, 선수시절 10년 이상을 삼성에서 보냈다. 그래서 류 감독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여 삼성에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동료들이 많이 나갔다. 외롭지 않은가.

“외롭지만 할 수 없지, 뭐(웃음). 선수시절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 나이가 들고도 일도 함께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아쉽다. 그렇지만 원래 위로 갈수록(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외로운 것 아니겠는가. 동료가 없지만 지금은 내가 2군 선수단의 관리자니까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 입장이다. 젊은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그들과 융화돼야지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성장을 꾀할 수 있다.”

▷평소에 선수, 코치들과의 소통을 강조한다고 들었는데 같은 맥락인가.

“과거에는 사실 선수와 코치 간의 소통이 좀 어려운 분위기였다. 코치가 지시하면 선수가 그대로 따르기만 했다. 하지만 소통에 ‘Yes’만 있으면 안 된다. 선수가 의문을 갖는다면 ‘Why’를 외쳐야 한다. 선수들에게 가급적 많이 물어보고 소통하라고 하고, 코칭스태프도 나에게 적극적으로 얘기하라고 한다.”

▷소통이 잘됐으면 선수들과 정도 많이 나눴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대규모 방출 당시 안타까운 마음도 컸을 듯하다.

“떠나서 아쉽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김동호는 미국 유학 후 서울 강남에서 레슨하고 있다고 들었다. 최원제는 미국으로 떠났고 또 몇몇은 독립리그에서 뛴다고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타 팀과 계약한 선수 중에 우리가 방출시킨 선수들이 가장 많다고 들었다. 이게 야구선수의 운명 아니겠는가. 2군에 있을 때는 팀이 밀어주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을 때 집중해야 꽃을 피울 수 있다. 방출을 피해 현재 여기 남아있는 선수들도 그렇고, 앞으로 여기 올 선수들도 새겨들어야 한다.”

▷선수단 규모가 줄어든 만큼 2군의 역할도 커졌을 것 같다.

“1차적으로 2군은 부상을 절대적으로 방지해야 한다. 1군은 부상을 당하면 치명적이고, 2군은 부상을 당하면 성장이 불가능하다. 1군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에서 선수가 부상을 입으면 지원군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바람에 신인지명에서 좋은 선수를 많이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선수가 없다보니 떡잎 괜찮은 어린선수를 1군에 올렸다가 부상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올해부터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오키나와 훈련 참여도 젊은 선수를 가급적 배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사정으로 인해 올해 입단한 선수 중 몇 명이 오키나와에 갔다. 주목할 만한 선수가 있다면.

“아무래도 원태인이 1차 지명자다 보니 즉시 전력감 아니겠는가. 실제로 1월에 경산 볼파크에서 훈련을 지켜봤는데 좋은 자질을 가졌더라. 부상을 입지 않고 제 역할을 해준다면 신인이지만 분명히 팀에 보탬이 될 선수다. 나머지 선수는 아직까지 1군에 자리잡기는 무리가 있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아보고 성장하라는 차원에서 오키나와로 보냈다.”

▷2군 감독은 실질적으로 선수를 육성하는 역할이다. 1군 감독들처럼 언젠가 승부에 주력하는 감독을 맡고 싶을 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오직 우리 선수들을 키우고 지원해주는 데만 주력해야 한다. ‘언젠가 1군 감독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도 내 마음을 흔들 수 있다. 오직 2군 선수들만 생각한다.”

▷선수시절 100승을 끝내 채우지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가.

“왜 아쉬움이 없겠는가. 나도 나름대로 100승을 채우고 마무리지으려 했는데 역부족이더라(웃음). 리그 역사적으로 100승 투수의 의미가 크다. 특히 나는 에이스 급은 아니지만. 나 같은 보통선수도 100승을 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14년간 프로 무대에 뛰었던 점에 만족한다. 대학 졸업 후 등번호 14번을 달면서 ‘선수생활 14년 동안 해보자’라고 다짐했는데, 그걸 이뤄낸 점에 만족한다. 지금도 뒷자리 4를 사랑한다. 14번이 없어 현재는 84번을 달고 있다. 가급적 등번호에 4가 들어가는 것을 찾게 됐다.”

▷선수시절 얻은 ‘느림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만족하는가.

“팬들이 붙여준 것이니 거부하지 않는다. 원래 느리게 행동하는 편이긴 한데, 투구를 그렇게 한 것은 알려진 대로 나름대로의 작전이었다. 14년 프로생활을 하는 동안 해가 지날수록 구속도 떨어지고, 타자들을 상대하기 버거워졌다. 초기에는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 밀어붙였는데 구위가 떨어지면서 체인지업도 배우고 커브도 배웠다. 말년에는 그것도 힘들어서 인터벌 싸움을 건 것이다. 타자들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준비과정을 길게 가다가 빨리 가기도 하고 심리전을 펼쳤다.”

▷지금도 느림을 실천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제는 선수들의 성장을 위한 느림을 추구하고 있다. 선수들이 다치지 않도록 얼리웜업 시간을 40분 정도 준다. 모든 스케줄도 정확히 시간을 맞추도록 했다. 과거에는 선수들이 다 모이면 곧바로 스케줄에 돌입했는데, 그러다보니 후배선수들이 시간에 쫓기기도 했다. 그래서 모두 시간을 체계적으로 넉넉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정확한 시간에 맞춰 스케줄을 진행한다. 식사시간도 10분 늘렸다. 최근 경산볼파크는 식단을 건강식으로 바꿨는데, 선수들이 좋은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서 그대로 흡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준 것이다.”

▷끝으로 성준에게 느림이란.

“나에게 느림은 ‘생각을 조금더 하는 것’이다. 나는 때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즉흥적으로 하지 않는다. 늦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도록 한다. 느린 만큼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있기에 올바른 길을 택할 수 있었다.”

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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