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 진술보다 우위에 있는 검사 신문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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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0 00:00  |  수정 2019-02-10
20190210

최근 사법농단 의혹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소환되어 27시간을 조사받았다. 이 때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를 검토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36시간 이상이 걸려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불리할 수 있는 부분을 점검하고 질문내용을 통해 검찰이 어떤 증거를 가졌는지 추론해 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필자가 보기엔 훨씬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최고의 법률전문가인 전 대법원장이 변호인 입회하에 검찰조사를 받고 조서를 작성하였음에도 조서 열람시간이 더 길었던 것은 현행법상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와는 달리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자신의 진술내용은 나중에 법정에서 이를 부인하더라도 유죄판단의 증거(증거능력)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따르면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가 말한 대로 작성된 것은 맞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경우 그 조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종잇조각이 되어 버리지만,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이와 같이 주장하더라도 자신의 진술이 조사 당시 진술한 것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다고만 진술한다면 실체적 진실과 관계없이 무조건 그 조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즉, 법정에서의 진술보다 검찰에서의 진술이 더 우위에 설 수 있는 이상한 구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경찰 조사가 이루어진 피의자에 대한 불필요한 이중조사를 하게 되고 그 결과 조사대상자에게 불편함을 줄 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부족한 수사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연간 500억~1천500억원에 이르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검찰은 객관적 혐의에 대한 증거확보 보다는 비교적 증거수집이 용이한 피의자의 자백 진술을 받는데 치중할 수밖에 없어 무리한 자백강요로 인한 인권침해 우려가 매우 높다. 종종 검찰에서 조사받던 대상자가 조사 중 또는 조사를 마친 직후 자살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 상반기 사이 무려 79명) 그 이유 중 하나가 무리한 자백강요에 기인한 것임을 쉽게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공개된 법정에서 증거를 조사하여 이를 바탕으로 피고인의 유·무죄 및 양형을 판단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법관은 사건에 대해 신선하고 정확한 심증을 형성할 수 있고 피고인에게 증거에 관한 직접적인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공정한 재판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판 외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특별히 취급하여 법관이 심증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한다면 공판중심주의 원칙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서류만 모아오던 그 동안의 재판은 재판이 아니다" "검사들이 밀실에서 받는 조서가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 "검찰 수사기록은 던져버려라"라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발언 또한 이러한 취지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검찰은 업무 부담의 증가 및 혐의 입증의 어려움 등을 토로하나,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 차등을 두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조서재판의 폐해를 극복하고 공판중심주의의 실현을 위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도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와 동일하게 피고인이 내용을 인정하는 경우에 한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2018년 11월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19년 6월 말까지 사법개혁을 위한 입법화 논의를 지속해 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한 문제 또한 심도 있게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김형률 (칠곡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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