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청은 당신 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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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31 00:00  |  수정 2019-01-31
20190131

 지금 우리 식구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문제에 답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100년 넘게 살아왔던 집이 낡고 좁아서 새로 지으려는데, 먼 동네 사람들이 자기 마을에 아주 넓은 빈 터가 있으니 그 땅을 돈 주고 사서 새 집을 지으라고 부추긴다. 그래서 우리가 왜 이 자리에서 옛터를 지키며 살고자 하는지 설명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버스와 지하철이 주변에 많아 살기 편리하고, 오래 산 덕에 찾아오고 싶은 사람들이 우리 집이 어디냐 물으면 길거리 아무나 저기라고 가르쳐 준다. 우리 식구는 집과 함께 아름답고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다. 윤기가 반질반질한 계단을 오르며 난간을 쓰다듬으면 마치 집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다. 크고 화려한 집은 아니지만 당연히 여기가 우리 집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구시민을, 우리 집은 대구 시청을 말한다. 2013년 당시 버려져있던 전매청을 대구시청으로 바꾸는 계획안이 대구시 건축전 대상을 받았다. 불과 6년 전 일이다. 그동안 우리에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2016년 경북도청이 안동시와 예천군에 으리으리한 새 청사를 지어 이사했고, 전매청 주요 건물을 허물고 그 위에 1천4세대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섰고, 새 정부는 도시재생뉴딜정책을 발표했다. 1910년대 지금의 동인동 자리에 터를 잡은 대구시청은 1990년대 지금의 시청사 건물을 지었다. 시청 기관의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건물은 노후되어 신청사를 건립하는 것이 화두에 오른 건 이미 몇 년 전 일이다. 금년 1월1일자로 ‘대구시 신청사 건립을 위한 조례’가 공포되었지만, 시민들은 정치인들과 언론의 입을 통해 대구시청을 각자의 동네에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시대에, 시민사회의 시대에,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시대에, 어느 도시도 이런 중요한 사안을 이렇게 함부로, 이렇게 가볍게 이야기하는 곳은 없다. 대구시는 ‘조례에 따라 전담 부서를 만들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이후 올해 하반기까지 각 구굛군으로부터 건립 후보지신청을 받고 시민참여단 250명의 평가와 투표를 통해 신청사 부지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공론화 위원회는 20인으로 구성되는데 공무원 3명과 시의원 3명은 당연직이고, 나머지 14인도 시의회 의장과 시장이 추천하게 되어 있다. 미국은 1982년 국가이슈포럼을 설립하여 공공숙의에 기초하는 정책형성과 집행을 위해 30개 주, 33개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주요 현안에 대한 이슈 북을 제작해 공공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는 법적 독립기구로서 대규모 사업 계획 확정 전(前) 숙의토론을 통해 사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갈등의 예방과 최소화에 기여하고자 운영되고 있다. 대구시청 신청사 공론화 위원회의 구성 그 자체의 결함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렇게 거대한 사안을 시민들에게 정확히 알리지 않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 중심부에 시청이 존재한다는 것, 현재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가는 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 시청이 공무원의 집이 아니라 시민의 집이라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시청은 왜 존재하는가. 시민을 보살피고 시민의 말에 귀 기울이기 위해 존재한다. ‘시청’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건물이 아니라 시민 각자의 정신과 삶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어떻게 이 논의의 한가운데로 시민들을 끌어올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한다. 대구시청이라는 건물이 구상되고 태어나는 과정은 우리가 살 곳, 즉 우리와 다음 세대의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철학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비장하고도 희망의 마음으로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한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나의 큰 주장이/ 무한한 시간 끝에서 시작하여/ 지금도 그것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무수한 제안을 갖고/ 그 주장이 저항하려고 한다.’
 큰 주장, 그것은 바로 품위 있게 살고자 하는 시민의 주장이다.

 김 현 진  (SPLK건축사 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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