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SKY 캐슬, 저급한 자들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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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4   |  발행일 2019-01-24 제30면   |  수정 2019-01-24
저급한 사람의 행동을 모방
그것을 희극 본질로 보기도
드라마속 학벌 제일주의는
어리석고 나쁜 신념이 원인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여성칼럼] SKY 캐슬, 저급한 자들의 왕국
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 연출평론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비극 외의 문학, 즉 희극과 서사시 등을 ‘우스꽝스러운 것들’이라 불렀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의 또 다른 저서 ‘수사학’에서 “우스꽝스러운 것들에 관해선 따로 ‘시학’에서 정의해 놓았다”라고 밝히고는, 막상 ‘시학’에는 다루지도 않았다(혹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학 제 2편’에서 다루지 않았을까 추측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미디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것들은 고귀한 비극과 감히 함께 다룰 수 없는, 그 존재를 인정조차 하기 싫은 형편 없는 장르로 간주한 것임에 틀림없다.

코미디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거부감은 그가 내린 비극의 정의를 보면 그 뿌리를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보통보다 우월한 사람의 행동’을 모방한 것이라 정의했다. 그렇다면 그 대척점에 놓인 희극은 ‘보통보다 저급한 사람의 행동’을 모방한 것일 터. 우월한 사람의 그 자체로 진지하고 장엄하며 완전함을 갖춘 행동을 모방한 비극은 인간에게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마침내 감정의 정화에 이르게 하는 데 반해 저급한 사람의 가치 없고 불완전한 행동을 모방한 희극은 인간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아리스토파네스와 셰익스피어에게서 보듯 코미디는 엄연히 고유의 본질과 가치를 갖춘 영역이다. 희극은 평균보다 못난 인물, 즉 도덕적으로 비열한 인물들의 행위를 꼬집어 낸다. 그리고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에 대한 관객의 웃음이 실소로 바뀌는 순간, 희극적 서사는 현실을 통째로 바꾸는 대단히 강력한 에너지를 갖게 된다. 14세기 중세 이탈리아 어느 수도원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과정을 그린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도원에 비밀리에 소장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 그 재미나고 우스운 이야기에 빠진 수도사들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며 읽다 책장에 발린 독약으로 인해 죽게 된다는 설정은 희극이 세상에 유포되었을 때 교회와 기득권층이 누리는 기존 권력과 영향력이 위태로워질까 염려했던 당시의 불안증을 근거로 한 것이다.

코미디에 내포된 현재의 통념과 사회의 지배질서와 권력체계를 뒤엎을 잠재력은 비판과 풍자에서 비롯된다. 비극은 슬프지만 슬픈 이야기가 비극이 될 수 없듯, 코미디는 웃음을 유발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곧 코미디는 아니다. 웃음 뒤에 삶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속 시원한 풍자가 담겨있어야 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해부하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려내는 메스에 웃음이라는 당의(糖衣)를 입힌 것이 코미디인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TV 드라마 ‘SKY 캐슬’도 예리한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코미디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에서 남편은 왕으로 모시고, 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워 자신들의 계급과 자신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를 물려주려는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욕망을 샅샅이 파헤친 이야기에서 대학입시제도와 극성 학부모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극 중 영재와 예서의 가정에 벌어진 불행은 입시코디네이터로 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특정 대학, 특정 학과를 들어가야만 인생의 행복이 보장된다는 어리석은 믿음, 나쁜 신념이 원인이다. 그런데 이 미친 짓거리를 구경하고도 입시코디네이터를 구하려 문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하니, 힘이 빠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성찰과 깨달음은 실천에서 완성되는 것이니, 부디 뛰어난 두뇌와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실은 얼마나 천박하고 어리석은 괴물인지, 그들이 벌이는 세력다툼은 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실컷 비웃으시길. 그리고 저급한 인간들의 왕국에서 시선을 돌려 진정 품격 있는 인간들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시길.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 연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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