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까닭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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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3   |  발행일 2019-01-23 제30면   |  수정 2019-01-23
자기 하고싶은 말만 내뱉고
상대에겐 귀 기울이지 않아
말이 많으면 실언도 많은 법
입과 달리 귀 두개인 것처럼
많이 듣는 사람으로 변하자
[동대구로에서]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까닭

지난해를 뒤돌아보면 나는 정말 말이 많았다. 여기서 들은 말을 저기로 퍼 나르고, 저기서 들은 말에 살을 붙여 또 다른 말을 생산해내고. 또 어떤 때는 누군가를 흉보고 깔깔거렸다. 그 많은 말 가운데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보다는 험담이 더 많았다. 말을 하면서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을, 상대방이 들었다면 화를 냈을 말을 많이 하고 살았다.

나는 왜 그렇게 말이 많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의 험담이나 흉을 많이 봤던 것일까. 물론 이유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야기에 오르내리는 사람의 언행이 바르지 못했고 나와 의견대립을 가졌으며 그 사람이 먼저 나의 행동을 비난했기 때문에…”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이 나에게 그런 비난의 대상이 될 정도의 나쁜 짓을 했던가? 오히려 내가 그 사람이 기분 나빠 할 행동을 먼저 저지르지 않았던가?

분명한 것은 나의 입을 통해 나간 많은 말은 무책임했고 그릇된 것이었다.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의 험담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도 맞장구를 치고 그 사람을 술안주로 난도질했다. 누가 나랑 의견이 엇갈렸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보다는 대립각을 세우며 내 의견을 더 관철시키고자 했다. 그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윽박지르고, 그 사람의 생각을 나의 발 아래로 놓고 평가절하했다.

나중에 혼자서 곱씹어 보면 그 사람의 말이 더 합당하고 내 생각이 틀렸지만,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곤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이고 내가 상대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행동했다. 역사학자 앞에서 얼치기 주워들은 역사를 들먹이며 아는 체하고, 수십년 동안 도정을 이끌어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공무원에게 어쭙잖게 옆에서 주워들은 몇가지 풍월을 아이디어랍시고 내밀고 지적했다. 상대방은 얇은 내 지식과 경험을 탓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더 우쭐해졌다. 나는 마치 귀가 하나고 입이 둘인 것처럼 떠들어댔고 행동했다.

여러분도 ‘나’와 같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새해에도 ‘나’같은 사람이 넘쳐나고 있다. 진중하게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지식을 뽐내고 내 것이 옳다고 세치 혀를 놀린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려고 한다.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할 두개의 귀는 모두 닫아버렸다. 서슬퍼런 칼날같은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페이스북·유튜브·인스타그램 등 들어야 할 두개의 귀보다 자기 말만 내뱉는 입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니 큰 문제다. 실제로 많은 정치인은 이때다 싶어 개인방송을 시작하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아마도 더 떠들어대기만하고 남의 말은 듣지 않으리라.

‘말이 많아지면 말로 인한 실수도 그만큼 더 많아진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일단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사람에게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까닭은 말하기보다는 듣는데 더 힘쓰라는 말이다. 더 많이 듣고 말을 할 때는 진중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올해 나는 내가 말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참을성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두배로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전영 경북본사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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