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상상력으로 그린 인간 내면의 영적인 이미지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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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3   |  발행일 2019-01-23 제22면   |  수정 2019-01-23
기억공작소 기획전시 김성룡展
"볼펜에 골병들어 물감으로 그려"
특유의‘마술적 리얼리즘’표현
20190123
김성룡 작
20190123
김성룡 작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에 그림만 전시되기는 오랜만이다. 하얀 벽면에 걸린 그림들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높은 천장의 전시공간이지만 허전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압도적이다. 공기를 묵직하게 가라앉힌다.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치열하고 예사롭지 않다. 정작 작가는 평온한 표정으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을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이 더 치열하게 와닿는다. 그만큼 그림이 강렬하다.

김성룡 작가. 필기구인 유성 볼펜을 이용해 이미지를 정밀하게 그려온 작가로 유명하다. 1992년 유관순·명성황후를 그렸다. 역사적이고 서사적인 작업을 했다. 작가는 “당시 혼(魂)들의 느낌을 그렸다. 상상력으로 역사화의 새 장르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볼펜을 수만 번 그으며 집요하게 형상을 만들었다. 볼펜으로 만든 이미지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도 줬다. 작가는 스스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했다.

그렇게 볼펜에만 매달리던 작가는 어느 순간 물감을 쓰기 시작했다. 볼펜으로만 그리다 골병이 들었다는 게 작가의 토로이다. 작가는 “몸이 안 좋아졌다. 귀신들이 꿈에 나타나기도 하고, 더 이상 볼펜으로 역사화를 못 그리겠더라. 볼펜 기술이 정점에 달하니까 싫증도 났다”고 말했다. 기억공작소에는 대부분 색이 들어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 “자유롭게 표현하는 수단으로 색을 썼다. 볼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색을 사용하게 된 또 다른 배경을 설명했다.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상력을 통해 인간 내면의 영적인 감성을 터치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4·3유적지인 ‘섯알오름 학살터’를 보고 그린 그림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현장에 집중하기 위해 아크릴 물감에 섯알오름 학살터의 풀잎이나 먼지까지 섞었다. 질감이 두터워졌고 현장감도 훨씬 진해졌다.

‘반 고흐의 숲’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덜란드 출신의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작가는 “사물을 굉장히 집중해서 바라보는 흔치 않은 화가”라고 했다. 중국 청나라 초기의 화승 석도도 언급했다. 작가는 “석도는 ‘무법이 유법이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사물이나 풍경을 재해석하는 능력이 비범하다”고 말했다. 사물이나 풍경을 제대로 보고 싶어하는 작가의 바람이 오롯이 그림에 담겨 있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이 바라본 것을 그렸지만, 관객들은 그림에서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스스로 아마추어라는 말도 했다. 작가는 “골병이 들었을 때 요양했던 충남 강경의 한 마을에서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진 할머니가 도리깨를 내리치는데 강경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 할머니에 비하면 나와 나의 그림은 아마추어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마추어 화가(?)’의 그림이 참 놀랍다. 3월31일까지. (053)661-3500

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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