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탈원전도 광화문처럼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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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2   |  발행일 2019-01-22 제30면   |  수정 2019-01-22
탈원전 논란에
여당 중진 의원까지 가세
대표 공약이던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백지화처럼
탈원전 정책도 수정해야
[화요진단] 탈원전도 광화문처럼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청와대가 최근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공약 중의 하나였던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청와대 산하 광화문시대위원회 유홍준 위원은 지난 4일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 장기적인 사업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2021년 준공되는 만큼 문 대통령 임기 중 집무실 이전은 불가능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도 “준비를 마치는 대로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거듭 약속할 만큼 핵심 공약 중 하나를 파기한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와 차별화, 청와대로 상징되는 권위적 대통령 문화 청산 차원에서 이 공약을 내세웠고, 표를 얻는 데 적잖은 효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려면 경호와 의전을 수행할 공간도 확보해야 하는 등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어서 이 공약이 지켜지리라고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공약을 지켜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안되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보다는 낫다. 공약을 했더라도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포기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대표적 사례로 ‘탈 원전 공약’을 꼽을 수 있다. 이 공약은 현재 원전지역 주민, 야권, 원전관련 기업, 원자력학회는 물론 여권 일부로부터도 재검토나 수정을 요구 받고 있다. 야권은 국민투표 필요성까지 주장하고 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나쁨 수준의 초미세먼지 발생도 탈원전 재검토 명분이 되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원자력계 신년인사회 특별강연에서 “노후 원자력과 화력발전을 중단하고 신한울 3·4호기 공사는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즉각 원전 문제는 2017년 공론화위원회에서 끝낸 사안이라 더 이상 논의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송 의원은 “당시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문제만 한정해 다뤘다”며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도 공론화에 부치자”고 반박했다. 여당 중진인 송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탈원전 정책을 철옹성처럼 고수하고 있는 현 정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달 13일부터 시작된 탈원전 반대와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는 21일 현재 33만6천여명이 서명을 했다. 서명운동본부측은 21일 이 서명부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 17일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여부와 에너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공론화위원회 설치를 촉구했다. 급기야 울진 원자력마이스터고 학생들이 대통령 앞으로 ‘원전이 위험하다면 저희가 잘 배워서 관리를 잘 할게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의 손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창원상공회의소회장도 청와대에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 자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업들이 고사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건의했다. 창원에 원전관련 기업이 밀집돼 있다. 이처럼 탈원전 정책 수정 요구가 빗발쳐도 현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흐름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면서 원전 수출은 지원하겠다고 한다.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면 원전기업도 사라질텐데 누가 원전을 수출한다는 얘기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세먼지가 심각한 최근, 한국에 머물렀던 미국 MI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충족하면서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고 탄소배출도 않는 발전원은 원전밖에 없다. 대기오염은 잠재적 원전사고보다 훨씬 더 현실적 위협”이라고 말했다. 미세먼지 위협 속에 탈원전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다.

탈원전 정책이 신앙이나 이념이 돼서는 안된다. 광화문 집무실 공약을 용기있게 포기했듯이 탈원전 공약도 이제라도 궤도를 수정할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탈원전 문제를 푸는 방법은 국민투표밖에 없다.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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