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와 한국의 사반세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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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1 07:35  |  수정 2019-01-21 07:35  |  발행일 2019-01-21 제24면
[문화산책] 나와 한국의 사반세기3
가와타 쓰요시<미술작가>

나가사키대와 경북대의 교류전은 1988년부터 시작됐다. 은사인 이카와 세이료 교수가 도쿄의 마키·다무라 화랑의 주인 고(故) 야마기시 노부오 선생에게 한일 학생들의 교류전을 하고 싶다고 상담해 경북대 고(故) 박남희 교수를 소개받은 것이다. 박 교수는 난색을 표하는 다른 교수들을 설득해 1988년 2월 대구에서 제1회전, 7월에 나가사키에서 제2회전이, 이후 2년에 한 번 개최됐다. 3학년 때는 창원대와의 교류도 시작돼 나는 매년 교류전에 참가하고 2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게 됐다.

국제교류전 참가는 나를 미술에 열중시켰다. 2학년 2학기부터 그림을 그만하고 입체작품을 시작했다. 재료는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석고와 FRP(섬유강화플라스틱)를 선택했다. 이러한 재료는 회화 작업실에서는 취급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은 야외에서 했고, 익숙하지 않은 작업은 다음날 아침까지 걸렸다. 문득 내가 언제 잠을 자는가 하고 생각했다. 수업 중에 자고 있었다. 실기 수업에서는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 3학년부터는 이론 수업을 많이 이수했다. 대학 성적표를 보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과목들이 많다.

1996년 3학년 말 공모전서 대상을 받고 상금 100만엔과 파리왕복항공권을 받았다. 이 일은 작가 생활을 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미술에 관해 너무 빈약했다. 자신의 표현을 뒷받침하는 토대도, 기술도, 논리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4학년 여름 나는 두 번째 경북대와의 교류전을 나가사키에서 맞이했다. 그때 경북대 학생들에게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물어보니 역시 “우리는 미대생, 너희는 교육학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은 당시의 나에게는 기분이 나빴지만 현재 내가 지도하는 미대생도 그만한 자부심을 갖기를 바란다.

교류전을 통해 나는 이카와 교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 학생과 교류하면서 이국 문화를 배우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를 접하는 것으로, 비로소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카와 교수는 학생에게 적극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게 했다. 학생의 작품은 아직 서툴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도 부끄러운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발표해서 자신의 작품이 다른 작품 속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카와 교수의 미술교육이었다. 한국에 살지만 나의 작품에 한국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나의 작품에서는 더욱 일본적인 요소가 나와버리고 마는 것이다.가와타 쓰요시<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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