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음악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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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7 07:55  |  수정 2019-01-17 07:55  |  발행일 2019-01-17 제20면
[문화산책] 음악이 필요해

7년의 독일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가 느꼈던 문화적 충격은 여러 가지였다. 눈에 띄게 늘어난 고층 아파트, 실내공간의 화려한 장식과 포장재, 마트나 카페 어디든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음악 등. 이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뭔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었다. 귀국한 지 10년이 넘어 이제 내 감각도 다소 무뎌졌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음악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도서관·화장실에도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그곳에서 여전히 불편함을 느낀다. 모차르트, 베토벤 같이 익숙한 작곡가의 음악은 물론이고, 언젠가는 드보르작의 교향곡도 들었던 것 같다. 잔잔한 곡이 나올 때는 그나마 다행인데 웅장한 곡이 흐르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린다.

물론 클래식 음악 중에는 파티나 만찬 때 들어도 될 만한 편안한 음악도 있다. 세레나데 혹은 디베르티멘토로 불리는 곡들은 대부분 위와 같은 목적으로 귀족사회의 여흥을 위해 작곡되었다. 모차르트 시대의 작곡가들은 이런 음악을 작곡하는 것에 익숙했고, 귀족들은 그들의 응접실이나 연회장에서 음악가들의 연주를 들으며 파티를 즐겼다. 작곡가의 생각이나 철학 따위는 당연히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은 우리도 이런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이 시기에 유럽사회는 또 다른 음악문화를 맞이한다. 바로 공공음악회다. 지금의 콘서트홀 같은 공공의 장소에서 경제력이 있는 시민도 함께 즐기는 공공음악회가 등장했다. 그러면서 연주되는 음악은 역동적으로 변화했고, 교향곡과 콘체르토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웅장한 음향, 긴장과 이완을 넘나드는 극적 구성이 음악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작품의 길이나 규모, 양식 면에서 유럽 음악사는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음악 역사에서 풍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첫 작곡가가 바로 베토벤이고, 그의 시대에 유럽사회는 음악 작품을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회장에서 우리가 떠들지 않고 음악에 집중하는 이유다. 청중은 작품이 가진 긴장과 이완에 공감하면서 작곡가가 표현하는 생각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런데 이런 역동적인 음악들을 우리는 휴식과 담소가 필요한 카페에서도 끊임없이 듣는다. 심지어는 자연의 소리가 더 아름다운 공원 산책로에도 스피커를 설치하고 교향곡을 흘려보낸다. 공연장에 있어야 할 음악이 카페와 공원에서 긴장감을 더하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 가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일상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맥락의 이해가 없는 무차별적인 적용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모든 것은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정은신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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