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 82년생 김지영을 기리며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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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7   |  발행일 2019-01-17 제13면   |  수정 2019-02-20
지영이가 꿈꾼 ‘여혐없는 세상’ 언제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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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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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즈음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이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 두 가지가 선명하다. ‘미투(Me Too)’ 운동이 뜨거운 이슈가 되며 하나의 흐름을 이룬 요즘 시대에 나온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점이 하나다. 또다른 하나는 책이 매우 잘 읽힌다는 사실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주인공 김지영의 삶을 담백하게 제시할 뿐 서술자-작가가 어깨에 힘을 주고 나서서 의미를 부여하거나 해설을 늘어놓거나 하지 않는다. 남녀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현상에 대한 비판이든, 성 평등 관련 주장이든, 선동적이거나 교설적인 언급이 전혀 없다. 이렇게 독자가 불편해하거나 비판적으로 몸을 사릴 여지를 주지 않는 상태에서 실제 사태를 객관적으로 제시할 뿐이다. 이러한 서술전략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작가로 10여 년간 활동한 조남주의 관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82년생 김지영’의 소설 형식상의 특징은 참신하고 매우 효과적이다. 주인공 김지영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 곧 자신의 친정어머니나 남편의 전 애인으로 빙의하는 증상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김지영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 내용을 의사가 소개하는 형식으로 작품이 짜인다. 정신과 의사가 서술자로 되어 있는 것인데, 그 결과 이 소설은 건조하고 객관적인 진술 형식 속에서 사태의 사실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방식은 페미니즘소설의 선구적인 작품 중 하나인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1977)만큼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성차별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제시해 준다. ‘이갈리아의 딸들’의 경우 남녀 양성에 대한 의식이나 성 역할 분담 체계를 실제 사회와 정반대로 설정하여 대단히 근본적이고 그만큼 급진적인 느낌을 준다. 이와는 달리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남성 또한 ‘그랬구나’하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자잘한 성차별들을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리얼하게 제시한다.


성희롱·성차별…여자가 겪은 아픔
100만명 넘는 공감에도 해결 안돼

과거비해 성평등의식 향상됐지만
‘성별격차 수치’ 세계평균 못미쳐



예컨대 이런 식이다. 명절맞이 가족 모임이 남자 쪽 집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상황에 대해 친정어머니로 빙의된 김지영이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18쪽)라고 시어머니에게 말하는 대목. 명절에 친정에 가지 못하는 이 땅의 며느리 치고 이 말에 100%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다. 김지영의 일생 내내 확인되는 남녀차별은 구체적이고 보편적이다. 장남인 남동생에 대한 할머니와 고모들의 선호에 따른 남녀차별, 학창시절에 여자 아이가 여자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괴롭힘이나 행실 관련 꾸짖음, 대학에서 횡행하는 여성 비하적인 언행, 직장에서의 성희롱적인 상황들, 신혼시절 임신을 앞둔 고민에서 보이는 부부 간의 의식 차이와 여성이 잃을 것이 많은 상황에서 확인되는 실제적인 차별 등이 그러하다.

‘82년생 김지영’이 드러내는 이러한 성차별적인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도 지난 시대의 것이 아니다. 1950~60년대 생은 물론이고 90년대 생도, 2000년대 생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재 진행형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이 적지 않게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개선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2018년 12월25일자 JTBC 뉴스 ‘교육현장 속 성차별’이 알려 주는 내용을 보자. 대구 지역 교사를 위한 성교육 직무연수에서는 양성평등 의식에 어울리지 않게 성역할을 구분 짓고 성희롱 발생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내용을 담았다가 문제가 되었으며, 서울시의 청년 대상 일자리 교육 교재는 여성을 대상으로 액세서리나 립스틱 색상이 적합한지를 묻는 체크 리스트를 제시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직업인 특강에 여학생만 신청하도록 제한해 성차별에 대한 무감각을 보이기도 했다. 같은 해 인천일보의 12월27일 뉴스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교직원 대상 성·인권 교육 담당 부서가 부재하고 별도의 연수 프로그램도 없다 한다. 교육 현장이 이러하니 사회 일반이야 오죽하랴 싶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마치 우리나라가 성 평등 국가이며 우리 사회에 성차별은 없다는 듯이 주장하고 있다. 오세라비의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좁쌀한알, 2018)가 근래의 대표적인 예다. 이 책은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남성 혐오를 앞세우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남성과의 연대에 바탕을 두는 여성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는 괜찮아 보이지만 책의 실제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줄기는 다음 두 가지다. ‘한국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워마드 식의 남성 혐오, 여성 우월주의’라는 등식이 하나고, 유엔 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대로 대한민국은 여성차별이 없는 성 평등 국가라는 주장이 다른 하나다. 앞의 등식은 ‘한국의 보수주의자= 일베’라는 주장만큼 폭력적인 난센스여서 따로 논할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가 성 평등 국가라면서 세계경제포럼(WEF), 즉 다보스포럼의 ‘세계 젠더(성) 격차 보고서’를 부정하고 유엔 개발계획(UNDP)의 보고만 주목하는 문제를 따져보자.

유엔 개발계획은 각국 여성들의 생식 건강(출산 10만 명당 사망하는 여성의 수), 여성 권한(중등교육 이상 교육받은 여성 비율), 노동 참여(여성 경제활동 참여율)를 측정한다. ‘여성에 대한 문명화의 정도’를 국가 간에 비교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에 해당한다. 오세라비는 이 수치를 보고 대한민국이 성 평등 실현 국가라고 판단하고, 여성들이 세계 최상위 수준의 교육을 받고 경제활동도 하므로 남녀차별 같은 말은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성 평등이나 남녀차별의 상황이 어떠한가는 여성과 남성의 상황을 비교할 때 확인되는 것이지 여성의 상황만 보고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라는 수치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많은 여성이 바로 그 경제 부문에서 남성과 비교하여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따져야 마땅한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남녀의 격차를 확인하는 것이 다보스포럼의 보고서다. 여기서는 경제 참여·기회, 교육성과, 보건, 정치 권한 등 4개 부문에서 ‘성별 격차’를 수치화하여 국가의 등급을 매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2018년의 경우 149개국 중 115위이고, 2017년과 2016년에는 144개국 중 각각 118위, 116위였다. 남녀의 격차 면에서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국의 남녀가 갖는 질적 수준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러한 지적이 우리나라의 남녀 차별이 심각한 상황임을 이 보고서가 알려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남녀차별적인 상황이 ‘82년생 김지영’이 해를 넘겨 가면서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이다. 딸이 살아갈 세상이 자신이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으며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작가 조남주의 말이 넓고 긴 울림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쪼록 이 소설이 좀 더 널리 읽혀, 우리 사회에 성 평등이 실현되는 데 의미 있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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