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와 한국의 사반세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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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4 08:03  |  수정 2019-01-14 08:03  |  발행일 2019-01-14 제22면
[문화산책] 나와 한국의 사반세기2

1994년 7월10일 나가사키대 일행은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많은 학생이 교류전에 참가했지만 김일성 사망보도 직후의 한국 방문이 되었다. 공항의 인상은 어둡고, 총을 든 사람들이 경비를 하고 있었다. 경북대 버스로 대구로 이동했다. 고속도로에 보이는 자동차는 모두 똑같아 보였다. 일본에 적극적으로 한국이 소개된 것은 월드컵 전후부터다. 당시 나는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한일 학생들은 그룹으로 나뉘어 교류했다. 하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서로의 영어 발음이 너무 다른 것이다. 모국어의 발음체계로 이른바 외래어 발음으로 서로 이야기하니 통할 리가 없었다. 한국인의 ‘B’발음이 일본인에게 ‘P’로 들리고, ‘~ing’는 한국에서는 ‘ㅇ’으로 발음하지만 일본인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겨우 “바이킹”이라는 말을 알아 들어, 아무래도 거기에 가는 것 같았다. 일본인에게 ‘바이킹’은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서비스를 뜻하는데 도착한 곳은 수성유원지이고 ‘바이킹’이라는 놀이기구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글자를 못 알아봤다. 일본 학생 8명쯤 식당에 들어갔다. 8종류의 요리가 나왔는데 마지막으로 주문한 선배에겐 군만두가 한 접시 나왔다. 어쩐지 싸다고 생각했다. 간판도 못 읽기 때문에 식당인 줄 알고 들어가 보니 돌을 파는 집이었고, 무사히 식당을 찾아 들어가서 주문해도 먹는 방법을 몰랐다. 주문한 것이 비빔밥인 듯 밥과 나물이 따로 나왔다. 나물을 반찬으로 밥을 먹고 있으니 식당 아줌마가 나물그릇에 밥을 넣고 양념을 넣어 비벼주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을 찾아왔다. 하지만 이 교류전에 참가한 것이 내가 한국에 살며 미술에 열중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그 전시에 출품한 내 그림을 부끄러워했다. 내 작품에 비하면 경북대 학생들의 작품은 당시 내 눈에 모두 훌륭하게 비쳤다. 그림은 다 잘 그렸고, 조각은 철을 용접한 기계와 인체를 융합한 듯한 작품이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미대생의 작품이라고 실감했다.

지난달 나는 갤러리moon101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갤러리가 위치한 방천시장에는 추억이 있다. 교류기간 중 어느 날 나는 혼자 산책했다. 우선 숙박하던 그랜드호텔에서 동대구역 쪽으로 걷고 다음 네거리에서 신천 쪽으로 꺾어 언덕을 올라가니 대백프라자가 보였다. 지도도 없었던 나는 길을 잊지 않도록 언덕을 내려와 수성교를 건너 도착한 곳이 바로 방천시장이었다. 나는 캔맥주를 하나 사서 대백프라자로 향했다. 기온이 39.5℃를 기록한 정말 더운 날이었다.

가와타 쓰요시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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