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블로그] 2019 외식트렌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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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1   |  발행일 2019-01-11 제41면   |  수정 2019-01-11
스토리가 있는 문화 소비 ‘콘셉트가 있는 메뉴’…SNS 세포마켓·간편식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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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한국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을 추적해 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는 마케터는 물론 언론으로부터도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 2019 가이드북을 통해 올 한해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마케팅을 압도하는 ‘콘셉팅’을 전면에 내세웠다.

밥상이 식탁이 되기까지 부엌이 키친이 되기까지 우리의 외식트렌드도 급변해왔다. 이젠 외식의 변화가 단순히 식당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모두 영향을 준다. 그런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모든 게 급변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인터넷공화국으로 변신한 탓이다. 2009년부터 처음으로 보급된 스마트폰. 지난해 7월말 가입자 수가 5천만명을 넘어섰다. 사실상 1인 1스마트폰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지난해 2분기 온라인 쇼핑 거래액 중 모바일 쇼핑 거래액 역시 16조4천억원으로 60%의 비중을 넘어섰다. 그시절 오프라인 마케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온라인마켓(홈쇼핑)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타자욕망을 더 섬기던 국민은 자기욕망에 충실한 ‘시민’으로 진군했다. 그들은 틈새식당을 찾아 인증샷이 있는 식사를 하고 그 과정을 SNS에 소상히 포스팅했다. 그들은 급기야 촛불문화의 주역이자 SNS채널 1인미디어 대표주자가 된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 ‘트렌드 코리아’
소비가 공급 주도하는 ‘소비자 세상’
“가성비·품질·브랜드를 따지기보다
콘셉트가 있나, 재미있느냐가 중요”

팔로어 모아 입소문 ‘1인 1마켓 시대’
실시간 현장 포스팅…단기간에 붐업
SNS에 능한 사업가, 유튜버도 한몫

홀로족 급증…간편 먹거리 초대박
반려견 배려한 외식업 성장세 전망

아이디어 식품, 소셜미디어상 공유
해시태그 화제통한 ‘펀슈머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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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나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자기 재능과 자기 상품을 파는 ‘1인 1마켓 시대’.

◆트렌드 코리아 신드롬

아무튼 소비가 공급을 주도하는 ‘소비자세상’이 도래했다. 제품보다 디자인, 디자인보다 브랜드가 더 중시되는 세상.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보다 그걸 소비하는 사람이 더 파워풀해지고 있다. 그걸 국내에서 가장 리얼하게 포착한 사람은 누굴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베스트셀러 저자인 서울대 소비자학과 간판스타인 김난도 교수였다. 물론 그는 앨빈 토플러가 1980년에 발간한 ‘제3의 물결’을 자기 식으로 활용했다. 그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를 통해 연중 무휴 국내 트렌드 변수를 분석한다. 그걸 통해 다음 해의 트렌드 키워드를 제시한다. 2008년부터 발간된 ‘트렌드 코리아’(미래의 창)는 발매 직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언론은 그들이 제시한 10개의 메인 트렌드를 확대재생산한다. 대다수 대기업 마케터들도 그걸 토대로 투자계획을 수립할 정도다.

지난해 트렌드 코리아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붐업시켰다. 그 수단은 단연코 ‘음식’이었다. 모든 TV프로그램은 이구동성으로 음식을 오브제로 해서 방송인의 소소한 사생활을 보여주었다. 배우 윤여정을 앞세운 tvN은 ‘윤식당’, JTBC는 ‘효리네민박’, MBN은 ‘국경없는 포차’를 통해 박중훈과 안정환을 파리 에펠탑 앞에까지 끌고와서 포장마차촌을 연출하도록 했다. KBS2는 ‘볼빨간 당신’을 통해 방송인 양희경씨가 신부전증에 걸린 90세 어머니를 위해 건강식단 요리를 선보이는 장면을 디테일하게 보여줬다.

김 교수는 올해 메인 키워드 중 하나로 ‘콘셉팅(Concepting)’을 제시했다. 콘셉팅은 마케팅의 대안용어. 이젠 식당주도 콘셉트가 있는 메뉴가 뭔지를 간파해야 된다. 요즘 소비자는 식당에 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색깔과 어떤 재미를 가진 공간에 간다고 여긴다. 갈수록 물건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문화’를 소비하는 추세다. 예전에는 가성비, 품질, 브랜드 등이 구매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요즘은 ‘콘셉트가 확실하냐’를 묻는다. 콘셉트가 재미있느냐, 콘셉트가 나랑 맞느냐…. 이젠 마케팅을 한다고 하지 않고 콘셉팅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된다.

가령 대구에서 가장 유명해진 카페 중 하나인 중구 동성로 ‘미즈컨테이너’. 여기는 특이하게 공사장이 메인 콘셉트다. 건물을 지을 때 컨테이너를 사용했다. 헬멧을 대기번호표로 활용했고 농업용 트랙터까지 홀 한편에 비치해 놓았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란 군부대 대표 카피도 과감하게 벽에 적어놓았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요소를 재밌게 인테리어에 이용한 것이다. 젊은 층은 이를 촌스럽게 보지 않고 모던하게 봤다. 미즈컨테이너는 삽시간에 SNS채널을 뜨겁게 달구었고 마침내 그 인프라가 서울로 수출되기도 했다.

2000년 ‘커밍아웃’으로 더 유명해진 방송인 홍석천. 그는 외식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릴 정도로 외식트렌드 분석에 일가견이 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할 음식 콘셉트를 확실하게 정했다. 이태원 해밀튼호텔 근처에 ‘마이타이’란 태국 음식 전문 레스토랑을 열고 상관성 있는 여러 점포를 동시에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한다.

김 교수가 제시한 두 번째 키워드는 ‘세포 마켓’. 이건 모두 1인 개개인이 SNS나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자기 재능과 자기 상품을 파는 ‘1인 1마켓 시대’가 열린 걸 의미한다. 예전과 달리 이제 유통 시장은 거의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 수준으로 분열한다. 얼마 전에 ‘미미쿠키’도 SNS로 팔로어들을 많이 모아 쿠키를 팔기 시작했는데 그게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띵굴마님’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단숨에 셀럽을 불러모아 자기 버전의 플리마켓을 성공시켜버렸다.

요즘 대구에서 핫카페로 불리는 달성군 가창면 최정산 아래 있는 베이커리카페 ‘오퐁드푸아’, 팔공산 파계사로 주변에 깃을 튼 ‘헤이마’, 중구 남산동 ‘남산제빵소’, 남구 대명9동 ‘별을 헤다’ 등은 초단기간에 정착할 수 있었다. 기존 마케팅 방식으로는 그렇게 단시간에 소비자를 불러 모을 수 없었다. SNS 운영자가 자발적으로 현장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 포스팅했기에 가능했다. 물론 주인은 이미 인스타그램에 능한 사업가들이다. 이젠 유튜버까지 한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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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같은 음식보다는 조립 같은 반가공 냉동포장식품 시대로 접어든 듯 대형할인매장과 백화점 푸드코트에는 관련 식품이 즐비하다.

◆가정간편식 봇물

SNS에 좌우되는 세포 마켓은 올해 유통시장을 흔들 만큼 성장할 것이다. 요즘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아니라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가 대세다. 핫플레이스의 이면에는 똑똑한 ‘줌마’가 버티고 있다. 예전 밥을 해주던 어머니는 다들 괜찮은 식당으로 데려가 밥을 사준다. 남는 시간에는 열심히 자기계발을 한다. 사실 이건 엄마만의 변화는 아니다. 그들은 198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 대한민국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 태어나서 부모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자랐고 어릴 때부터 디지털문화에 잘 길들여진 부류다.

이제 소비도 가족과 개인으로 나눠 생각해야 된다. 가족은 더 이상 집에서 만든 요리를 먹는 것에 행복해 하지 않는다. 집에서 요리를 할만큼 한가한 세상이 아닌 탓이다. 제사음식도 만들지 않고 입맛대로 주문하는 게 요즘 신가족이다. 그래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식당 같은 카페, 카페 같은 식당이 주목받는다.

가족해체도 엄청나게 진행됐다. 홀로족 급증으로 우리도 바야흐로 1인가족 시대로 진입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가정 간편식(HMR)’이 초대박을 내고 있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요리사업가가 바로 백종원이다. 그는 편의점 CU에 자기 브랜드 도시락을 론칭시켰다. 그리고 골목상권의 먹거리까지 수면 위로 올리고 있다. 그는 3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20대에게 알맞은 ‘골목편의식’도 대중화시키고 있다. 노량진 고시원생에겐 꿈의 밥으로 불리는 ‘컵밥’ 붐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1인가족시대의 최상위 포식자는 누굴까? 그건 여성도 남성도 아니다. 바로 ‘반려견’이다. 향후 외식업은 이들 반려견을 어떻게 품을 것인가를 놓고 많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제 홀로족의 필수품 목록 1순위 중 하나가 반려견이기 때문이다. 그 반려견은 자신의 분신이다. 자연 반려견을 폭넓게 배려한 각종 카페와 레스토랑 등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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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오픈해 초스피드로 연착륙한 팔공산 베이커리카페 ‘헤이마’의 명물 블루 소파존에서 소확행 타임을 즐기고 있는 손님들.


◆외식트렌드 평가서

김 교수가 국내의 전반적인 트렌드를 가이드하고 있다면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푸드 트렌드 매거진’을 펴내 음식분야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7일 2019년 푸드트렌드 강의를 했다. 여기에 숱한 식품 관계자가 모여들었다. 그는 컨슈머 대신 ‘펀슈머(Fun과 Consumer의 합성어)’란 개념을 제시했다. 문 교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만든 식품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상에서 공유하고 소비하는 고객들을 펀슈머라고 이름 붙였다”면서 “이 같은 소비자들을 노리는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셜미디어 상에서 인기를 얻을 만한 제품을 기획한 후 기존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식품회사들의 생산라인을 이용, 소량으로 생산해 온라인에서 주로 판매하는 형태다.

지난 5월 출시된 청년떡집의 ‘티라미슈 크림떡’이 펀슈머 마케팅의 성공적 사례다. 이 제품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상에서 크림치즈가 들어있는 떡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청년떡집’이라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가 3개월 만에 5천개를 넘고 월매출도 3억원을 돌파했다. 인기에 힘입어 홈쇼핑까지 진출했다. 그런데 그 떡을 판매하는 회사는 청년떡집이 아니다. 식품 마케팅 전문회사인 ‘양유’라는 곳이다. 부천의 유명 떡기업 ‘영의정’은 제품을 생산하고 양유는 마케팅과 온라인 판매 등을 맡은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외식트렌드 가이드북은 ‘다이어리알’과 ‘블루리본 서베이’ 정도다. 음식칼럼니스트 겸 다이어리알 대표 이윤화씨는 2000년부터 사이트(www.diaryr.com)를 통해 전국 주요 레스토랑의 족보를 추적해나갔다. 2006년에는 맛, 음식, 분위기, 가격 대비 만족도 등 4개 항목을 기준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레스토랑 가이드북인 ‘다이어리알 레스토랑 2006’을 출간했다. 2008년부터는 전국을 커버했다.

지난해 나온 2018년 외식트렌드 내용을 보면 변화하는 외식환경, 파인다이닝의 흐름, 캐주얼다이닝, 주요 골목상권, 디저트와 베이커리, 1코노미 시대의 한식 반상의 다양화 등을 전문가 글을 통해 분석해나갔다.

어쩜 모든 게 현란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 트렌드의 대척점에는 국일식당의 따로국밥, 북성로 돼지불고기, 평화시장의 닭똥집튀김, 남문·교동·서문시장의 납작만두, 앞산 안지랑시장의 양념곱창은 예전 우중충한 그대로의 가게 모습으로도 능히 자기 영역을 잘 고수하고 있다. 제대로 된 과거와 제대로 된 미래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인가?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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