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37] 성주 포천구곡(下)...9곡 중 가장 아름다운 굽이 ‘홍개동’…욕심 난무하는 세상 멀리한 별천지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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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0 08:09  |  수정 2021-07-06 14:47  |  발행일 2019-01-10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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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구곡 중 9곡 홍개동. 포천구곡 중 가장 아름다운 굽이다. 9곡 근처에 만귀정과 만산일폭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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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곡 옆에 있는 만산일폭루.

‘삼곡이라 고인 물가에 돌배가 걸리고(三曲渟匯架石船)/ 시냇가 늙은 나무 나이를 알지 못하네(溪邊老木不知年)/ 당시 놀던 아홉 노인이 새긴 제명 남아(當時九老題名在)/ 선배가 가졌던 풍류 후배도 사랑하네(前輩風流後輩憐)’

3곡은 구로동이다. 조연에서 60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구로동(九老洞)’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어 확인할 수 있다.

‘제3곡을 구로동이라 한다. 하얀 돌이 반타석(盤陀石)을 이루고, 고목이 그 위에 그늘을 드리운다. 옛날 향로(鄕老) 9명이 함께 노닐고는 돌에 새겨 기록했다.’

이원조의 ‘포천산수기’에 나오는 내용인데, 선배 아홉 노인의 풍류를 자신도 계승하겠다고 노래하고 있다.

◆베를 말리는 듯한 4곡 포천

‘사곡이라 물속에 우뚝 솟은 바위(四曲亭亭出水巖)/ 꼭대기 가득 꽃나무 거꾸로 늘어졌네(滿花木倒)/ 반타석 표면이 길게 베 씻어 놓은 듯한데(盤陀一面長如洗)/ 경실과 요대는 푸른 못을 내려다보네(瓊室瑤臺碧潭)’

3곡 위로 70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4곡 포천이 나온다. 계곡 바위가 2단으로 자리하고 있어 그 위로 시냇물이 흘러내리면 마치 베를 걸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제4곡을 포천이라 한다. 돌 위에 물무늬가 있는데 짙은 푸른빛의 물이 베를 말리는 듯하고, 그 끝을 볼 수 없지만 이따금 돌을 만나면 깊이가 드러난다. 포천이란 이름은 이 때문이다.’

이원조는 4곡을 신선이 사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5곡 당폭, 평평한 큰 돌이 수십보
마을 사람들 빨래와 타작하던 곳

6곡 사연엔 山 등진 인가 10여호
사량촌 앞 못이라는 의미로 명명

7곡 석탑동 이르면 가야산 보여
시내 우측에 석탑처럼 생긴 바위



‘오곡이라 밝게 빛나 돌 기운 깊으니(五曲鱗鱗石氣深)/ 그 누가 푸른 베를 빈숲에서 말리는가(誰將綠布空林)/ 세상의 베 짜는 여인이 베틀을 비우니(人間織女空軸)/ 밝은 달빛 아래 밤마다 실을 짜네(明月機絲夜夜心)’

‘제5곡을 당폭(堂瀑)이라 한다. 시내 곁에 큰 돌이 있는데 평평하게 펼쳐 있는 것이 당(堂)과 같다. 넓이가 수십 보가 되어 마을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타작을 한다. 산이 솟은 곳에 바위가 몇 길 드리워있는데, 물이 뿜어 나와 퍼져 가는 소리가 우레와 같다. 꽃나무가 덮고 있다.’

이원조는 5곡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5곡에서 이원조가 이야기한 우레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형세는 아니다.

‘육곡이라 사량은 푸르고 맑은 물굽이(六曲沙梁碧玉灣)/ 몇 집이 물에 임해 대나무로 문 삼았네(數家臨水竹爲關)/ 안개와 구름이 문득 오는 길 막으니(烟雲却鎖來時路)/ 잠든 사슴 깃든 새 절로 한가하네(眠麓棲禽自在閑)’

6곡 사연(沙淵)을 읊고 있다.

‘제6곡은 사연이라 한다. 산세가 조금 넓어지고 고개 위에 소나무가 많다. 비로소 인가 10여 호가 보인다. 산을 등지고 물을 임하니 곧 사량촌이다. 여러 시내가 합류하고 양쪽 벼랑에 있는 돌이 섬돌과 같아 낚시터로 삼아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사량촌 앞에 있는 못이라는 의미로 사연이라 명명한 듯하다. 사량촌은 지금의 사부랭 마을을 말한다.

◆9곡 홍개동에 만귀정 지어 은거

‘칠곡이라 험한 곳 오르내리는 여울(七曲崎嶇上下灘)/ 높이 솟은 석탑 비로소 둘러보네(穹然石塔始廻看)/ 이곳에 이르러 고절할 줄 누가 알겠는가(到頭孤絶人誰識)/ 바람이 가야에서 불어 소매 가득 차갑네(風自伽倻滿袖寒)’

7곡은 석탑동이다. 이 굽이에 이르면 멀리 가야산이 눈에 들어오고 널따란 지형이 나타난다. 시내 오른쪽에 마치 석탑 같이 생긴 바위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 굽이를 석탑동이라 했다.

‘제7곡은 석탑동이라 한다. 이곳에 이르면 산 사이가 더욱 넓어지고 물은 더욱 빨라진다. 주점 몇 채가 바위에 기대어 있는데 집이 맑은 여울물을 굽어본다. 멀리 푸른 남기(嵐氣)를 잡을 수 있을 듯하니 즐길 만하다.’

속세의 기운이 아니라 고절한 기상이 가득한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팔곡이라 신촌은 시야가 갑자기 열리고(八曲新村眼忽開)/ 반선대 아래로 시냇물 돌아 흘러가네(盤旋臺下水廻)/ 주민들 어떻게 연하의 맛을 알겠는가(居民那識煙霞趣)/ 소나무 그늘에서 술에 취해 잠드네(猶向松陰醉睡來)’

8곡 반선대를 읊고 있다.

‘제8곡을 반선대라 한다. 신평촌(新坪村) 곁에 언덕이 있는데 높이 솟아 시내에 임하고 위에는 교목이 많다. 해마다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연회를 한다. 물이 달고 땅이 기름지니 은자들이 함께 노닐기에 더욱 마땅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이름 지었다.’

신평촌은 지금의 신계리다.

‘구곡이라 홍개동이 널따랗게 있으나(九曲洪開洞廓然)/ 오랜 세월 이 산천을 아껴서 숨겼네(百年秘此山川)/ 새 정자 자리 정해 이 몸 편히 하니(新亭占得安身界)/ 인간세상의 별유천지 아니겠는가(不是人間別有天)’

9곡 홍개동에서 정자를 지어 머무니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이 실현됨을 노래하고 있다. 9곡은 이원조가 만년에 은거했던 곳이다. 이곳에 이원조가 마련한 만귀정이 있다.

‘제9곡을 홍개동이라 하니 내가 자리 잡아 사는 곳이다. 두 폭포가 물길을 나누어 흐르고, 여러 돌이 바둑판 같이 자리한다. 사방의 산들이 둘러 있고 수풀의 나무가 일산처럼 그늘을 드리운다. 나의 정자가 서쪽 벼랑에서 남향하고 있다. 수석의 경치와 은거의 즐거움은 별도로 기록했다. 이곳을 지나가고 나면 가야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다.’

이곳은 이원조가 기록할 당시와도 별다른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9곡은 포천구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지금 모습을 봐도 두 줄기 폭포가 흘러내리고 바둑판 같은 돌들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나무 숲이 일산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원조는 오래 기간에 걸쳐 장소를 물색하고 이곳에 정자를 지어 드디어 만년을 보낼 은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욕심이 난무하는 세상과는 거리가 먼 이곳은 도가 펼쳐지는 별천지임을 노래하며 자신도 그런 경지에 이르고자 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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