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라쿠친 스시’ 허진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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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4   |  발행일 2019-01-04 제41면   |  수정 2019-02-01
약전골목 日 심야식당 같은 스시전문점, 제철 식재료 초밥 하나에만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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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사의 꿈을 꾸고 살아오다가 어느 날 스시인생으로 터닝한 허진태 셰프. 그는 초밥특화점 같은 라쿠친스시를 통해 일본 스시문화의 진수와 우리 강산의 제철 식재료가 어우러진 새로운 한국형 스시전문가의 길을 걷고 싶어한다.

처음엔 이탈리아 스타일의 초밥집인 줄 알았다.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 초입에 있는 ‘라쿠친 스시’. 라쿠친은 일본말로 ‘편안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깐 고독해진 위장을 위해 찾은 단골이 스시 한 점으로 편안한 일상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오너셰프 허진태의 소박한 꿈이 담긴 초밥집이다.

스시 장인은 초밥 다이를 하나의 라이브 공연 무대로 생각한다. 자신은 초밥으로 매일 공연을 한다. 미리 전처리 해둔 초밥을 냉장 보관했다가 하객이 대거 밀려들 때 수북하게 내는 결혼식 뷔페용 초밥의 연장에 있는 초밥집도 전혀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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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사용될 재료를 잘 갈무리해 나무상자에 정성스럽게 담아놓았다. 모두 숙성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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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태 셰프의 초밥은 항상 계절과 교감한다. 그리고 손님의 주문이 오기 전에는 초밥을 만들지 않는다.

라쿠친 스시는 오직 초밥의 영광을 위해 다른 잡다한 일본요리는 싹 없애버렸다. 우동이나 튀김, 어묵, 다양한 초절임류인 나라스케 등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생강절임 정도만 낸다. 기본의 내공을 지키기 위해 가격도 점심은 3만5천원, 저녁은 4만5천원이다. 덤핑 스타일의 초밥족에겐 다소 무게감이 실린 가격일 수도 있지만 초밥 마니아에겐 기본가격에 불과하다.

허 셰프는 참 우직한 포스다. 자신도 초밥집에서 일을 하면서 우연히 맛을 본 그의 초밥에서 진정성을 발견한 스태프 고은석은 5년차 초밥맨이지만 기꺼이 그에게 손을 내밀어 지금 거기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막내인 김경근은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바로 여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설거지, 재료 손질 및 세척 등을 담당하며 직접 초밥을 만드는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인생 1막 제빵사 길…빵의 세계 경험
쉬려고 온 대구…제빵 아닌 초밥 선택
식재료 이름부터 파면 팔수록 어려움
왼손잡이라 칼 사용에도 험난한 여정

최적의 식감, 밥과 네타 1대 0.8 정도
서울에서 경험한 日食계 숨은 고수들
칼로 종잇장처럼 무 저미는 기술 터득

스시 한점의 편안한 일상, 소박한 꿈
9명만 앉을 수 있는 다이 전문 초밥집
초밥 맛 방해하는 日음식은 내지 않아
제주도·포항 죽 잘맞는 유통상과 거래
즉석으로 낸 촉촉한 식재료 풍미 간직
계절감각 살린‘네타’15종류 리스트



◆제빵사의 꿈부터 꾸었다

청도군 청도읍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을 밀양에서 보냈다. 고교시절은 제빵학원에서 기본기를 공부한다. 그걸 갖고 영진전문대 호텔외식학과에 입학한다. 졸업한 뒤 동구 아양교 근처에 있는 권오윤 베이커리에서 인생1막을 시작했다. 비로소 책과 현장이 어떻게 다른지 돈을 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체득하게 된다. 학원에선 한 가지 빵만 만들면 됐다. 하지만 빵집에선 그게 용납되지 않는다. 단팥빵, 크로켓, 식빵, 바게트, 케이크, 쿠키 등 한꺼번에 10여가지를 핸들링해야만 했다. 그 빵집은 당시 치즈케이크를 빨리 개발해냈다.

1년 정도 머물다가 좀 더 큰물을 보고 싶어 충북 천안으로 간다. 거기는 여느 동네 빵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유명 체인 브랜드 빵공장이었다. 주먹구구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빵이 출하됐다. 그는 사업부 직원으로 빵도 만들고 다른 체인점에 갖다 줄 생지도 마련했다. 신생 사업장이라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해서 하루 15시간씩 일하기 일쑤였다. 거기서 크루아상, 스콘, 여러 버전의 식빵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조금씩 학원에서 붙들고 있었던 이론을 떠나 자기 나름대로의 항법을 갖고 길을 가는 감각을 체득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힘들었다. 건장한 그의 근육으로도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조금 쉬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절대 쉬지마라, 일하며 쉬는 게 청년정신이라고 독려했다. 그때 그가 선택한 길은 제빵이 아니라 초밥이었다.

경북대 북문 근처에 있었던 초밥집 ‘몽(夢)’이었다. 제빵근육으로 초밥에 덤벼드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선배가 생선 머리를 잘 잘라달라고 해도 그걸 제대로 칼질하지 못했다. 초밥용 칼이 얼마나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전에는 재료별 전용 칼이 있는지도 몰랐다. 사시미용, 생선을 자르는 데 사용하는 데바, 장어잡는 데 사용하는 우나기보초, 채소 전용 칼인 우스바,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부엌칼인 규도 등 많게는 10종의 칼을 세트로 갖고 있어야만 했다. 신비한 체험이었다. 초밥 장인은 한 개 1천만원 이상의 칼도 서슴지 않고 산다. 현재 그는 8개 정도 갖고 있고 가장 비싼 건 도쿄 주방용품 전문거리인 갓파바시에서 가마아사란 브랜드를 60만원 주고 샀다.

초밥집에서 6개월 고생하고 생애 첫 초밥을 만들어 선배한테 내밀었다. 선배는 그냥 씩 웃기만 했다. 그는 이제사 그 웃음이 뭔가를 조금 깨닫는다. 내공은 어차피 수많은 반복연습, 시행착오에서 온다는 걸. 그 선배도 예전 자신이 초밥을 처음 만들 때 그 막막한 심정이 오버랩돼 그가 안쓰러워 그런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밥과 네타. 그걸 1대 0.8 정도로 유지한다. 밥이 많아도 네타가 너무 무거워도 식감은 무너진다. 밥의 양은 11g을 유지한다. 그럼 일반 쌀로 밥을 지을 때 300여개의 밥 알갱이가 모이게 된다. 그는 현재 경기도 이천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본 품종 고리카리를 선호한다.

◆난 왼손잡이 셰프

난 왼손잡이다. 이게 초밥의 길에 적잖은 장애가 됐다. 모든 방식이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배움에 있어서 제법 익숙해지기까지는 여간 쉽지가 않다.

일식요리에서 생선을 다루는 기술에서의 칼 사용법은 왼손잡이 초보 조리사 에게는 많이 헷갈렸고 어려웠다. 생선을 손질할 때나 자를 때 초밥을 만들 때의 손 동작 하나까지, 배우는 나도 가르쳐 주는 선배님도 헷갈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선배님은 곧 잘 아직은 처음이니 오른손으로 연습하는 게 어떠냐며 권유하곤 하였다. 왼손잡이로 배우고 익히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딱히 바꾸고 싶었던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오른손으로 바꿨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했다. 그 이유는 처음으로 내 칼을 구입할 때 똑같은 칼이지만 왼손잡이라는 것 때문에 1.5배는 값을 더 지불하고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파면 팔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무엇보다 일본 식재료 이름부터 외워야만 했다. 긴메마디(도미), 하마치(새끼방어), 부리(방어), 시메사바(초절임 고등어), 산마(꽁치), 아지(전갱이), 에비(새우), 사몬(연어), 이카(오징어), 야와비(전복), 가니(게), 가즈노코(청어알), 다마고(달걀)…. 우리가 지금 보는 일반 초밥은 일명 ‘니기리스시’라고 하는데 한입 크기의 초밥을 손으로 움켜쥐어 모양을 낸다. 이건 19세기 초에 발생했고 에도아메, 그러니까 도쿄 앞바다 해산물을 이용해 만든 패스트푸드형 초밥이었다. 이외에도 초밥 종류는 너무나 많아 크게 김 위에 초밥을 넓게 펴고 재료를 올린 뒤 돌돌 말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마키즈시’, 틀에 넣고 눌려낸 ‘오시즈시’, 유부초밥은 일명 ‘여우초밥’이라고 하는데 그건 이나리신사의 수호 동물인 여우가 즐겨 먹던 게 유부라는 데서 기원한 초밥이란 것도 알게 됐다.

다시 선배의 권유로 서울로 간다. 강남 청담동에 있던 퓨전 일본 레스토랑인 ‘피어 애비뉴’였다. 사장은 미국에서 일본 스시바를 운영한 분이었다. 미국, 멕시코, 일본, 그리고 한국 스타일이 고루 섞인 일식당을 론칭한 것이다. 사케부터 우동까지 웬만한 메뉴는 다 커버했다. 거기서 비로소 안정적으로 초밥을 만들었다. 매일 새로운 걸 파는 게 아니고 같은 메뉴를 5년 정도 반복하니 더 깊은 세계가 보였다. 일본 본토의 흐름을 알고 싶었지만 솔직히 돌아서면 잠을 자야 했고 돌아서면 다이 앞이었다.

다시 신사동의 일식당 ‘유노 추보’로 갔다. 숨어 있는 고수를 거기서 많이 만났다. 라멘, 소바, 심지어 스테이크까지 손을 댔다. 칼 한 자루로 무를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내는 ‘가츠라무키’ 기술도 거기서 터득한다.

서울에서의 독립은 하나의 꿈이었다. 자본이 턱없이 부족했다. 작전상 6년 전 다시 대구로 내려온다. 동성로 초밥집 ‘스시이로카’를 거친 뒤 2명의 선배와 동업해 시작한 초밥집 ‘도쿠(동행)’를 열었다. 거기선 국물이 많은 나베요리를 비롯해 명란, 감자, 치즈를 이용한 스몰피자 같은 명란치즈로 나름 인기를 끌었다.

라쿠친 스시 가게를 얻기 위해 3개월 오픈준비를 했다. 약전골목의 밤이 고즈넉해서 좋았다. 일본판 심야식당 같은 게 눈에 어른거렸다. 그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자 초밥 하나에만 올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초밥의 맛을 방해하는 소소한 일본 음식은 팔지 말자고 다짐한다. 일반 테이블은 없고 오직 9명만 앉을 수 있는 다이 전문 초밥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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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믹식초로 잘 숙성시킨 껍질 벗긴 방울토마토. 꼭 우메보시 같지만 덜 짜고 시큼한 산미가 식감을 돋운다.

재료에 만전을 기하고 싶어 고등어도 제주도 중매인을 통해 공수를 받는다. 800g 한 마리에 1만원. 시장에서 만나는 3마리에 1만원짜리와 질감이 다를 수밖에. 현재 각종 수산물은 제주도, 부산, 포항, 통영 등의 죽이 맞는 유통상과 손을 잡았다. 계절감을 살리기 위해 봄에는 새조개·도미·속(갯가재), 여름에는 아나고·농어·전복 등을 특화시킨다. 하지만 초밥에 안 어울리는, 가령 억세고 가시가 많은 하모, 너무 기름진 고래고기, 밥알과 따로 노는 멍게 등은 멀리한다. 세월이 가다보니 초밥에 어울리는 네타가 뭔지 자기만의 네타가 뭔지도 알게 됐다. 해산물에서 벗어나 가끔 봄철엔 두릅순을 데쳐 간장에 조미한 뒤 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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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차 셰프 고은석(오른쪽)은 허진태 셰프의 초밥원칙이 뭔가를 잘 안다. 모처럼 가게 앞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를 느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요즘 내는 15종의 초밥 리스트가 정해졌다. 레몬오일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 발사막식초에 절여낸 우메보시 같은 방울토마토, 전복내장죽을 낸 뒤 도미·광어 등 흰살생선류, 다음은 참치·방어 등 붉은살생선류, 가리비 등 어패류, 생새우, 그 다음엔 조미가 된 시메사바, 전복, 장어, 계란말이, 마지막엔 조금 느끼해진 속을 다스려주는 해초가 들어간 데마키로 끝을 낸다. 브레이크타임 오후 3~6시. 지금도 손님 서빙하는 데 6시간, 음식 준비에 6시간을 할애한다. 그게 스시맨의 운명 아닐까? 예약 필수, 월요일 휴무. 중구 남성로 43. (053)255-1293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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