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뇌 먹는 아메바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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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5   |  발행일 2018-12-15 제23면   |  수정 2018-12-15

오래전 TV를 통해 본 톰 크루즈 주연의 SF영화 ‘우주전쟁’은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결말이 싱거웠던 영화로 기억된다. 지구를 침공해 막강한 화력과 기술력으로 지구인을 제압해 나가던 외계인들이 한순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원인은 보잘 것 없는 지구의 공기와 물속에 사는 원시 미생물 병원체에 감염됐기 때문이라나. 이 영화의 엔딩 자막 글귀가 의아해 할 관객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외계 침략자들이 우리 공기를 흡입하고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랜 기간 미생물이나 각종 바이러스와 싸워 면역력을 얻었지만 지구 침공 외계인은 한방에 훅~ 그냥 갔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발달한 최첨단 문명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요근래 시애틀에서 일어난 한 사망사고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미국 CNN은 뇌 염증으로 숨진 69세 여성의 사례를 보도했는데 이 여성은 축농증 치료를 위해 살균수 대신 수돗물로 1년여 간 비강을 세척했다. 그런데 의료진이 사인을 조사해 보니 아메바에 뇌가 감염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료진은 이 여성이 사용한 비강세척 용기의 물에서 ‘발라무띠아 맨드릴레어리스’라는 이름도 생소한 아메바 종이 있었던 것으로 학계에 보고했다. 이 사례는 이번주 국제 감염병학회가 발간하는 ‘국제감염병저널’에 실렸다. 이 아메바 종은 뇌에 염증을 일으키며, 치사율이 89%로 높아 치명적인 것으로 보고돼 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1993년 이후 미국에서 최소한 70명이 이 아메바 종에 감염돼 숨진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아메바(amoeba)는 우리가 중·고교 생물시간에 배운 원생동물이다. 짚신벌레와 같이 단세포로 된 최하등 미생물에 불과한데, 우리 주변의 습지·도랑·연못에 흔하다. 그런 하등 미생물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쉽게 당하다니 허망하기 짝이 없다. 높은 지능의 외계인이 지구의 하등 병원균에 쓰러지는 ‘우주전쟁’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유행성 감기균 등 보통 현미경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바이러스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다양한 바이러스들과 싸워 극복했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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