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치매’로 덜 고통받는 나라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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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4   |  발행일 2018-12-14 제22면   |  수정 2018-12-14
우리나라의 치매환자 발생
12분마다 1명씩 느는 추세
치매국가책임 성공위해선
예산이 뒷받침되는게 우선
경제활력 찾아야 재원 원활
[경제와 세상] ‘치매’로 덜 고통받는 나라가 되려면
김병효 국제자산신탁 상임고문

장모를 모시고 살던 직장 선배가 생각난다. 매사에 빈틈없이 정확하고 남다른 열정이 돋보이던 분이 평소보다 늦게 출근한 날이었다. 선배는 미안한 표정으로 “장모님 때문에 늦었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 온 장모가 자동차 열쇠를 어디다 몰래 감추곤 했는데, 이날도 온 가족이 열쇠를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아파트 화단에서 열쇠를 찾았지만, 근래 장모의 치매 증세가 더 심해져서 걱정이라며 선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0부부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밀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이시영 시인은 ‘어머니 생각’이라는 시로 치매 어머니와 아들의 고통스러운 일상을 눈물겹게 그려냈다. 치매는 환자 본인보다 가족을 힘들게 하는 병이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정신적인 고통과 경제적 부담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치매센터의 2017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12분마다 한 명씩 치매 환자가 발생한다. 작년 말, 이 병을 앓는 환자는 72만5천명으로, 2024년에는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9월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 고령자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738만1천명에 달한다. 이제 노인 10명 가운데 한 명은 치매 환자인 셈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치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SK 와이번즈의 트레이 힐만 감독은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외국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일군 명장이다. 그런 그가 최근 감독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나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1981년에 미국 최초 여성 연방 대법관이 된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2006년에 갑작스럽게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을 그만두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 이유도 트레이 힐만 감독과 비슷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오코너는 남편을 극진히 돌보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치매 예방에 앞장섰고, 환자 가족을 지원하는 활동도 활발히 했다. ‘치매 치유 전도사’라는 애칭도 얻었던 오코너도 최근 자신이 알츠하이머병 치매 초기 단계임을 밝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배움의 정도나 지역, 인종, 성별, 소득수준 등과 상관없이 늙어가는 과정에 갑자기 찾아오는 슬프고 무서운 병 치매는 정부의 보건복지 분야 핵심 국정과제로 부각되었다.

2017년 9월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말 그대로 치매 환자로 인한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고 해결해 주겠다는 정책이다. 정부는 이 정책에 따라 치매안심센터를 확충하고, 의료지원과 장기요양 서비스를 확대하여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줄 방안을 수립해 펼치고 있다. 그러나 치매국가책임제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보여주기식의 성과보다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치매관리망에서 소외되는 환자가 없도록 세심한 관리도 병행되어야 한다. 제아무리 취지가 좋은 사업도 적정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나라의 살림살이가 윤택해야 복지사업도 가능하다. 결국 경제사정이 나아져야 꼭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새해에는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고 성장할 수 있도록 각 경제 주체들이 좀 더 슬기로워지면 좋겠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의 목소리도 경청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은 어느 시대에나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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