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35] 충북 괴산 갈은구곡...강선대·선국암·칠학동천…신선처럼 살려했던 전덕호의 ‘이상향’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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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3 07:49  |  수정 2021-07-06 14:34  |  발행일 2018-12-1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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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곡 고송유수재 풍경. 왼쪽 암벽에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건너편 위에는 정자터가 남아있다. 7곡 바로 위에 8곡 칠학동천이 있다.

갈은구곡(葛隱九曲)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갈은(갈론)마을을 지나 속리산 옥녀봉을 향하는 계곡인 갈은계곡을 따라 설정된 구곡이다. 구곡이 설정된 구간은 2㎞ 정도 된다. 이 구곡도 선유구곡처럼 신선들이 노닐 만한, 맑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계곡이다. 괴산댐으로 생긴 괴산호 옆을 따라 이 구곡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보는 풍광도 멋지다. ‘갈은(葛隱)’은 ‘칡넝쿨 우거진 산속에 숨어 산다’ ‘칡뿌리를 먹으며 은둔한다’ 등의 의미로 해석된다. 갈은구곡은 갈천정, 강선대, 칠학동천, 선국암 등 신선과 관련된 곡명이 많다. 흰 바위와 맑은 물, 우거진 숲이 어우러져 신선이 사는 계곡이라 할 만하다. ‘갈은’은 속세를 벗어난 이상향에 대한 염원도 담고 있을 것이다. 갈은구곡을 설정해 경영한 주인공은 전덕호(全德浩·1844~1922)다. 그는 괴산읍 대덕리에서 태어나 통정대부(通政大夫) 중군(中軍),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 등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그는 사람도 신선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신선이 머물 만큼 아름다운 갈은구곡에서 신선처럼 살고자 했던 모양이다. 갈은구곡은 1곡 장암석실(場石室), 2곡 갈천정(葛天亭), 3곡 강선대(降僊臺), 4곡 옥류벽(玉溜壁), 5곡 금병(錦屛), 6곡 구암(龜), 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8곡 칠학동천(七鶴洞天), 9곡 선국암(仙局)이다.

1844년 괴산 대덕리 출생 전덕호
통정대부 중군·중추원 의관 역임
갈은계곡 2㎞에 걸쳐 구곡 설정
굽이마다 바위에 명칭·한시 새겨
시작점 ‘갈은동문’ 仙界 출입구

◆전덕호가 이상향 꿈꾸며 설정

갈은구곡은 갈은동문(葛隱洞門)에서 시작한다. 갈은마을에서 계곡 옆 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길고 높은 바위절벽이 나타난다. 절벽 위에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있고, 아래 부분에 ‘갈은동문’이 새겨져 있다. ‘동문(洞門)’은 신선이 살 정도로 그윽하고 운치 있는 계곡인 동천(洞天)으로 들어가는 문을 뜻한다. 갈은동문은 갈은구곡의 선계(仙界)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문이라는 의미다.

이곳을 지나 계곡을 따라 9개의 굽이를 설정해 이름을 붙이고, 굽이마다 바위에 그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굽이를 읊은 한시도 새겨 놓았다.

1곡 장암석실은 갈은동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 숲 속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다. 이 바위에 작은 석실이 있어 정한 이름이다. 암벽 가운데 ‘장암석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갈은동문 쪽 암벽 안쪽에 구곡시가 새겨져 있다. 구곡시를 새긴 암벽 아래가 마치 집과 같다고 해서 ‘집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네/ 태고의 자연과 이웃하니 즐겁기만 하구나/ 흰 암반은 평평하고 둥글어 채소밭을 이루고/ 청산은 겹겹이 높이 솟아 담장으로 둘러있네’

2곡 갈천정은 장암석실 맞은편 계곡 건너편에 있는 큰 바위다. 바위 위쪽에 ‘갈천정’이 새겨져 있다. 갈천정 각자 바로 아래 ‘전덕호(全德浩)’라는 이름과 한시가 새겨져 있다.

갈천(葛天)은 중국의 상고시대 임금 중 도덕으로 선정을 펼친 ‘갈천씨(葛天氏)’를 말한다. 갈천씨가 다스리던 시절에는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었고, 교화하지 않아도 잘 실천했다고 한다. 욕심 없고 순박한 사람들을 ‘갈천씨지민(葛天氏之民)’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이상향에 대한 꿈이 서려 있는 곳이라 하겠다.

‘햇살은 청산너머로 저물어가고/ 해가 갈수록 백발이 늘어만 가누나/ 오래도록 몇몇 군자들과 함께/ 갈천씨의 백성이 되고파라’

3곡은 신선이 내려와 놀던 강선대다. 갈천정에서 조금 올라가면 두 물길이 합쳐지는데, 왼쪽 물길 쪽을 보면 3층으로 쌓인 커다란 암벽이 보인다. 그 주변 물굽이가 강선대다. 바위 절벽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바위 벽에 행서체로 ‘강선대’가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는 구곡시가 새겨져 있다.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진짜라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신선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참으로 이상하게 이곳에 오는 사람들 모두/ 가슴이 상쾌해져 저절로 속된 마음 사라지네’

강선대 쪽이 아닌, 다른 계곡의 물길을 따라 1㎞ 정도 올라가면 제4곡 옥류벽이 나온다. 옥 같은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벽이라는 뜻이다. 마치 시루떡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절벽이다. 절벽 앞으로 맑은 물이 흘러가며 못을 이룬다. 절벽 위쪽에 ‘옥류벽’이 전서로 새겨져 있고, 그 옆에 구곡시가 새겨져 있다.

‘용은 단약 솥에 엎드리고 거북은 연꽃 위에 올라간다네/ 참말로 신선 되어 오르기는 어렵구나/ 절벽사이 방울방울 흐르는 물 경장수(瓊漿水)이니/ 오래도록 먹으면 장수할 수 있다네’

◆굽이마다 명칭과 구곡시 새겨

비단같은 병풍바위라는 의미의 5곡 금병은 옥류벽 조금 위에 있다. 황갈색 바위벽에 물빛에 반사된 햇볕이 닿으면 그야말로 비단처럼 보인다는 곳이다. 바위 벽에 ‘금병’이 전서로 새겨져 있고 그 왼쪽에 세로로 길게 시가 새겨져 있다.

‘온갖 꽃 무성하고 햇빛 붉게 비치니/ 오색가사 등에 걸친 중이어라/ 층층이 쌓인 바위 금병의 그림자 어떠한가/ 차가운 연못에 거꾸로 비치니 푸르고 맑도다’

6곡 거북바위 구암은 금병에서 5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암벽에 ‘구암’이라는 전서 각자와 7언절구 시구가 새겨져 있다.

‘오래 묵은 거북이 샘물을 들이켰다 내뿜었다 하면서/ 구슬 모양으로 오므렸다 폈다하여 멀리에서나 가까이에서도 볼 수 있네/ 한 번 석문(石門)이 우레에 맞아 부서진 이후로/ 이 영산을 잘 아끼고 지켜주지 못 했다네’

7곡 고송유수재는 U자형을 이룬 바위지대 가운데로 계류가 흐르는 곳이다. 한쪽 바위벽에 ‘고송유수재’ ‘갈은동(葛隱洞)’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그 오른쪽 벽에는 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조부이자 이조참관을 지낸 홍승목(洪承穆), 구한말 국어학자 이능화의 아버지이자 이조참의를 지낸 이원극(李源棘)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맞은편에는 정자터가 남아있다. 노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라는 뜻의 고송유수재 굽이는 갈은구곡 중 경치가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다. 구곡시는 ‘고송유수재’ 각자 옆에 새겨져 있다.

‘일찍이 학은 여기에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鶴觀何曾在此中)/ 다만 나의 취미는 학과 같다네(但從趣味與之同)/ 바둑판 하나 새기고 한 칸 집 지어 놓고(一局紋楸一間屋)/ 두 늙은이 기쁜 마음으로 마주 앉았네(欣然相對兩衰翁)’

8곡 칠학동천은 7곡 바로 위에 있다. 일곱 마리 학이 살았다는 공간이다. 흰 사각 바위에 ‘칠학동천’이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여기에 일찍이 일곱 마리 학이 살았다 하나(此地曾巢七鶴云)/ 학은 날아가 보이지 않고 구름만 떠가네(鶴飛不見但看雲)/ 지금 달 밝고 산은 공허한 밤인데(至今月朗山空夜)/ 이슬 싫어하는 학의 소리 들리는 듯 하누나(警露寒聲若有聞)’

9곡 선국암은 칠학동천 바로 위에 보이는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다. 신선이 바둑을 두던 바위라는 선국암 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바둑돌을 넣어두는 홈도 두 개 파여 있다. 바둑판 네 귀퉁이에는 ‘사노동경(四老同庚)’이라는 글자가 한 자씩 새겨져 있다. 그리고 바위 옆면에는 ‘선국암’이라는 글씨와 구곡시, 그리고 네 사람의 이름(전덕호 경인국 홍승섭 이건익)이 새겨져 있다.

‘옥녀봉 산마루에 해는 저물어 가는데(玉女峰頭日欲斜)/ 바둑 아직 끝내지 못해 각자 집으로 돌아가네(殘棋未了各歸家)/ 다음날 아침 생각나 다시 찾아와 보니(明朝有意重來見)/ 바둑알 알알이 꽃 되어 돌 위에 피었네(黑白都爲石上花)’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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