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제 살 깎아 먹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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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6 07:59  |  수정 2018-11-16 07:59  |  발행일 2018-11-16 제19면
[문화산책] 제 살 깎아 먹는 소리
박아정 <연출가>

‘제 살 깎아 먹는 소리 한다’는 말은 흔히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언행을 하였을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진짜 살이 깎여 다이어트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점심을 뭘 먹을까 하며 메뉴를 고르던 오후의 일이었다. 나는 진짜 내 살 깎아 내리는 소리를 좀 해보려 한다.

현대사회는 비만과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비만율은 33.4%로 OECD 국가의 평균보다는 낮지만 2030년에는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나도 평생을 다이어터로 살아온 터라 하루하루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통통한 볼살과 푸근한 뱃살을 주무기로 전국의 아줌마역을 무대에서 소화했다. 살 빠지면 계약위반이라는 귀여운 협박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세상은 다양한 인물의 삶이 있다. 배우들은 더욱더 다양한 캐릭터를 위해 가끔은 살을 찌우고 가끔은 다이어트를 해서 제3의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배우 설경구씨는 영화 ‘역도산’ 촬영시 100㎏ 가까이 살을 찌우고 최근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영화에서는 혹독한 체중감량을 통해 캐릭터의 몰입도를 높였다. 훌륭한 배우다.

공연 전 분장실을 방문할 때면 밥 대신 닭 가슴살을 도시락으로 싸와서 계란 흰자와 함께 먹는 배우들을 여럿 보았다. 옆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다른 배우들을 부러운 눈으로 응시하면서 말이다. 한 여배우는 과일만 먹더니, 그날 여지없이 대사를 틀리고 발성이 약했다.

공연이 끝나고 연유를 묻자 다음 주에 영화 오디션이 있다고 했다. 오디션 때문에 오늘의 공연을 버린 후배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무대에 서는 이들은 숙명처럼 몸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날씬한 배우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적게 나가든 많게 나가든 일을 하려면 유지하거나 빼거나 찌워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무게의 정의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마음의 무게, 인성의 무게도 눈으로 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너 오늘 인성의 무게가 좀 적게 나가는 것 같아 좀 더 채워”라고 말이다. “너 싸가지가 왜 이렇게 없니”라는 것보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으로 사람의 가치를 정하지 말고 정서의 무게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훌륭한 인성과 몸무게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제 살 깎아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언행으로 진짜 자기 살 깎아먹는 짓을 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무거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정서의 비만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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