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공암리 공암풍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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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5   |  발행일 2018-11-15 제36면   |  수정 2018-11-15
단풍나무가 벽 이룬 깊은 가을, 발 들면 되돌아 나지 못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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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풍벽. 청도8경의 하나다. 여름에는 창벽, 가을에는 풍벽이라 한다.

포르르포르르 낙엽비가 내렸다. 나선형으로 낙하하는 윤회의 선율, 가을 깊은 숲이었다. 멀지 않은 숲에는 까마귀가 숨어서 울었고 하늘에는 두 마리 새가 대기를 베는 부메랑 소리를 내며 날았다. 그들은 종대 또는 횡대의 열을 기가 막히게 유지하면서, 색색의 연기를 내뿜으며 비행 쇼를 하는 전투기처럼 날았다. 운문호(雲門湖)는 민감하고 청초하게 누워 있었다. 그늘진 수면에는 진주알같은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저 멀리 호수에 턱을 괴고 엎드린 긴 벽이 천중의 빛 아래 희부옇게 보였다. 그것은 창백한 뺨과 하얀 목덜미만 드러낸 채 가을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공암리 천변 백운거사 윤현기 거연정
운문댐 축조때 보존시기 놓친후 복원
멍석길 지나 호수 가장자리의 데크길

용 머리라 불리는 희부연 절벽 한눈에
정수리에 몸통만 한 바위 구멍 ‘공암’
단풍벽 이룬 벼랑의 가을 이름 ‘풍벽’
바위틈 가로지르는 길, 옛 귀인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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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 호수로 흘러드는 자리에 산 같은 수양버들 한 그루가 흐드러져 있다(위). 풍호대 전망대. 공암풍벽의 동쪽으로 시야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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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리 천변의 거연정. 백운거사 윤현기의 장구지소로 근래에 복원한 것이다.


◆ 운문면 공암리

청도 공암리(孔巖里) 동구 길에 산수유가 붉다. 설한의 빈 가지에 매달린 차가운 빨강에만 익숙한 눈이 갈빛 속 따스한 빨강에 객쩍어진다. 마을은 국도 아래에 있고 운문호로 흘러드는 개천을 따라 길게 자리한다. 35가구 70여 주민이 산단다. 예전에는 파평윤씨(坡平尹氏)가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여러 성씨가 어우러져 산다. 주민의 대부분은 표고버섯 농사를 짓는다. 여기저기 보이는 검은 하우스가 모두 참나무 표고버섯 재배장이다. 농지는 운문호 아래에 펼쳐져 있다.

공암리 복지회관 앞에 너른 주차장이 있다. 주변에는 몇몇 운동기구와 유리창을 단 모정이 고요하다. 조금 내려가면 천이 굽이지는 자리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물로 뛰어들 듯 비스듬히 서 있다. 그러지 말라며 누군가 나무의 허리를 단단히 묶어 놓았다. 둥치 속은 텅 비어 동굴 같다. 당산나무일까, 누군가 나무 아래에 양초 하나를 세워두었다. 천 건너 맞은편에 정자 하나가 서 있다. 거연정(居然亭)이다. 20세기 초반 백운거사(白雲居士) 윤현기(尹玄基)라는 이의 정자로 알려져 있다. 거연정은 운문댐 축조 당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하는데, 시기를 놓쳐 결국 무너졌다고 한다.

현재의 거연정은 복원한 것이다. 정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보다는 풍경을 풍성하게 하는 오브제 같다. 정자 앞에는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두 그루 전나무가 창처럼 곧다. 정자 뒤 바위벽에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는 글씨가, 그 오른쪽에는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곳은 ‘산은 높고 물은 길며’ ‘구름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곳’이다. 개천의 바윗돌에는 활수원(活水源), 경(敬), 아천석(我泉石) 가이합(可以合) 등의 글씨가 있다는데 찾지 못하였다. 주자(朱子)의 시 ‘정사(精舍)’에 나오는 시 중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이라는 구절이 있다. ‘문득 나와 샘과 돌이 한 몸’이라는 뜻이다. 100여 년 전 백운거사가 그러하였나. 오늘의 객도 역시 그러하다.

◆ 공암풍벽

거연정 앞길로 간다. 멀리 운문호가 슬몃 보인다. 천이 호수로 흘러드는 자리에 산 같은 수양버들 한 그루가 흐드러져 있다.

호숫가 언덕에는 박공지붕의 건물 하나가 어린 대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다. 현대 한국 화단의 거장인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 화백의 고향집이라 한다. 창고 같은 집 외벽이 군데군데 녹슬었다. 몇 채의 표고버섯 하우스를 지나면 폭신한 멍석길이 시작되고 곧 호수 가장자리의 데크길로 이어진다. 뒤에서 걸음이 따라온다. 내가 서면 저도 서고, 내가 나아가면 저도 따라온다.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어깨에 긴 빗자루를 메고 계신다. “먼저 가세요.”

길에는 온통 낙엽이다. 앞서가신 아주머니는 테이블이 있는 전망 데크를 쓸고 계신다. 싹싹, 싹싹, 경쾌한 비질소리를 뚫고 나아간다. 멀리 희부연 절벽이 보인다. 예부터 용의 머리라 불려온, 거위의 둥그런 머리 같기도 한, 공암풍벽(孔巖楓碧)이다. 용의 정수리에 날씬한 몸통만한 바위구멍이 있다 한다. 그것이 공암이다. 두암(竇巖)이라고도 한다. 구멍은 바닥까지 뚫려 있다고 한다. 풍벽은 ‘단풍나무가 벽을 이룬다’는 뜻이다. 벼랑의 가을 이름이다. 여름 이름은 창벽(蒼壁)이라 한다. 푸른 벽이다. 데크길은 오솔길로 이어지면서 점점 공암풍벽과 가까워진다. 포르르 낙엽비가 내리고, 두 마리 새가 전투기처럼 난다.

운문호가 생기면서 공암풍벽은 접근이 차단되었다가 데크길을 놓으면서 다시 개방되었다. 아주 옛날에는 산자락을 따라 실오라기 같은 길이 나 있었다고 한다. 수헌 이중경(李重慶)의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에 “길이 바위틈으로 가로질러 통하는데 틈의 깊이는 백 척이나 되고 또 백보 정도 뻗쳤는데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밀양과 청도로부터 경주까지 귀하신 분들이 이곳을 경유한다. 동남쪽은 기이한 골짜기가 층층이 겹쳐있고 구름과 안개가 서로 섞이며 서북쪽도 그러하다”고 쓰여 있다. 귀하신 분들은 이곳에 많은 각자를 남겼다. 그 중 한분이 서애 류성룡의 아들 류진(柳袗)이다. 그는 1627년경 청도 군수로 있으면서 사운시(四韻詩)를 지어 높은 바위에 새겼다고 한다. ‘뭇 새들이 높이 날다 때때로 등을 드러내고 뭇 봉우리 줄지어 서서 모두 고개를 숙이네.’

데크길이 일단 끝나는 전망대에 닿는다. 낙석을 주의하라는 석벽에 ‘풍호대(風乎臺)’ 글씨가 뚜렷하다. 좌측에 시문(詩文)이 있으나 흐리다. 백운거사의 흔적이다. 길은 호반을 지나 석벽 사이로 이어지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가을은 공암처럼 깊어 들면 되돌아 나지 못할 터이니.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잊지 못해 다시 찾은 '감양갱'

일부러 고속도로에 오른 것은 청도새마을휴게소에서 지난번 만났던 ‘감양갱’ 때문이다. 차마 잊지 못해 다시 만나기를 바랐으나 아뿔싸, 휴게소는 청도IC를 지나 위치한다. 인연이 아닌가, 긴 아쉬움을 늘어뜨리며 20번 국도를 달린다. 은성하게 빛나는 ‘하평리 은행나무’와 눈빛을 나누고, ‘매전면 처진 소나무’의 손끝도 스치고, ‘삼족대’가 앉아 있는 언덕을 마음으로 본다. 금천면(錦川面) 동곡리(東谷里)의 번화가를 지나다 문득 ‘동곡양조장’ 간판에 눈길이 닿는다. 청도의 맑은 물과 청도의 쌀로 빚는 막걸리, 운문사의 은행나무와 처진 소나무가 매년 공양받는다는 그것. 양조장에 들르면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운문면소재지의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지나 운문호 드라이브길에 든다. 망향정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따끈한 물오뎅을 먹는다. 대단한 맛이다. 뒤쪽에 ‘초량 영진어묵’ 상자가 보인다. 그래서 대단했던 게로군. 아, 휴게소 냉장고에 동곡 막걸리가 있다. “대구에서도 유명하죠?” 돌아가는 길은 팔조령을 택한다. 고개가 가까워질 무렵 지역 농산물 직판장에 들른다. 감양갱과는 결국 인연이 있었다.

☞여행정보

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IC로 나간다. 운문, 경주방향 20번 국도를 타고 계속 간다. 운문면사무소 지나 운문댐 호수를 바라보며 조금 더 가면 오른쪽에 공암리 마을 표지석이 있다. 천과 나란한 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공암리 마을회관 앞에 주차장이 있다. 200여m 거리에 거연정이 자리하고 그 앞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공암풍벽으로 향하는 데크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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