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제발 詩라도 한 편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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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4   |  발행일 2018-11-14 제34면   |  수정 2018-11-14
白水 정완영 선생의 시 ‘모과’
고향의 정을 함께 느끼게 해
北에 보낸 제주산 귤 200t도
정치인은 특이한 상상말고
한민족의 교감으로 해석을
[수요칼럼] “제발 詩라도 한 편 읽어보세요”

백수 정완영 선생은 시조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천 출신으로 고향 김천(金泉)의 ‘泉’자를 파자하여 ‘백수(白水)’를 호로 삼았다. 향토 시인으로 2016년 타개하기까지 천 편이 넘는 시조를 썼다. 선생의 시에 ‘모과’가 있다. “시골서 보내온 모과 울퉁불퉁 늙은 모과/ 서리 묻은 달같은 것이 광주리에 앉아있다/ 타고난 모양새대로 서너 개나 앉아 있다./ ~/ 시골서 보내온 모과 우리 형님 닮은 모과/ 주름진 고향 산처럼 근심스레 앉아있다/ 먼 마실 개 짖는 소리 그 소리로 앉아있다./ ~” 늦가을 김장철을 전후해서 모과가 왔을 것이다. 서리가 언급되었으니 초겨울 무렵이었을 법도 하다. 고향에서 온 모과는 ‘울퉁불퉁 늙은’ 모습이다. 세련되거나 멋있지도 않고 혹하며 눈이 가는 모습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두고 시인은 ‘형님’을 닮았다고 했다. 울퉁불퉁 모과, 그것에서 ‘주름진 고향 산’을 떠올린다. 그뿐만 아니다. ‘먼 마실 개 짖는 소리’로 앉아 있다고 했다. 마실은 물론 고향 마을이다. 개 짖는 소리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 아련함, 애틋함을 불러온다.

모과 몇 개가 왔다. 고향에서 보내 온 것이다. 비싼 것도 귀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보내 준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래서 울퉁불퉁 못 생긴 모과에도 정이 간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고마움도 함께 온다. 그러면서 모과가 여름 내 햇살을 받았을 풍경을 그린다. 영글어가는 모과를 보며 웃음지었을 고향 사람을 기억하며, 그것을 따서 정성스레 포장하는 투박한 손을 떠올린다.

집으로 부쳐 온 모과 몇 개가 고향의 봄-여름-가을 풍경을, 고향 사람들의 정을 함께 가지고 온다. 그것은 또한 고향에서의 추억을 환기시킨다. 먼 기억 속으로 숨어 들었던 고향에서의 개 짖는 소리, 밥 짓는 풍경, 친구들과 부대끼던 골목을 ‘지금, 여기’의 시·공간으로 소환한다. 사람은 기억의 힘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기억의 힘으로 추억을 불러온다. 그래서 백수 선생 댁으로 모과가 왔지만 모과만 온 것이 아니다. 고향에서 가족이 모과 몇 개를 보냈지만, 모과만 보낸 것이 아니다.

청와대가 제주산 귤 200t을 북한에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귤 선물은 북측의 송이버섯 2t에 대한 감사 표시라는 것이 청와대의 공식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에서 송이가 왔다. 송이버섯이 왔을 때 정부는 이산가족들에게 나눠 보냈다. 북한에서 온 송이를 받은 우리 국민에게 그 송이는 고향의 마실이고, 고향의 가족이며, 고향의 풍경, 고향의 기억이다. 고향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상상이 가능하고, 상상의 힘으로 대리체험을 할 수 있다. 상상의 힘으로 청년이 되어, 소년소녀가 되어 고향 마을을 밟을 수 있다.

대표적인 시조 시인으로 평가 받는 백수 정완영 선생의 작품 ‘모과’에 담긴 의미와 ‘같은(?)’ 메시지를 보낸 정치인이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박스에 귤만 있겠냐”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한다. 귤을 담는 것을 귤 박스라고 하니, 귤 박스 안에는 귤이 담겼을 것이 분명하다. 10㎏ 단위의 박스 2만 개가 군용기에 실려서 북으로 갔다. 그 박스 안에는 귤이 오롯이 담겼겠지만, 그것을 받는 측에서는 귤만 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백수 선생이 울퉁불퉁 모과를 받았을 때를 참고할 만하다.

정치인도 사람이니 상상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귤 박스 사이에 금 박스를 섞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이런 상상에서 아쉬운 것은, 정치인들도 시인의 감성을 닮았으면 하는 것이다. 시인의 감성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했듯이, 때로는 울퉁불퉁 투박한 모과만으로도 충분하다. 모과를 통해서 가족 간에 기억을, 정을 교감했듯이 감귤을 통해서 남북 간의 한민족 사이의 정과 동질감을 회복하길 기대한다. 아울러 가을에 시 한 편 읽는 정치인을 기대한다.

지현배 (동국대 파라미타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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