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김천 청암사 사찰음식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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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2   |  발행일 2018-11-02 제41면   |  수정 2018-11-02
발우공양과 속가 음식문화 가미…‘사찰 자비뷔페’로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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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김천 청암사 공양간. 공양주인 혜월 처사가 도와주는 비구니와 함께 육법공양에 올릴 밥 짓기에 여념이 없다. 중앙에 조왕신을 모셔둔 조왕단이 보인다. 큰 가마니솥으로 150인분 밥을 지을 수 있다.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수도산 북쪽 불령동천 암반에 깃든 청암사. 가을 산색이 짙어지고 있는 지난달 21일 여름에 이어 다시 이 사찰을 방문했다. 이 무렵 청암계곡은 사계절을 다 보여준다. 양지쪽은 봄·여름 같지만 종일 햇살 한 톨 들지 않는 그늘은 바람이 조금만 몰아쳐도 겨울이다. 청암사를 다시 찾은 건 한국 사찰음식의 원형이 뭔가를 엿보기 위해서다. 그 원형을 가장 빨리 알아보려면 속인에겐 여간 까다롭지 않은 ‘발우공양’을 직접 체험해보면 된다. 그다음은 아직 불가만의 엄숙함을 지니고 있는 ‘공양간’을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국내 사찰(조계종 기준)은 규모에 따라 전국에 지역별로 25개 본사(큰 사찰)가 있고, 각 본사 관할 구역에 소속되어 있는 말사(작은 사찰)가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은 지역별로 서울 280여 개, 경기 490여 개, 강원 200여 개, 충청 460여 개, 경상 1천420여 개, 전라 470여 개다. 물론 그 절마다 고유한 공양간 문화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절 업무가 워낙 많아 스님이 다 쳐내기 어렵다. 속인의 힘을 빌려야 할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공양간을 책임지는 공양주도 예전에는 스님의 몫인데 이젠 세인의 몫이 되고 있다. 공양간 소임 용어는 참 재밌고 흥미롭다. 스님들은 맡은 일에 따라 직책이 주어진다. ‘공양주(供養主)’는 밥, ‘채두(菜頭)’는 반찬, ‘갱두(羹頭)’는 국, ‘정두(淨頭)’는 해우소, ‘욕두(浴頭)’는 목욕물 소임이다. ‘불목하니’는 땔감 나르고 불 때는 머슴인데 요즘은 행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공양주는 일명 ‘반두(飯頭)’라고도 한다.

등·향·차·꽃·과일·공양미
부처님께 올리는 ‘육법공양’
부뚜막神 모시는 조왕단
남김없이 비우는 발우공양

청암사 유미사찰음식연구소
동국대 이심열 교수팀
대중과 공유‘사찰뷔페展’

밥·국·김치·나물·전·부각
승가 일상 뷔페 ‘보살뷔페’
8가지 바른수행 8가지 음식
팔정도 상징 ‘수행뷔페’
12연기 의미 ‘인연뷔페’
21일 기도발원 의미
21가지 내놓는 ‘발원뷔페’


◆ 육법공양과 사시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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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툇마루에 앉아 누룽지를 자르고 있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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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박박 문질러 끝이 칼끝처럼 닳아버린 누룽지용 주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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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의 명물 동치미.

오전 11시에 시작되는 육법공양(六法供養) 행사를 위해 소임을 맡은 스님이 정성스럽게 오른손에 밥을 퍼담은 제기를 받들고 서둘러 대웅전 안으로 들어간다. 육법공양은 부처님 전에 올리는 6가지(등, 향, 차, 꽃, 과일, 공양미) 공양물을 일컫는다. 특히 부처님을 위한 밥은‘사시마지(巳時摩旨)’라 한다. 재가 불자들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을 ‘불공(佛供)’이라고 한다. 불공은 사시(巳時·오전 9~11시) 무렵 불자들이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공양을 대접하는 데서 비롯됐다. 부처님 입멸 후에는 불상이나 탑에 공양하는 것으로 변했고 이 흐름은 오늘날 사찰에서 날마다 사시에 불공 올리는 것으로 정형화됐다.

이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몇 사람 중 한 명은 현재 청암사 공양주인 혜월 처사다. 그는 밥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 자신을 도와주는 몇몇 비구니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대형 선박의 엔진실 피스톤 같다. 그는 오직 절정의 밥을 위해 정신을 한곳에 집중한다.

새벽 같이 일어나 큰 가마솥에 세 번 밥을 지어야 된다. 사찰뷔페 시연회와 육법공양, 인현왕후 복위식을 관람하기 위해 몰려 든 4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먹을 밥이다.

가마솥에는 평균 150인분의 밥을 지을 수 있다. 그가 밥 짓는 요령을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무쇠솥 뚜껑 사이로 센 김이 스며나오면 강불에서 약불로 바꿔줘야 합니다. 그때부터 30여 분 뜸을 들이면 돼요. 한눈팔면 밥은 다른 데로 가버려요. 밥짓는 것, 그건 하나의 수행이죠.”

공양간 한쪽 구석엔 햇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묵혀 놓은 듯한 바싹 마른 솔가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굵직한 장작으로 기본 화력을 내고 뜸들일 때는 장작을 아궁이에서 빼내고 솔가지로 불 세기를 조절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테크닉이다.

공양간의 별미는 누룽지. 지름 80㎝ 남짓한 둥그런 누룽지는 먹기 좋게 여러 조각을 낸다. 이때 누룽지 전용 칼이 사용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청암사 누룽지 절단용 주걱은 30년 이상 구력을 가졌다. 한눈에 봐도 문화재 포스다.

◆ 조왕단과 조왕경

공양주는 일단 밥을 짓기 전에 정성을 올린다. 공양간을 굽어 살피고 있는 부뚜막신인 조왕께 올리는 조왕경을 읊으며 불을 지핀다. 물론 공양간 부뚜막 위에 조왕단이 설치돼 있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민화다. 조왕신을 가운데로 하고 왼쪽 ‘담시역사(擔柴力士)’는 땔감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오른쪽에는 음식 만드는 어머니를 뜻하는 ‘조식취모(造食炊母)’가 있다. 이런 조왕탱화가 없는 사찰 공양간에는 주로 문자로 조왕대신을 모신한다. 공양간이 현대화되면서 부뚜막 위 조왕단도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유명 사찰 공양간에는 조왕단을 모시고 있다.

청암사는 가능한 하루 한 끼 원칙을 존수하려고 한다. ‘오후불식(午後不食)’ 원칙도 있다. 매일 오전 3시 새벽예불이 있다. 이 때문에 밤에 음식물이 위 속에 들어 있는 걸 꺼린다.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공양을 일찍 끝낸다. 아침공양은 오전 6시, 점심은 11시30분, 저녁은 오후 5시. 공양 5분 전에 공양을 시작하라는 의미로 목탁을 친다.

공양주가 지은 밥을 공양하기 전 신도들은 ‘오관게(五觀偈)’를 되새겨야 한다. ‘공덕의 많고 적음과 이 음식이 온 곳을 헤아려 보니/ 내 덕행으로는 공양 받을 것이 전혀 없음을 헤아리노라/ 과오를 버리고 탐욕 등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막고/ 몸이 마르는 것을 고치는 좋은 약으로 바로 알아/ 이 음식을 공양으로 받아 깨달음을 이루겠습니다.’

◆ 발우공양(鉢盂供養)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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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바라밀의 정신과 발우공양 정신이 담긴 밥, 나물, 김치, 부각, 국 등 여섯 가지 반찬으로 짜여진 보살뷔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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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정신을 담는 전통 발우. 네 벌이 한 세트로 짜여져 있다.

청암사는 지금도 발우공양이 원칙이다. 승가대학원에 속해 있는 비구니는 저마다 자기 발우가 있다. 발우의 기원은 어딜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트라프사와 바루리카라는 두 우바새(여자 신도)로부터 최초의 공양을 받을 때 사천왕이 돌그릇을 각기 하나씩 부처님께 드린다. 부처님은 이 발우 네 개를 겹쳐서 포개 사용했다고 한다. 그 후 부처님 제자들도 부처님을 따라 네 개의 발우를 써서 공양을 하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한다.

‘발우’는 스님들이 쓰는 그릇. ‘발(鉢)’은 범어로 ‘응량기(應量器)’라 번역한다. 이는 ‘수행자에 합당한 크기의 그릇’이란 뜻이다. ‘우(盂)’는 밥그릇이라는 뜻의 한자. 발우는 포개지는 네 그릇으로 구성돼 있는데 큰 순서대로 어시발우·국발우·청수발우·찬발우라 한다. 어시발우에는 밥을 담는다. 청수발우에는 청수라고 불리는 물을 담고, 국발우에는 국, 찬발우에는 반찬류를 담는다. 네 그릇의 크기가 일정하게 줄어들어서 가장 큰 어시발우 안에 국·청수·찬발우 순으로 넣은 것을 보자기에 싸서 보관한다. 공양할 때는 자신의 왼쪽 무릎 앞에 어시발우, 오른쪽 무릎 앞에 국발우를 놓는다. 두 발우와 같은 간격으로 어시발우 뒤쪽에 찬발우, 국발우 뒤쪽에 청수발우를 놓는다. 즉 발우를 펼 때는 왼쪽 무릎 앞에 포개진 발우를 놓고 시계반대방향으로 차례차례 놓는다. 공양이 끝나면 왼쪽 뒤편에 놓인 찬발우부터 시계방향으로 거둬서 어시발우 안에 세 발우를 겹쳐서 넣으면 된다. 발우 외에 공양할 때 준비해야 할 것으로 발우깔개와 발우의 물기를 닦을 헝겊 수건과 수저가 있다.

발우를 폈을 때 수저는 청수발우에 둔다. 발우와 수저가 닿을 때 나는 소리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 조용하게 마음을 지켜보는 가운데 발우공양을 한다. 발우공양은 죽비 소리에 맞춰서 ‘소심경(小心經)’이라는 경전을 외면서 약 1시간가량 진행한다. 죽비를 한 번 치면 스님들 몇 명이 방 안에 준비된 천수물을 담은 천수통, 밥을 담은 공양기, 국을 담은 그릇을 들고 와서 음식을 나눈다. 음식은 청수·밥·국·반찬 순서로 받는다. 밥과 국은 우선 나눠주는 대로 받고 한 차례 돌고 나서 자신의 양에 맞게 가감할 수 있다. 어시발우를 세 번가량 받들어 올렸다 내리며 외는 ‘봉반게(奉飯偈)’, 어시발우에서 밥알을 조금 떠서 헌식기에 담으며 외는 ‘오관게’ 등을 왼다. 죽비 세 번 치는 소리가 들리면 공양을 시작한다. 공양을 할 때에는 발우그릇을 들고 입이 보이지 않게 먹으며 떠들거나 씹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공양을 다 마칠 때쯤에 숭늉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발우에 묻은 기름기를 제거해야 된다. 남겨 놓은 무 조각이나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발우를 깨끗이 닦아 숭늉으로 마신다. 맨 처음에 받았던 청수발우의 물을 어시발우에 부어서 국·찬발우 순서로 차례차례 물을 옮겨가며 손으로 닦는다. 청수물로 찬발우까지 다 닦았으면 청수통에 찌꺼기 없이 맑은 청수물만을 부어서 모아놓는다. 이때 만약 모아놓은 청수물에 작은 찌꺼기라도 있으면 그 청수통에 물을 부은 줄에 앉은 모두에게 다시 청수물을 나눠 마시게 한다. 마지막으로 ‘해탈주(解脫呪)’를 외면 공양이 끝난다. 발우공양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친환경적인 식사법이다.

◆청암사 사찰뷔페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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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사찰뷔페 시연회를 준비한 혜명 스님과 이심열 동국대 사찰음식과 교수.

이번에 청암사는 이 발우공양을 뷔페스타일로 대중화했다. 이를 위해 이날 청암사에선 평소 속인들이 보기 힘든 두 행사를 열었다. 청암사 유미사찰음식연구소(대표 상덕 주지 스님)와 동국대 전통사찰음식연구소 이심열 교수팀이 불교계에선 이례적으로 사찰과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사찰뷔페’ 전시회를 오픈한 것이다. 이 전시회의 연결고리는 인현왕후다. 조선 숙종 20년 1694년 4월 계비 인현왕후는 지아비로부터 버림받은 뒤 3년여를 청암사 보광전에서 은거했다. 그러던 중 뜰에 엎드려 복위를 알리는 교지를 받고 궁으로 복귀했다. 청암사는 이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문화재청 공모사업 일환으로 인현왕후 복위식을 거행했다. 이와 함께 ‘사찰 자비뷔페’라는 새로운 사찰음식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발우공양의 전통성에 속가의 음식문화를 조금 가미한 스타일이다.

현재 동국대 사찰음식조리교육학과에 재학 중인 혜명 스님은 청암사 승가대학원에 속해 있다. 그는 한 달 이상 자신의 지도교수인 이심열 교수와 함께 100여 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보살뷔페는 승가의 일상 뷔페로 밥, 국, 김치, 나물, 전, 부각 등을 토대로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여섯 가지 음식류를 모았다. 수행뷔페는 팔정도(8가지 바른 수행법)을 상징하는 8가지 음식을 합쳤다. 인연뷔페는 12연기를 의미하는 12가지 음식, 발원뷔페는 21일 기도발원을 의미하며 모두 21가지 음식이 섞이게 된다. 가장 질박한 밥상에서 승가와 속가가 함께 공양할 수 있게 조리를 했다.

밥 옆에 가을햇살처럼 앉아 있는 배춧국은 정말 조선의 삼베보자기 같았다. 청암사의 대표 국수는 동치미국수다. 동치미국수는 1~2월에 가장 맛있어 청암사에 겨울 손님이 오면 대접한다. 청아한 바람에 호젓하게 앉아 있는 청암사만의 울림이 있는 동치미, 가지소박이찜, 묵구이, 만두, 산초장아찌, 두부구이, 곰피튀각, 참죽장아찌, 동백잎부각 등에 시선이 오래 머물었다. 이 밥상이 일반 밥상으로 옮겨오는 데 적잖은 세월이 필요할 것 같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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