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통영 ② 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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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2   |  발행일 2018-11-02 제36면   |  수정 2018-11-02
섬의 등뼈처럼 난 옛길 지나면, 해·소나무·학이 여는 마을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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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에서 마을로 가는 만지도 옛길. 대숲과 동백의 터널을 지나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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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가는 길, 해와 소나무, 학이 마을 앞바다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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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도에 올라 연대도를 바라본다. 2015년 출렁다리가 놓이면서 두 섬이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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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도 산책길과 사구해안. 태풍 피해로 산책로는 일시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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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도의 백년 된 우물. 상수도가 없을 때에도 섬에는 물이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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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상회, 민박 등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만지도.

출렁다리를 앞두고 완만하던 숲길이 급해진다. 후다닥,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유연한 몸을 날려 가파른 길을 내달린다. 급했던 마음이 일순간 차분해진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지. 바위 위에 얇게 깔린 마른 흙을 조심스레 단단히 디디며 다리로 향한다. 태풍 ‘콩레이’가 왔을 때 출렁다리는 크게 흔들렸다고 한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다. 연대도와 만지도(晩地島)를 잇는 98.1m의 출렁이는 다리는 상상보다 안정감이 있다. 걸음이 탄탄하다. 가운데에 서서 바다를 본다. 다리 아래 두 섬 사이는 암초 해협. ‘자란목도’라 부른단다. 무슨 뜻일까. 작은 낚싯배 하나가 해협을 통과해 연대도의 단애 아래를 항해한다. 무슨 뜻일까. 곰곰 생각하며 만지도에 오른다.

◆ 만지도

만지도는 동서로 1.3㎞ 정도 길게 뻗어 있는 섬이다. 서쪽은 섬에 하나밖에 없는 만지산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했는데, 사람들은 만지산을 ‘큰산’이라 부른단다. 해발 99.9m다. 출렁다리가 닿는 동쪽은 비교적 완만한 암석해안이다. 다가가면 거칠고 투박한 면이 있는데 어쩐지 털썩 안겨 시간을 잊을 만한 마력이 있다. 섬의 남쪽 해안은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섬의 북쪽 해안에는 출렁다리에서 마을까지 목재 데크 산책로가 놓여 있다. 산책로 초입이 부서져 있다. 콩레이 탓이다. 작고 하얀 사구해안과 옥빛 바다를 섭섭하게 내려다본다. 출입 금지 테이프가 빈 그네처럼 흔들린다.

섬의 등뼈처럼 난 숲길로 들어선다. 옛길이라 한다. 아주 좁다. 따뜻한 햇볕에 정수리가 따끈하다. 둥치 큰 나무는 거의 없고 대부분 관목이나 풀이다. 무성한 풀숲 너머 바다가 짙다. 바닷가 산책로도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만지도는 약 200년 전 박씨, 이씨가 처음으로 섬에 들어와 정착했다 한다. 주변의 다른 섬들보다 마을이 늦게 형성되었다고 만지도다. 섬이 지네 형상이라 만지도라는 설도 있다. 저도는 닭, 연대도는 솔개, 그렇게 먹이사슬이 연결되어 모두가 번성할 거라고 옛사람들은 희망했다. 만지도는 오랫동안 원시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찾아드는 이들은 대개 낚시꾼들이었다. 포인트는 암석해안. 암초가 발달되어 있는 만지도 바다에는 감성돔과 우럭, 볼락이 우글거린다.


연대도·만지도 잇는 98.1m 출렁다리
명품섬 10 선정…작년 정비사업 완료
10여 가구 주민 대부분 어업에 종사
감성돔·우럭·볼락 우글…낚시꾼 천국

만지봉·몽돌해변 이어지는 ‘몬당길’
백년 된 우물…물 걱정 없이 지내와
‘문어와 군소 잘잡는 최고령 할머니’
두개의 섬 모두 문패글귀 보는 재미
다시마 등 만지섬 스티커 붙여 판매



2010년 연대도가 전국 ‘명품섬 10’에 선정되고, 2015년 출렁다리의 개통과 함께 만지도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추진한 명품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됐다. 전국에서는 14번째,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는 3번째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낚싯대 없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만지마을의 정비와 개선 등 사업이 완료된 것은 지난해 가을 무렵이다. 어디선가 쇳소리 들린다. 출렁다리가 흔들리나? 한 아저씨가 길가 무성한 풀들을 베고 계신다. 말간 길은 사람의 덕이다. 아주 천천히 길이 하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대숲의 터널에 든다. 이제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대숲과 동백의 터널, 그리고 동백 터널을 지나며 입꼬리가 오른다. 동백의 매끄러운 이파리를 스치며 빛으로 나선다. 숨이 턱 막힌다. 마을의 한 가운데다.

◆ 만지마을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 벽에 해와 학,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집 주인은 1월을 좋아하나. 계단을 내려간다. 삼거리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만지봉과 몽돌해변으로 갈 수 있는데, 만지도의 서쪽을 한 바퀴 도는 ‘만지도 옛길(몬당길)’이 이어지는 길이다. ‘몬당’은 ‘양지 바른 언덕’이라는 뜻의 통영 사투리라 한다. 해안 쪽으로 향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골목에 우물이 있다. 백년 된 우물이다. 현재는 상수도가 설치되어 우물을 사용하지 않지만, 상수도가 없던 시대에도 만지도는 항상 물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섬에는 우물 외에도 물 나오는 곳이 서너 군데 있어 옛날에는 물이 모자란 주변의 학림도, 연대도 주민들이 배를 타고 빨래를 하러 오곤 했다고 한다. 음악 소리가 들린다. 카페다. 하늘에 있을 이종환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환청은 아니니 마법을 부리는 카페다.

카페 앞은 선착장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명품마을 만지도’라 적혀 있다. 선착장 대기실 옆에 자그마한 만지 도서관이 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사람들’ ‘세계위인 슈바이처’ ‘우리동네 느티나무’ 등 제목이 따뜻한 몇 권의 책이 구비되어 있다. 마을은 작고 아담하다. 2015년 통계로 만지도의 인구는 15가구 33명이었다. 지금은 10가구가 채 안 된다고 한다. 게다가 통영에서 오가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마을 앞에는 가두리 양식장이 있다. 멸치와 참돔, 갈치 등이 많이 잡히고 굴양식을 한다.

만지도에도 연대도처럼 문패가 붙어 있다. 선명하다. ‘동백민박’은 ‘손재주가 많으신 부녀회장님 댁’, ‘임인아 댁’은 ‘문어와 군소를 잘 잡는 만지도 최고령 할머니 댁’, ‘전복 생산자의 집’에는 ‘만지도에서 직접 기른 전복만 판매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만지도 최고령자 임 할머니는 육지 처녀셨단다. 90평생을 만지도에서 살고 계신데 여전히 젊은이들보다 물속 군소를 빨리 찾아낸다고 자랑한다. 바닷가 마을 앞길에 가을볕이 쟁글쟁글하다. 아무도 없다. 모두 바다로 나갔을까. 만지도 특산물 판매점으로 들어선다. 청년 같기도 하고 중년 같기도 한 사내가 조용히 앉아 있다. 말린 홍합, 말린 굴, 말린 새우, 다시마. 통영은 굴이 유명하지, 무엇을 살까 고민한다. “만지섬 둥근 스티커 붙은 게 우리 섬에서 나는 거에요.” 그는 판매에 그다지 소질이 없다. 그것이 좋다. 말린 홍합과 다시마를 고른다. 만지섬 둥근 스티커 붙은 것으로.

시간이 빠듯하다. 트레킹은 고사하고 마을만 보았는데도 급하다. 다시 출렁다리를 건넌다. 연대항 방파제에 앉아있던 검은 고양이가 낭창낭창 보드라운 몸짓으로 테트라포드에 오르더니 빤히 바라본다. 사람을 피하기는 하지만 눈동자에 두려움이나 의혹은 없다. 달아항으로 향하는 배를 탄다. 오후 4시30분, 연대도에서 나가는 마지막 배다. 따스했던 빛과 바람이 어느 새 으스스 차다. “구경 잘 하셨소?” 나이 지긋한 뱃사람이 다정히 물으신다. 국립공원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의 손에 쓰레기가 담긴 봉지들이 들려 있다. 세상에 공으로 누리는 것은 없구나. 해가 지고 있다. 출렁다리에 사람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아,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산책로에 아주머니들이 걷고 있다. 직각으로 굽힌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 당당하고, 즐겁게 걷고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통영 미륵도의 달아항에서 ‘섬나들이호’를 타면 연대도를 거쳐 만지도에 선다. 연명항에서 ‘홍해랑호’를 타면 만지도로 곧장 간다.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큰 관계는 없다. 만지도 옛길(몬당길)은 출렁다리 입구에서 시작해 만지봉, 욕지도전망대, 몽돌해변 등으로 이어지는 약 2.5㎞ 구간으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전복해물라면이 훌륭하다는 입소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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