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청도

  • 이춘호
  • |
  • 입력 2018-10-26   |  발행일 2018-10-26 제33면   |  수정 2018-10-26
황금들녘의 화룡점정 ‘청도반시’
20181026
예전 감나무는 키가 커서 위에 달린 건 장대를 이용하지 않으면 딸 수가 없었다. 지금은 밭과 논에 아담하게 심겨져 있어 따기가 수월하다.
20181026
더없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 구름과 황금들녘이 완벽하게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는 청도읍성 위에서 바라본 청도 모습. 논두렁에서 자라고 있는 반시가 청도 가을 풍경의 화룡점정으로 다가선다.

청도(淸道). 옛날엔 ‘이서국’으로 불렸다. 사방 큼직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복판으로 청도천과 동창천이 흐른다. 큰 가뭄도 수해도 그다지 없던 곳. ‘사람 살기 꽤 괜찮은 고장’으로 불렸다.

차를 타고가는 게 아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더없이 파랗고 맑은 가을하늘이 해바라기 꽃처럼 드리워져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향해 몸을 풀고 있는 뭉게구름. 그 아래 펼쳐진 가을들녘의 정취를 리얼하게 느껴보려면 어디로 가야하나. 화양읍사무소와 맞물려 있는 청도읍성이 딱이다. 읍성 앞에는 인위적으로 조성해 놓은 태극 모양의 수생식물 탐방로와 정자 하나가 외롭게 앉아 있다. 그 주변 밭두렁에 드문드문 심겨진 청도반시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황금 들판, 그리고 구름과 멋진 앙상블이다. 주홍과 주황 사이의 색채를 뿜어내는 반시의 붉음은 결코 요염하지 않다. 시골 어르신이 외출 때 부리나케 칠한 ‘립스틱 자국’ 같다.

읍성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한옥카페가 바로 옆에 있다. 바로 ‘꽃자리’. 한때 소 키우며 풀꽃 잘 키웠던 이태호 사장(65)이 식물원 운영비 조달을 위해 2011년 이 카페를 열었다. 의외로 큰 반향이 일었다. 현재 400여종의 각종 화목을 가꾸고 있고 매달 두 번 음악회를 연다. 감말랭이·오디효소가 잘 어울리는 전통팥빙수, 그리고 단호박죽, 아니면 호박설기떡 한 점 먹으며 가을햇살 사냥을 하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가뭄과 수해 별로 없는 살기 괜찮은 곳’
읍성 한옥카페, 감·복숭아 수제맥줏집
동곡막걸리 열말 받아먹는 천년소나무
‘코미디도 배달 된다’철가방 극장 유명
높은 가을하늘·햇살 만끽하며 ‘소확행’

꽃자리 바로 근처에는 감과 복숭아로 만든 수제맥줏집이 있다. 이 사장이 여기를 강추했다. 그 역시 여기 조합원. 대경대학을 통해 OEM 방식으로 생산한 청도맥주인데 일반 라거맥주와 포스가 다르다. 감과 복숭아 향이 감돌고 특히 안주로 나온 졸깃한 족발이 인상적이다.

물좋은 고장. 자연 바늘 옆에 실처럼 따라 붙는 게 로컬 막걸리다. 청도는 단연 ‘동곡막걸리’. 금천면 동곡리에 있는 동곡양조는 90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 1929년 문을 열었다. 현재 80세인 김영식 사장이 아버지(김한광)의 가업을 잇고 있다. 하루 100상자 정도 생산한다. 상당히 소규모다. 간판도 1970년대 스타일. 공장은 조금 리모델링됐다고는 하나 예전 한옥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양조장에 정감어린 물품이 하나 있다. 왕소금을 담아놓은 나무 됫박. 왕소금은 막걸리 안주다. 막걸리 한 잔하고 한점 집어 먹어 보라는 동곡만의 후한 인심이다. 동곡막걸리는 다른 지역 막걸리공장처럼 맥주전성시절이 오면서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86년 인근 운문면·매전면·금천면 등지의 7개 막걸리 양조장을 합병해 재도약했다.

매년 삼월 삼짓날이 되면 수령 천년을 자랑하는 운문사 처진소나무가 입맛을 다신다. 막걸리를 받아 마실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곡막걸리만 마신다. 얼추 열 말 정도 먹는단다. 한 말은 열 되, 그러니까 막걸리 10상자 정도의 양이다.

청도하면 뭐가 생각나죠? 그런 질문을 받으면 처음엔 ‘추어탕과 감와인’이라 했다. 그런데 10여년전 그가 그 고장에 등장하면서 나는 곧잘 ‘청도는 전유성이 사는 고장’이라 했다.

개그맨 전유성. 지난 9월20일쯤 그가 느닷없이 전북 남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금도 그가 청도에 사는 것 같다. 그는 당초 청도가 아니라 울릉도에서 눌러 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청도와 인연을 맺는다. 그는 타고난 스토리텔러였다. 세상에서 가장 이름을 잘 짓는 사내 중 한 명이다. 그가 건드리면 뭐든지 승률이 높아진다. 처음에는 팔조령 아래 칠곡교회를 찜하곤 서둘러 ‘니가쏘다쩨’란 상호의 피자 & 짬뽕집을 개업했다. 엎질러진 커피잔 그림을 천연덕스럽게 벽화처럼 그려놓았다. 전유성다운 상호였다. 특히 짬뽕 그릇이 웃음을 자아낸다. 젓가락을 꽂아놓을 수 있는 고리를 그릇 옆구리에 부착해 놓았다. 전유성만의 감각이었다. 이어 서울에서 고생하는 후배 개그맨의 살길을 찾아주기 위해 ‘코미디 철가방 극장’을 차렸다. 짜장면과 소줏병 조형물을 부착했다. ‘코미디도 배달이 된다’면서 입소문을 냈다. 이어 국내 첫 반려견페스티벌격인 ‘개나소나 콘서트’를 성공시켰다. 그 덕분에 한국코미디타운은 물론 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 등이 탄생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전유성과 최복호가 단짝이 된다. 둘 다 타고난 미식가. 그리고 일을 잘 만드는 사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