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실제아동 학대 사건 다룬 이지원 감독작 ‘미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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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9   |  발행일 2018-10-19 제43면   |  수정 2018-10-19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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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백’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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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살인 전과 아픈과거 품은 여자
폭행당하다 집에서 도망쳐나온 아이
자신과 닮은 아이 지키며 세상과 맞서

‘열한번째 엄마’‘도희야’‘도가니’
가정·장애학교 아동학대 다룬 작품
아이 보호자인 부모·선생님이 가해자
2016년 한해 1만8700건…매년 증가

‘백상아’는 어린 시절 남편과 사별한 후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린 엄마 ‘정명숙’에게 여러 차례 손찌검을 당한다. 엄마가 이성을 잃은 어느 날 피투성이가 돼 응급실에 실려가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엄마는 상아를 버리고 떠난다. 여고 시절 상아는 성폭행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러 전과자가 된다. 출소 후 마음의 문을 닫고 외롭게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학대를 당하다 집에서 도망쳐 나온 어린아이 ‘김지은’을 만난다. 지은의 아버지 ‘김일곤’은 게임 중독자다. 20세 때 실수로 아빠가 된 그는 딸 지은에게 1%의 애정도 없다. 오히려 아이가 죽길 바란다며 방치한다. 그의 동거녀 ‘주미경’은 밖에선 잘나가는 보험설계사지만 집에만 오면 게임에 빠진 남자와 팍팍한 현실에 쌓이는 분노를 지은에게 쏟아낸다. 지은은 부모에게 감금당한 채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다. 어둡고 습한 화장실에 갇혀 있던 지은은 좁은 창문을 통해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면서 경찰 아저씨들도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파출소에 찾아가면 부모를 불러 다시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 이유로 또다시 맞는다.

지난 11일 개봉한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 이야기다. 영화는 아픈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상아가 자신과 닮은 아이 지은을 만나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전개상 감정선이 영화의 주된 포인트로 이끌어 가야 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하다. 화려한 외양과 허스키한 목소리, 투박한 제스처를 지닌 ‘백상아’를 연기한 배우 한지민의 파격 변신도 놀랍지만, 상아의 모든 과거를 알고도 우직하게 곁을 지키는 강력계 형사 ‘장섭’을 연기한 배우 이희준이나 신수원 감독이 연출한 ‘마돈나’ 이후 악역으로 돌아온 배우 권소현, 학대받는 아이의 고통을 잘 그려낸 배우 김시아까지 모두 제 몫을 충실히 해내며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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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감독

이지원 감독은 2000년 김대승 감독의 ‘번지 점프를 하다’ 연출부를 시작으로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 스크립터와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 윤색을 거쳤다. 이후 직접 시나리오를 쓴 단편영화 ‘그녀에게’를 연출한 이 감독에게 ‘미쓰백’은 18년 만에 장편영화 데뷔작이 되는 셈이다. 이 감독은 몇 년 전 옆 집에 살고 있던 아이가 도움이 필요해 보였지만 상황 때문에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가 뉴스를 통해 쏟아지는 아동학대 관련 사건을 보며 그때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했다. 시나리오는 한두 달 만에 완성했지만 후반 편집 작업으로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 사랑 이상의 감정이 생겨버렸단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아동학대를 다룬 작품들이 없진 않았다. 근작들을 떠올려보면 김진성 감독의 ‘열한 번째 엄마’(2007)에선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기초생활비조차 도박으로 날리고 술만 들어갔다 하면 손찌검하는 아버지를 둔 소년이 나온다. 배우 김혜수는 그런 아버지가 데려온 ‘진짜’ 열한 번째 엄마로 나온다.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2011)는 소설가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00년부터 4년 동안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실제 발생한 장애아 성폭력사건을 다뤘다. 당시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성폭행을 저질렀고 학교 사람들은 이를 외면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건의 가해자와 책임자들이 대부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교단에 다시 섰다는 사실이 관객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이창동 감독이 제작한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2014)에서는 어느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의붓아버지와 알코올중독 할머니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 온몸이 흉터로 가득한 여학생이 등장한다.

자신의 아이를 손찌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아이를 보일러실에 묶어두고 추운 길거리에 얇은 옷 하나만 걸친 채 내보내는 이들, 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창고에 방치해 굶어 죽게 만든 이들, 화장실에서 아이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이들. 아이들은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절망 속에서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부모가 바로 가해자였으므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아동학대 사건들은 그러나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학대피해 아동보호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1만8천700건의 아동학대가 발생했는데, 이 수치는 전년 대비 7천여 건이나 상승한 것으로 2011년 이래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실제 통계로 그 숫자를 헤아리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나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아동학대 관련 사건들을 지켜보는 일도 자주 우리를 억누를 수 없는 분노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일은 아동학대 사건의 특성상 침묵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건이 더 많을 거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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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 피해자를 연기하는 어린 배우들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미쓰백’ 역시 학대 묘사와 관련해 “물리적 폭력의 재연이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며 “촬영 시 클로즈업이나 아동의 정면샷보다는 측면샷을 활용했다”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실제 영화 촬영 당시 아역배우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상담사와 치료를 병행했다고. ‘도가니’ 제작 당시에는 아역배우들에 대한 심리치료 조치를 하지 않아 이 부분을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할리우드에서는 아역배우를 6시간 이상 촬영해서는 안 되며 스태프에게 아이를 대하는 법을 따로 교육하는 것이 매뉴얼로 정해져 있다.

이지원 감독이 “작품을 준비하며 아동학대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고 전문가들을 만나며 들었던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은 가해자 중 70%는 한때 아이에게 헌신적인 부모였다는 것”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한 게 기억난다. 세계 최초로 자유학교를 세우고 그로 인해 사형까지 당해야 했던 교육순교자 프란시스코 페레의 유명한 저작 제목처럼 꽃으로도 맞는 아이가 더는 없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하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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