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시장·도지사의 대구경북 상생과 그 공허함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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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7   |  발행일 2018-10-17 제31면   |  수정 2018-10-17
[박재일 칼럼] 시장·도지사의 대구경북 상생과 그 공허함
논설위원

함께 살아간다는 ‘상생(相生)’은 일견 착한 말이다. 공존과 협동의 정(情)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의 지향점일 수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통해 각각 재선과 초선 광역단체장 임무를 수행하게 된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유난히 대구·경북 상생을 부르짖고 있다. 급기야 지난 2일에는 일일 교환근무까지 선보였다. ‘쇼’적 성격이 강해도 착한 이벤트라 할까. 대구경북의 현안, 예를 들면 통합신공항 추진, 대구 취수원 이전, 공동 관광루트 개발에 진력하겠다고 했다.

대구·경북 상생은 오래된 주제다. 대구가 경북에서 분리된 지 37년이 지났지만, 떨어지면서부터 오히려 상생이란 정반대의 지향점이 구호가 됐다. 경북도 청사가 대구에서 250리나 멀어진 안동·예천으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가는 사람 부여잡는 듯 상생 구호는 달아올랐다.

권 시장과 이 도지사가 대구·경북을 경제적으로 통합해 550만 메가시티로 건설하겠다거나 싱가포르처럼 한 나라로 나아가자고 한 것은 대구와 경북이 한몸이었던 역사를 생각하면 마땅한 비전이다. 반면 딴 살림이 좋다면서 갈라선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비전의 현실성과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점을 알아차리면 이 구호가 또 얼마나 공허한지 느끼게 된다.

공허함을 채우려면 먼저 권 시장은 대구 주변 자치단체와의 네트워크부터 돈독히 해야 한다. 경북도지사와의 만남도 좋지만 경산·영천·구미시장, 칠곡·성주·고령·청도군수와의 유대 강화다. 대구는 이들 위성도시로 둘러싸여 있다. 대구가 진정 메가시티로 나아가려면 이들 위성도시와의 관계가 우선이다. 우리는 성주에 사드 배치가 결정되고 정부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대구~성주 간 전철을 깔아주겠다는 등의 제안이 어렴풋이 나온 이후, 이를 놓고 대구시장과 성주군수가 심각하게 논의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또 구미와 대구가 밀접하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면서도 구미 경제의 쇠락이 대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수치로 분석한 바 없고, 대구∼구미 출·퇴근 버스의 감축이 얼마나 심각한지 자각하지 못한다. 구미~대구 간 도시철도는 하세월이고, 오히려 서로 말만 하면 상처만 덧나는 취수원 이전의 마이너스 게임에만 골몰한다.

권 시장은 기왕이면 자유한국당의 이철우 경북도지사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도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 일전에 이 칼럼에서 한번 적시했지만, 대구시청에서 경남도청 창원까지는 네이버 검색으로 95㎞이고, 안동의 경북도청까지는 103㎞다. 원래 대구는 부산까지 포함하는 경상도의 딱 중간이고, 실제로 경상감영이 있던 영남의 중심이다.

경북도는 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다. 경북은 근 2만㎢(1만9천㎢), 남한 전체 면적의 5분의 1로 전국 자치단체 중 1위다. 면적만 보면 네덜란드(4만1천㎢), 벨기에(3만㎢), 대만(3만5천㎢) 같은 나라에 비견될 수 있다. 대구(883㎢)보다 면적이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697㎢)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전에 토론회에서 이철우 도지사는 경북의 농산물 종류가 미국의 그것보다 더 많다고 했다. 경북은 평야와 산과 바다에다 항만과 공항과 국가산업단지가 즐비하다.

그래서 경북도는 대구와의 막연한 관계 개선을 말하기보다는 입체적인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 사실 경북도청의 안동은 대구의 위성도시가 되기 어렵다. 북부 경북은 오히려 수도권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포항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도시 간의 연계, 내륙도시 구미 국가산단과 김천의 융합, 안동·영주의 산천과 문화를 버무린 도시발전을 구상해야 한다. 당장 근거리 중소도시 간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

사실 행정적으로 갈라놓은 두 지역을 행정을 책임진 이들이 통합을 외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래서 작금의 대구·경북 상생은 한편 나쁜 언어가 될 수 있다. 자칫 우리끼리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정치적 구호의 복선마저 엿보인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독 대구·경북만이 자유한국당으로 남았다. 행여 특정 정치세력의 생존을 향한 대구·경북 상생이 된다면 그건 비극에 가깝다. 대구·경북은 크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시야를 넓혀 입체적 전략을 장착할 때 상생할 수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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