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대구高 야구부 ‘최대 부흥기’ 일군 손경호 감독

  • 명민준 윤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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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3   |  발행일 2018-10-13 제22면   |  수정 2018-10-13
“선제점 주면 무너졌던 선수들…캐치·송구 반복 수비부터 다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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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 야구부 감독실에서 만난 손경호 감독이 올시즌 대구고의 선전 비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구고 야구부가 개교 60주년에 최대 부흥기를 맞았다. 1976년 야구부 창단 이후 대붕기 우승기를 8차례나 마운드 위에 꽂았고, 봉황대기에서는 2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전국체전(2000년), 대통령배(2003년), 청룡기(2008년) 등 주요 고교대회에서는 한차례 이상씩 우승맛을 본 명문 야구팀이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며 존재감을 잃었던 게 사실이다. 2010년 봉황대기에서 역대 두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을 끝으로 고교 야구판에서 대구고의 활약소식은 그야말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남다른 동문애로 알려진 대구고 동문들은 야구부의 부진을 지켜보며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5년 당시 경상중학교 감독으로 있던 손경호 감독에게 SOS를 요청했다. 대구고 25회 졸업생으로 1989년 신인 지명을 통해 잠시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했던 손 감독은 1991년 지도자로 변신한 이후 아마야구에서 명장으로 거듭나던 중이었다. 졸업 30년 만에 대구고로 돌아온 손 감독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야구부를 체질부터 바꿔 놓았다. 그 덕일까. 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대구고는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올해 황금사자기 준우승을 시작으로 대통령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최근에는 국내 최고권위의 봉황대기에서 8년 만에 우승기를 가져왔다. 손 감독이 합류하면서 최대 부흥기를 맞은 대구고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달 27일 대구고에서 손 감독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부임 당시 선수들 패배의식 빠져있어
“할 수 있다” 독려하며 기본기에 매진
올해 5월 황금사자기 준우승 ‘기폭제’
대통령기·봉황대기 연거푸 들어올려
평가전 등 많이 해 공평한 활약 기회
성적통계 바탕 전국대회 출전자 결정
팀운용 잡음 없애고 기량도 끌어올려

▶2015년 대구고 부임 당시 상황을 말해 달라.

“2000년 초에 경상중 감독으로 부임해 2015년까지 경상중을 전국적인 강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21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이끈 것을 시작으로 15년 동안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11차례 일궈냈다. 특별히 다른 학교로 옮기거나 고교야구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문회 모임자리에 나가게 됐는데, 동문들이 나에게 ‘대구고 감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대구고 야구팀 출신이라는 전통성도 있고, 경상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나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당시 대구고가 갖고 있던 문제점은.

“졸업 30년 만에 대구고로 돌아와 ‘이 팀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문제점을 빨리 발견한 것이 다행이었다. 부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들과 함께 극기 훈련을 갔다. 고된 훈련을 마친 후 선수들이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목표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나는 우승 사진 아니면 같이 찍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선수가 ‘그러면 앞으로 저희랑 같이 사진을 못 찍겠네요’라고 말했고, 선수들이 다 같이 웃었다. 선수들이 심각한 패배의식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당시 선수들은 이기고 있어도 늘 불안해 했고, 먼저 점수를 주면 일찍 무너지는 경향을 보였다. 선수들의 의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쓴소리도 많이 했고, 대화 중에 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경기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기본에 충실했다. 특히 수비다. 기초부터 다져 나갔다. 정확히 잡고 정확히 송구하는 동작을 반복시켰다. 펑고를 수도 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그 결과 다른팀 감독과 코칭스태프로부터 수비가 일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됐다. 한국 최고의 타격코치로 알려진 김용달 KBO 육성위원의 도움도 컸다. 대구 출신의 김 위원은 내가 대구고 부임 이후 2015년부터 겨울이면 3~4개월 정도 인스트럭터(팀에 위촉을 받아 선수를 지도하는 사람)로서 동계훈련에 도움을 준다. 김 위원을 통해 나도 지도자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올해 대구고가 최고 부흥기를 맞았다. 연초부터 예상한 성적인가.

“사실 올 초 잡은 목표는 전국체전 금메달이었다. 체전에는 주로 2학년들이 경기에 나서기 때문에 수비가 탄탄한 우리팀이 경쟁력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특히 작년 가을부터 수비훈련을 정말 열심히 해뒀다. 그런데 5월 열린 황금사자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올라왔다. 내가 정신무장을 시켰다 해도, 2010년 이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서 선수들이 기가 죽어있던 게 사실인데 준우승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다음 대회인 청룡기는 쉬어가더라도 대통령기에서 한 번 우승해보자고 선수들을 독려했는데 대통령기에서 우승해 버렸다. 그간 준비해 온 수비력과 타격이 큰 힘을 발휘했다.”

▶최근 우승한 봉황대기는 전국 고교야구 전체팀이 참가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대회였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첫 경기부터 우승후보인 장충고를 상대하게 됐다. 얼마 전 NC 1순위 지명을 받은 송명기는 150㎞의 강속구를 던지는데 우리 선수들이 주눅들지 않고 경기에 임해줬다. 송명기를 상대로는 만루홈런까지 뽑았다. 우리가 5-0까지 앞서갔는데, 체력 안배차원에서 후보선수들을 투입하다보니 8-8 동점이 됐다. 결국 끝내기 안타로 극적으로 이겼다. 장충고를 상대로 첫 경기부터 드라마틱한 승부를 펼치다보니 다음 경기부터 승승장구하게 되더라.”

▶선수 시절 이야기를 좀 해달라.

“수창초등 3학년때 달리기를 잘해서 학교 야구부장이 부모님을 설득해 야구를 시작했다. 사실 조용히 공부나 하면서 등·하교도 후문 쪽으로 해서 야구부가 있는 줄도 몰랐다. 어찌됐든 그 시절 야구 시작 이후 쭉 2루수로 활동했다. 대구고 시절 야구에 약간 눈을 떴고, 계명대 재학 4학년 때 야구가 정말 잘됐다. 그래서 프로 지명까지 받아 빙그레에 입단하게 됐다. 대학시절에 야구맛을 봐서 해 볼 만할 거라 생각했는데 프로는 산 넘어 산이더라. 다들 잘해서 뽑혀 왔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입단 2년차에 피로골절을 당했다. 어릴 때부터 나를 돌이켜보면 나는 엄청난 노력파였다. 프로에서도 안되는 걸 하려다보니 과부하가 걸려서 정강이에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렇게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인가.

“1년 정도 쉬다가 1991년쯤에 영남대 측의 제안으로 인스트럭터로 합류했다. 이후 1998년까지 경상중과 경북고에서 코치생활을 하다가 1999년에 경상중 감독을 맡았다. 내가 탄탄대로만 걸었으면 지도자로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실패를 많이 해봤으니 아이들의 심정을 잘 안다. 누구보다 후보선수의 설움도 알고,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공평하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팀 운영을 하나.

“고교 야구는 진로가 직결되다 보니 학부모들이 팀이 이기는 것보다 자식들 출전 여부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 학부모 면담 시에 이런 점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는 분들도 많다.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감독입장에서는 성적을 신경써야 한다. 시즌돌입 직전에 최대한 자체평가전과 연습경기를 많이 가져서 선수들에게 공평히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성적통계를 최대한 정확히 내고, 이 지표를 바탕으로 전국대회 출전 선수를 정하는 것이다. 팀 운영상 잡음도 없고, 선수 기량도 끌어올릴 수 있어서 다들 만족해한다.”

▶김 감독의 손을 거친 선수들이 KBO를 호령하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SK 김강민은 경북고 시절에 내가 직접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시켰다. 당시 경북고 팀에 3루수가 없었다. 투수였던 강민이가 그 포지션에 적합했다. 어깨도 좋고, 타격능력도 있었다. 자기도 어느새 수비를 즐기더라. 1학년때 전향시켜서 3학년이 되자 전국 톱랭커 3루수가 돼 있었다. 배영수는 경북고 시절 팔을 다쳐 수술진단을 받았다. 내가 집안 어른들을 설득해 직접 재활시켜 보겠다고 했다. 나도 부상을 많이 입어봐서 영수와 함께 열심히 재활했다. 그 결과 수술을 하지 않고 프로무대로 넘어가서 몇 년간 부상 없이 활약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구고 동문들이 믿고 응원해준 덕에 좋은 성적을 낸 것 같다. 앞으로도 대구고의 활약을 지켜봐달라. 특히 서재용 교장을 비롯해 봉황대기 우승 이후 직접 거금을 마련해 선수들을 위한 축승회를 열어준 정수홍 총동창회장에게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 글=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사진=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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