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할 수 있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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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0 08:00  |  수정 2018-10-10 08:00  |  발행일 2018-10-10 제22면
[문화산책]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할 수 있게 하는 책
김인숙 <카페책방 ‘커피는 책이랑’ 대표>

폭력의 조각은 항상 떨어져 있었다. 그 조각은 내게서 떨어지기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서 떨어진 조각이기도 했다. 가끔 길을 지나가다가 다른 사람에게서 그 조각을 발견할 때면 멀찍이 떨어져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며 스쳐 지나갔다. 내가 폭력의 조각에 찔릴 때면 참고 참다가 도망가기도 하고, 반짝이는 조각이 되어 찔러보기도 했다. 내게 폭력을 행사했던 주체는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이 많았다. 가족이나 사랑했던 이들이 나를 아프게 할 때면 내가 먼저 했던 말은 “내가 잘못했어”였다.

내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은 내게 사과를 요구하거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내 눈 앞에서 이게 아니라며 쾅하고 느끼던 그 순간 뒤돌아 도망쳤다. 최근 신문방송에서 연일 보도됐던 한 기사에서 전 남자친구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연예인의 CCTV 사진을 보게 됐다. 기사를 읽고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읽었다. 오사 게렌발의 ‘7층’.

오사 게렌발의 ‘7층’은 데이트 폭력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사랑을 속삭이던 상대가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주인공에게 행사하는 과정들, 헤어지고 법정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이야기를 80여 페이지에 그려냈다. 주인공이 경찰서에서 고소절차를 밟기 위해 증언을 하고 난 후 경찰관에게 용기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부분이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7층’으로 만났던 오사 게렌발은 ‘가족의 초상’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시간을 지키다’까지 가족에 관한 그래픽 노블로도 꾸준히 작업하는 작가다.

우리 책방에서 작가 오사 게렌발의 책들은 항상 책장에 준비되어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두운 내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들이 팔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이 이 책을 구입해 우리책방의 의외의 베스트셀러다. 판매와는 상관없이 앞으로도 항상 여러 권을 입고해 둘 예정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폭력의 조각들이 이 책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 전진하는데 용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7층’에서 오사가 뜯긴 살점을 바라보고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했던 그 모습처럼.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서지 않고 전진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바란다. 김인숙 <카페책방 ‘커피는 책이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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