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원장의 한의학 레터] 마음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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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9 08:00  |  수정 2018-10-09 08:00  |  발행일 2018-10-09 제15면
시간처럼 흘러가는 게 마음…정체되면 병 생길 수 있어
한의학서 보는 마음은 간장종지 크기
조금만 신경써도 가득 차고 가슴 답답
침·약으로 정체된 흐름 푸는 게 치료
[최재영 원장의 한의학 레터] 마음의 흐름

몇 년 전 한 아주머니가 오랫동안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하고 열이 오르며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온 몸이 결린다고 찾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증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아들이 불치병으로 투병하다 어머니 품에서 숨을 거둔 것과 거의 같은 시기였다. 아들은 “어머니는 강하시니까 걱정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고, 환자 스스로도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몸이 힘든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도 다들 잘 극복할 것이라고 했다면서 어머니는 “선생님 보기에도 제가 강해 보이지 않냐”며 되물었다.

나는 그분에게 “몸이 아픈 이유는 극복하지 못할 것을 극복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얘기해 주었다. 친아들이 죽었는데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단 한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극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겨내지 않아도 되고요. 참지 말고 슬퍼하세요. 그게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아주머니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몰래 몰래 눈물을 흘렸겠지만 억누르고 참아야 했던 적이 더 많았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12번 변한다는 옛말이 있다. 사람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12시간계가 흘러가는 것처럼 마음도 역시 흘러감을 말한다.

혈액순환이 정체되면 육체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과 같이 마음의 어느 한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고 얽매이게 되면 더 낫기 힘든 병이 생기는 수가 있다.

이렇게 얽매이기 쉽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위의 환자 마음처럼 극복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오히려 큰 부담감으로 오게 되는 경우다. 어찌 보면 사람의 심리란 참 미묘하다. 잊으려고 애를 쓰면 잊어지지 않고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잊게 되어 버린다.

또다른 사례가 있다. 불면증이 극심한 한 여성 환자가 그쪽 분야에 저명한 한 교수를 찾아갔다. 그 교수는 “불면증에 아주 잘 듣는 약이 있는데 이 약에는 복용 방법에 있어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24시간 동안 잠을 한숨도 자지 않은 상황에서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고 처방했다. 이틀이 지난 후 다시 찾아온 환자에게 교수가 “약을 먹으니 좀 어땠느냐”고 물었다. 환자는 “안 자고 버틴 후 약을 먹으려고 했는데 자꾸 잠이 쏟아져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고 얘기했다.

공황장애도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은 인기를 유지해야 되는 부담감이 어느 순간 무대에 설 때마다 두려움으로 오게 되고, 어르신들은 아프지 않으려고 하는 부담감이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한다.

인기가 떨어질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다며 먼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느끼는 상처, 아픔, 절망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이 처음엔 많이 힘들 수 있으나 시간이 흘러가듯이 마음은 다시 흘러가며 물에 씻기어 가듯 상처와 아픔, 절망이 자연히 치유되어 갈 수가 있다.

얼마 전에도 성적 유지 때문에 불안감이 심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는 한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마음의 크기가 얼마만 할까”라고. 그 학생은 “자신의 크기만큼 자기 마음의 크기도 결정되지 않을까”라는 똑똑한 답을 내놨다.

그러나 한의학에서 말하는 마음의 크기는 간장종지만 하다고 한다. 간장종지만 하기 때문에 조금 신경을 쓰는 것으로도 쉽게 가득 채워져 버리고 떨쳐지지 않는 부담감은 가슴을 터질 듯이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간장종지만 한 마음이 계속 흘러가고 있을 때, 그 마음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비추어져 담긴다고 한다. 이렇듯 마음에 대한 한의학에서의 치료 방법은 혈액순환이 잘 되면 육체의 병이 낫듯이 12경락을 다룸에 마음이 흘러가게 하여 병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에 있다.

한의학에서 다루는 12경락의 흐름은 기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또한 12번 바뀌며 변해가는 마음의 흐름을 말하며, 침이나 약으로 다루는 궁극적인 목적은 정체되어 있는 마음을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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