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렬의 미·인·만·세] 무한 평면 무한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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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9   |  발행일 2018-09-19 제30면   |  수정 2018-09-19
[김옥렬의 미·인·만·세] 무한 평면 무한 어둠
아니시 카푸어_반타 블랙
[김옥렬의 미·인·만·세] 무한 평면 무한 어둠
현대미술연구소 소장

예술가는 꿈을 먹고산다. 이 꿈은 상상을 그리는 것, 현실 너머의 세계를 색이나 형상을 통해 반추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삶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술가의 삶은 일상과 상상, 그 사이 공간에 머물며 그 둘의 세계를 연결하는 시공간 속에서 산다. 예술가가 비현실적인 몽상가로 보이는 이유다. 예술가는 왜 비현실적인 몽상가가 되었을까. 그것은 예술가에게 가난할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면서부터일 것이다.

예술가에게 ‘굶주릴 자유’는 배부른 구속을 벗어나면서 당연한 것이 되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그 사이 예술가의 시선을 뚫어내는 심연의 깊이는 눈이 아니라 마음이 보는 것 혹은 기억의 층들이 빚는 색과 형의 시각화일 것이다. 그러나 빛을 그리기위해 실내에서 야외로 나간 화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이 비추는 풍경을 포착하기 위해 빠른 필치로 그림을 그렸다.

빛을 찾아 그림을 그린 화가의 눈이 광학이론이나 색채이론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었든지간에 그들은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빛을 색으로 포착했다. 그리고 백년을 훌쩍 넘긴 지금 눈을 감은 것보다 더 깊은 어둠처럼 눈을 뜨고서도 볼 수 없는 색을 본다. 그 깊고 어두운 색은 현존하는 물질 중에서 가장 흡수율이 높다고 하는 반타 블랙이다. 무결점의 블랙인 이 색은 인간의 시각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반타 블랙은 빛이 있어도 눈을 뜨고서도 오직 검은 무한 절벽뿐이다. 그냥 검은 색이 아니라 평면의 절대성과도 같은 무한 평면이다. 마치 눈을 감은 것보다 더 깊은 어둠이 눈 앞에 있다. 이 무한평면은 착시의 깊이를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마음속을 모른다는 말이 무색하다.

반타 블랙은 탄소나노튜브를 저온공정으로 만든 물질이라고 한다. 이 물질 앞에 서면 평면의 절대성 앞에서 뜬 눈으로 절벽의 어둠을 본다. 빛을 온전히 흡수하는 블랙이다. 환한 빛을 찾아 나선 화가의 눈과 심장으로 굶주릴 권리와 자유를 획득한 소중한 가치는 여전히 펄펄 살아있다.

착시를 걷어내고 환한 빛 속에서 색을 찾았던 화가의 꿈, 눈부신 과학의 맹렬한 발전 속에서도 의식 너머 잠재의식을 일깨우던 화가의 눈은 ‘본다는 것’의 의미와 깊이를 발견했다. 형식의 배후를 발견하는 것은 현상 너머의 깊이를 읽고 나를 보는 눈과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의 작품과 마주하고 심연을 볼 수 있다면 심연 역시 나를 본다. 깊이(심연)는 표면(거울)이 있어야 무한에 빠지지 않는다. 형식과 의미 간의 팽팽한 긴장과 종합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만이 닫힌 문을 열 수 있다. 이 문을 열어 가는 화가에게는 꿈을 먹고 상상을 그리도록 구속과 억압을 거두어야 한다. 무한 평면 무한 어둠이라는 평면의 절대성 앞에서 마음의 눈을 뜬다.

현대미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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