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예술인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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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7   |  발행일 2018-09-17 제30면   |  수정 2018-09-17
[하프타임] 예술인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
최미애 문화부기자

“좋아서 하는 거 아니냐.”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예술인을 이렇게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있다. 보통 다음과 같은 말도 이어진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돈이 적어도 어쩔 수 없지.”

그런 인식 때문일까. 문화계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보상은 유독 박하다. 이런 여건은 갓 시작한 예술인에게는 더욱 혹독하게 느껴지고, 예술 외에 다른 일을 해야 하냐는 고민도 하게 된다. 지난해 대구 서문시장 글로벌 대축제에서는 버스킹 참가팀에 교통비 2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해 논란이 됐다. 이보다 앞서 컬러풀페스티벌, 치맥축제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지역의 한 뮤지션은 “아르바이트 하면서 음악만 하는 친구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공연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면 음악을 계속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문학 분야에서도 정당한 원고료 지급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SF작가 단체인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는 최저임금처럼 ‘최저고료’를 만들자는 ‘#최저고료_원고지1매_만원’ 해시태그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 최근 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면 문인들에게 돌아가는 원고료가 턱없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 대상인 문예지들의 평균 고료는 장편 소설을 제외하고는 200자 원고지 1매당 1만원을 넘지 못했다.

최근에는 정부가 정책으로 이를 보장해주려는 움직임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문화 분야에서 표준계약서 사용률을 높이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45%에 머문 표준계약서 사용률을 6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 예술인복지법을 개정해 표준계약서 사용에 대한 조사권을 신설하고, 표준계약서 사용을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계 자체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 공연장과 함께하는 공연에 비해 민간 영역에서 이뤄지는 공연에서는 계약서를 쓰는 문화가 완벽하게 자리잡지 못했다. 평소 친한 사이, 늘 보는 사이라는 이유로 계약서는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 지역 출신 예술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지역에서 활동했을 때의 기억이 좋지 않다고 했다. 계약서도 쓰지 않고, 출연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적도 있어서다. 예술활동의 대가에 대한 문제는 아니지만 계속 연습에 참여했는데 어느 한 명의 말 한마디로 자신의 캐스팅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 상황이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없었다.

지난주 퇴근길 지하철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한 학생을 봤다. 한 손에는 악보집을,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악보와 유튜브에 올라온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영상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조성진이 건반을 누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연주할까’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느껴졌다. 이 학생이 예술인으로 활동하게 됐을 때, 그가 지하철에서의 시간을 쪼개가며 해온 노력을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최미애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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