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엄마의 초과근무 수당

  • 최소영
  • |
  • 입력 2018-09-17 07:52  |  수정 2018-09-17 07:52  |  발행일 2018-09-17 제18면
양육비 받아 손녀와 딸 위해 ‘푸짐하고 따뜻한 식탁’
출·퇴근 명확 초과근무 수당도 요구
손녀와 함께 아파트장터 ‘단골고객’
수당으로 좋은 재료 구입 밥상차려
고단한 딸 위로하는 엄마만의 방식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엄마의 초과근무 수당

우리 학교에서 엄마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다. 엄마를 유명인사로 만든 일화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엄마의 ‘초과근무 수당’이다. 원래 초과근무 수당은 직장인이 업무 시간 외에 남아서 일을 더해야 할 때 받는 월급 이외의 별도 수당이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에 퇴직을 한 엄마가 초과근무 수당으로 유명하게 된 사연은 대략 이러하다.

퇴직 후 엄마는 내 딸의 양육도우미로 재취업을 했고, 스스로 출퇴근 시간을 정하셨다. 특히 퇴근 시간이 문제인데 오후 6시가 공식적인 엄마의 퇴근 시간이다. 또한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6시부터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 전까지는 그 누구도 엄마의 휴식을 방해할 수 없으며, 나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도 일을 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자신은 ‘쏘쿨’한 엄마임을 주장하며 방학 동안은 일을 하지 않으니 양육수당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엄마는 1년에 10개월을 일하는 셈이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참 경우 바르고 말씀처럼 쏘쿨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집→학교, 집→학교만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주말부부인 데다 오후 6시만 되면 퇴근하는 엄마를 두고 어떻게 회식이나 모임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빠질 수 없는 1박2일 연수나 학교 워크숍 등이 문제의 핵심이다. 또 학교의 연구부장으로서 초과근무를 꼭 해야만 하는 날들도 있다. 이런 날들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엄마에게 애걸복걸을 한다. 그러면 엄마의 답은 아주 간단하다.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엄마의 초과근무 수당은 다음과 같이 책정되어 있다. ‘4시간 미만의 경우 : 5만원, 하룻밤 손녀를 데리고 자야 할 경우 : 1일 10만원’. 때문에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1박2일 워크숍을 다녀오면 도착 시간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최소 15만원 이상의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초과근무 수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이너스 통장의 힘을 빌려야만 할 때도 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내 친엄마가 맞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식에게는 주어도 주어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부모라는데 우리 엄마는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더군다나 마이너스 통장의 힘을 빌려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을 상대로 얄짤없이 돈을 가져가니 내 입장에서는 마음속으로 욱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엄마는 이 수당을 어디에 쓸까? 그 사용처가 가장 궁금한 사람은 바로 나다. 그래서 엄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새 옷이나 가방을 사시는지 아니면 노후를 생각해 차곡차곡 저축을 하시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한 주일이 가기 전에 초과근무 수당의 사용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매주 수요일 우리 아파트에는 아파트 장터가 열린다. 엄마는 이 장터의 단골고객이다. 아직 18개월 아기라 날짜나 요일 개념이 없는 딸아이도 매주 수요일 할머니의 “시장 가자”라는 말에 신발을 신겨 달라고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엄마의 시장 나들이는 우리 집의 주중행사임에 틀림이 없다. 덕분에 우리 집의 식탁은 늘 풍요롭다. 제육볶음을 하는 날에는 곰취쌈이 등장하고, 지금도 냉장고에는 가지와 오이고추, 부추가 얌전히 들어앉아 엄마의 은혜로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일하는 나는 여러 가지 일들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스무 살 그 언저리에는 나이가 좀 들면 모든 것이 나아질 줄로 알았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지금도 살면 살수록 살아가는 일이 더 태산이 되는 삶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학교 일로 진이 다 빠져 퇴근을 하면 다시 또 딸아이를 돌봐야 하는 새로운 출근이 시작된다. 이쯤 되면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내 영혼은 너덜너덜해져 간다. 그때 엄마가 말한다. 밥이나 먹으라고. 분명 된장찌개인데 소고기가 들어앉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도 뽀얀 살결 위에 고운 고춧가루 태닝을 하고 있다. 입맛이 없다며 밥 반 공기를 들고 식탁에 앉으면 딸아이가 내 종아리를 잡고 저도 밥을 달라며 입을 쪽쪽 벌린다. 너 한 술 나 한 술 먹다보면 금세 밥알들이 사라지고 나는 또 밥솥을 연다. 신기한 건 밥을 먹다 보면 없던 입맛이 돌아오고 속이 든든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엄마가 나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방식이다.

매주 수요일, 엄마는 또 딸에게서 얄짤없이 받아낸 초과근무 수당을 들고 손녀와 함께 출동한다. 남들은 가지 한 소쿠리에 5천원은 너무 비싸다며 돌아설 때, 엄마는 우리 딸이 좋아한다며 봉지 가득 가지를 담는다. 덕분에 동네에서 통 큰 아줌마로 통하는 우리 엄마, 오늘도 나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기 위해 밥을 지으신다.

나혜정<대구 경서중 교사>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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