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他力更生(타력갱생)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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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5   |  발행일 2018-09-15 제23면   |  수정 2018-09-15
[토요단상] 他力更生(타력갱생)의 정치

“혁신의 실천과 훌륭한 분들의 영입으로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는 가운데 대표직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2016년 1월27일. 2년8개월 전이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당원들의 직접 선출로 뽑힌 그는 이 말을 끝으로 353일 만에 물러났다. 그때 민주당은 안철수 대표가 ‘분가(分家)’를 결행하면서 최악의 국면을 맞았다. 주요 지지기반인 호남에선 탈당 사태가 잇따랐다. 문 대표가 그대로 있다간 ‘궤멸’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표를 내놓은 그날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말은 압축적이다.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우리 당의 심장인 호남 유권자들의 실망과 좌절이었다. 저의 사퇴를 계기로 노여움을 풀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드린다.”

‘문 대표’는 2018년 9월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16개월이 지났다. 몰락의 위기에 놓였던 정치세력이 극적 반전(反轉)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자력(自力)이 아니었다. ‘경제 민주화’란 시대정신의 ‘국내 원조(元祖)’쯤 되는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했다. 총선을 불과 3개월 남겨놓고 사실상 정당권력의 전부인 공천권까지 줬다.

더 결정적 요인은 ‘선거의 적(敵)’ 한나라당 상황이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박근혜 대통령을 들이받은 유승민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기 위한 추태는 한국 정치사에 진기록을 남겼다. 진박(眞朴) 논란에 이어 진박 감별사까지 등장했다.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을 거머쥔 최고의 원동력은 이처럼 경쟁 정당의 ‘기여’였다. 박 정부의 자멸(自滅)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병우 대통령 민정수석에서 비롯된 주류 언론과의 갈등은 수습보단 확대의 길을 걸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청와대 라인은 대통령 탄핵을 불러들였다. 2016년 총선 몇 개월 전, 180석 확보를 점치던 국민 저변의 지지는 증오와 환멸로 바뀌었다. 이 원심력은 고스란히 상대편인 민주당의 추동력이 됐다. 게다가 홍준표 한국당 대선 후보의 언행은 많은 지지자를 투표장에서 몰아냈다. 2017년 5월 대선은 해보나마나 한 게임이었다. 민주당이 실력으로 이긴 선거라 할 수 없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없었다면? 위기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 2017년 정권 교체는 박근혜 정부의 ‘정권 헌납’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산업화 진영의 회생은 불가능으로 보였다. 정치평론가란 사람들 상당수도 동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70%를 웃돌고, 선거 결과도 이와 엇비슷(시도지사의 82%, 시장·군수·구청장의 67% 차지)했기 때문이다. 진보 20년 집권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필자는 당시 “지지율이란 조석변(朝夕變)이니 더 두고 보자”고 했다. 그 선거 후 꼭 100일이 지났다. 대통령 지지율은 50% 안팎이 됐다. 아직도 높긴 하다. 하지만 100일 동안 20%포인트가 날아갔다.

집권 16개월째인 문재인 대통령의 주변 환경은 2016년 3월 한나라당과 흡사하다. 1개월 뒤 국회 권력을 내주리란 것을 까맣게 몰랐던 것처럼 ‘깊은 병’에 걸린 것으로 진단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강행이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경제 현장은 비명뿐이다. 8월 고용동향도 글로벌 금융위기인 2010년 후 최악이었다. 수도권 집값 폭등은 희생양마저 요구하는 좌절과 분노로 바뀌었다. 탈원전 밀어붙이기,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주요 정책도 청신호는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추진 중인 남북관계 개선 역시 다음주 3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지만, 비핵화 본질에는 접근조차 못한 채 미국과 갈등만 커지고 있다.

정권 담당자들은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6년 박 정부와 매우 닮아있다. 차이점은 2016년의 경우 반사이익을 민주당이 챙겼던 데 반해 현재는 아니라는 점이다. 문 정부에서 떨어져나간 외력(外力)이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셈이다. 선거 때면 이 힘은 어딘가에 안착할 것이다. 지지율 소폭 상승에 그친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도 ‘타력(他力)’으로 갱생(更生)할 수 있을까.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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