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한국당 TK를 넘어서지 못하면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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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4   |  발행일 2018-09-14 제23면   |  수정 2018-09-14
[조정래 칼럼] 한국당 TK를 넘어서지 못하면

자유한국당의 ‘눌러앉기’와 ‘뭉개기’는 재기불능의 앉은뱅이로 가는 외길 수순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 참패 직후 한국당 의원들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란 펼침막 아래 무릎을 꿇었다. 그 대(對)국민 사과 퍼포먼스가 있은 지 3개월이 지났고,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지도 2개월이 다 돼 가는 지금 한국당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당시 반성의 진정성을 둘러싸고 ‘할리우드 액션’ ‘위장반성쇼’ 등의 비판이 쏟아졌고, ‘무릎을 꿇은 건지 눌러앉은 건지…’ 아리송하다는 희평도 긴 여운을 남겼다. 정치권의 사죄 레토릭과 제스처는 으레 봐왔던 기시감대로 대개 하나의 통과의례에 머물렀다. 김병준 혁신비대위 체제의 한국당이 출범 초의 초심과 기대에 걸맞은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보수의 우려를 더하고 있다.

한국당 혁신의 지지부진은 책임감의 부재에 기인한다. 한국철학자인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이번에는 목적어가 없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당의 사과 현수막 ‘저희가 잘못했습니다’에 ‘목적어’가 없음을 지적·질타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으니, 용서를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필요 이상의 필화(筆禍)를 우려해 정치적인 문제 제기가 아니라는 전제를 앞세우긴 했지만 강 교수의 글은 ‘문법의 오류’를 적시하며 한국당의 무책임을 가장 강력하고도 적실하게 비판했다. 잘못의 원인과 진단에 이은 책임 소재가 가려져야 목적과 가치가 도출되는 건 정한 이치다. 이도 저도 없으니 갈 데까지 가보자며 책임 전가하고, 잘못을 알고도 모른 척 뭉개고 있는 겐가.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표방하는 보수의 가치 재정립도 책임의 공유와 그에 따른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가치의 틀을 바꿀 가장 핵심적인 방편과 수단은 인적쇄신이다. 한 시대가 지나가고 기존의 이념과 정체성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격변의 시기에 인적 구성이 구태의연하다면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하소연 했듯 ‘나 말고 다 바꿔라’는 각자도생적 퇴행이 젊은 피 수혈을 막는다. 부활의 싹수가 노란데 삼고초려엔들 영양가 있는 인물이 누가 응할 텐가.

인적 쇄신은 혁신의 관건이긴 하지만 김 비대위원장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2020 총선이 아직 1년7개월이나 남은 시점에 공천권을 휘두를 수도 없고 무리한 인적 교체 시도는 내분과 내홍을 격화시켜 비대위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진퇴양난 속 절름발이 비대위 체제다. 그렇다고 마냥 파행만 할 수는 없다. 당무감사를 하든 총선 불출마 선언 릴레이를 이끌어내든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한국당의 간판들을 바꿔나가야 한다. 새로운 인재 영입 실패는 지난 6·13 지방선거 참패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운동권 출신 인사들까지 발탁해 성공했던 신한국당 시절의 경험은 학습할 만하다.

정치지형의 확장, 외연의 확대는 한국당의 존립 근거다. 지방선거 결과 부산·경남까지 대거 잠식당해 TK로 쪼그라든 한국당이 집안 단속에 급급하다가는 민주당의 정략에 말리기 십상이고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게 된다. 보수의 아성인 TK 사수가 중요치 않은 게 아니라 설령 집토끼를 일정 부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산토끼 사냥이 더 시급한 형국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민주당이 TK를 공략해 전국정당화를 완성하려 하는 반면, 한국당은 이제 전국정당화를 위한 첫 걸음마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TK를 넘어서지 못하면 한국당은 현상을 타개할 수 없다.

한국당이 정치와 정책 등으로 보여주는 문제의식과 현실인식도 보수민심과 거리가 멀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도 모르고 철지난 이념과 안보 장사에 매달리는 건 고사하고 반 분권적인 어정쩡한 당론은 TK ‘텃밭 지키기’와는 이율배반적이다. 정치개혁의 주도권을 쥐어도 모자랄 판국에 막연한 상황변화와 여당의 실수만 기다리거나 정치인의 ‘언어의 품격’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막말의 호전성에 의존해서는 보수의 귀환은커녕 이탈만 추가되고, TK마저 등 돌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시간은 많지 않고 할 일은 많은 김병준 비대위가 혁신의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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