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항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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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31   |  발행일 2018-08-31 제36면   |  수정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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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타고 갔으며 세오녀가 짠 비단을 싣고 돌아왔다는 쌍거북바위.

바다를 마당으로 가진 공원이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라고 자꾸만 노래를 흥얼거린다. 오막살이는 없지만 번듯한 초가가 있고, 늙은 아비와 철모르는 딸 대신 아주 먼 옛날 이 땅을 떠났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가 있다. 아직 미완성인 공원이고 수목들은 앙상하지만 어린 것들은 빨리 자란다. 조금 더디게 자란다 해도 어떠랴. 지금 미완의 땅위로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햇살만으로도 눈부신데. 빗물도 그러할 것이며, 뒷동산 낙엽도 그러할 것이며, 또한 겨울의 송이 눈도 그러할 텐데. 이곳은 청명하고 풍요로운 날만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위대한 것은 바다다.

임곡 촌락의 동쪽 끝 산언덕 테마공원
바다 향한 주차장 자리 단연 세계 최고
광장 입구 인공암벽 계단 호젓한 산길
나뭇가지 얇은커튼 주름처럼 바다 갈라

고려청자 모양 조형물 전시 ‘철예술뜰’
세오녀가 짠 비단 보관한 창고 ‘귀비고’
韓·日 정자·연못·수로 재연 연오랑뜰
바다 닿은 일월대…해와 달이 지는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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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뜰. 타일로 마감한 옹벽에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소개돼 있다(위). 고려청자 모양의 조형물이 있는 철예술뜰, 신라마을 전시실인 귀비고.

◆바다를 가진 공원

호미반도의 북쪽 초입인 포항시 동해면 임곡리(林谷里)는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바다 너머로 떠나갔다는 전설의 도구 해변과 바로 이웃한 마을이다. 작은 항구가 있는 임곡 촌락의 동쪽 끝,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는 가벼운 산언덕에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이 자리한다. 2008년경부터 계획해 2013년 착공, 2016년 부분 개장해 2017년 완공이 목표였다. 비용이 많이 드는 큰 규모 것들은 대개 아우성 속에서 단련되어 만들어지더라.

공원 주차장은 단연 세계 최고다. 아예 주차장에 폭 안긴 채, 차에서 나와 이 너른 땅을 밟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 낙천적인 사람들도 있다. 차들은 바다를 향해 서 있고, 그것은 언뜻 자동차 극장처럼 보인다. 영화는 일년 내내 ‘바다’다. 태양의 바다, 달의 바다, 눈의 바다, 비의 바다, 영원히 읊을 수 있는 바다. ‘이것으로 족해. 이것으로 넘쳐’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주차장 위는 ‘연오랑뜰’로 공원의 실질적 시작점인 광장이다. 광장에는 큼직한 화장실과 공원안내도가 있고 타일로 마감한 옹벽에는 연오랑세오녀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광장 입구 인공암벽에 설치된 계단을 오르면 호젓한 산길이다. 400m 정도의 느슨한 길이 마루금을 따라 이어진다. 산길 오른쪽으로 수목의 가지들이 얇은 커튼의 주름처럼 바다를 가른다. 찬탄할 만한 소나무들에 둘러싸인 정자가 보인다면 그곳이 정상이다. 정자에 오르면 의외로 작은 바다가 눈높이에 걸려 있다. 이제 곧 공원의 서쪽 끝으로 내려선다. 숲길을 벗어나면 눈앞은 다시 광활한 바다다.

◆이야기를 가진 뜰

오른쪽으로 ‘철예술뜰’이 펼쳐진다. 잔디밭 위에 고려청자 모양의 철제 조형물 하나가 서있다. 이제 막 해저에서 건져낸 듯한 짙은 녹물색의 곡선은 확실히 눈길을 끄는 오브제다. 앞쪽에는 신라마을이 조성돼 있다. 초가들, 정자, 대장간, 돌담길이 있는 풋풋한 마을이다. 초가에는 각각 ‘연오댁’ ‘세오댁’ ‘도기야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자 이 땅에 해와 달이 사라졌고,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 ‘도기야(都祈野)’는 이야기 속에서 해를 맞이하기 위해 제사를 지낸 들판이다. ‘도기’는 ‘달’을 가리키는 옛말인데 원래는 ‘돋아남’을 가리키는 ‘돋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즉 도기야는 ‘달의 들판’이라는 근사한 뜻을 가지고 있다.

신라마을 옆 공원 어디에서나 보이는 커다란 건물은 전시실인 ‘귀비고(貴妃庫)’다. 귀비고는 세오녀가 짠 비단을 보관했던 창고의 이름이다. 건물은 세워졌으나 내용물이 없어 현재 출입 금지다. 앞으로 신라시대 철기문화와 포스코 철강 역사물이 전시될 것이라 한다. 귀비고 앞 둔덕에는 ‘쌍거북바위’가 바다를 향해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타고 간 바위이자 세오녀가 짠 비단을 싣고 돌아온 바위라는 설이 있다. “올라가서 보셔도 돼요. 저쪽으로 돌아가면 쌍거북이 더 잘 보여요.” 그저 두 바위가 겹쳐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쌍거북이다. 좋은 기운을 준다고 해서 ‘기바위’라고도 불린다.

귀비고 동쪽에는 일직선의 길이 뻗어나가 연오랑뜰에 닿아 있다. 길 양쪽에는 ‘한국뜰’과 ‘일본뜰’이 재연돼 있다. 서로 다른 정자, 서로 다른 연못,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수로. 역사는 길고, 뜰은 교류와 우호를 위해 만든 것이다. 공원의 가장 아래에 커다란 누각인 일월대가 있다. 일월대로 향하다 폐허로 방치된 해병대 막사를 본다. 제법 안정적으로 앉아 있는 건물 벽면에 곧 새로운 전망쉼터가 될 것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임곡은 조선시대엔 임곡포(林谷浦)라 했다. 경상도 4진의 하나인 영일진이 있었던 포구로 ‘태종 17년인 1417년, 임곡 포구에서 6리 20보 지점에 영일진을 설치하고 이 고장의 중심 진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버려진 해병대 막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 그 어디에도 끼어들 용기를 못 내고 머뭇대는 듯하다.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은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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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의 누각 일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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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정자 가는 길. 산언덕의 마루금을 따라 바다와 함께 느슨하게 나아간다.

◆해와 달의 일월대

일월대에 오른다. 놀랍도록 시원한 바람과 함께 커다란 만 너머의 도시와 동쪽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찬다. 영일만의 가장자리를 따라 솟아 있는 거대한 기중기의 강철 턱들과, 한 번도 불 꺼진 적 없는 포스코의 고로(高爐)들과, 백금처럼 번쩍이는 고층 건물들의 집합이 포말처럼 보인다. 이곳에서는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월대는 바다와 하늘에 맞서는 위엄이 있어서 이곳에서의 나는 마치 별들의 운행을 관장하는 상제(上帝)가 된 듯하다. 이 모든 으쓱함과 만족감에도 바다는 무심하다. 무심한 바다, 그래서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바다, 파도를 붙잡고 징징거리고 싶은 바다, 그렇게 해와 달과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에 잊지 못할 얼굴을 부여하는, 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주·부산 방향 경부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간다. 포항시청 방향으로 간 뒤 계속 직진해 포스코 앞에서 형산큰다리를 건넌다. 호미곶 방향 동해안으로 가다 925번 지방도 호미로로 빠져 호미반도로 들어서면 바로 임곡리다. 길가에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안내가 커다랗게 되어 있다. 입장료·주차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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