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여의도를 점령하라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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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7   |  발행일 2018-08-17 제23면   |  수정 2018-08-17
[조정래 칼럼] 여의도를 점령하라
논설실장

국회의원 특별활동비는 해프닝과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폐지로 최종 가닥을 잡았다. 당초 민주·한국 양당은 양성화하겠다고 나섰다. 영수증 처리하면 그게 활동비지 특활비인가. 국회의원이 뭔 특수활동을 한다고. 돈 밝히는 일도 ‘특수 업무’라면 모를까. 하지만 이게 끝이라고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없다. 아마도, 그러나 틀림없이 업무추진비 등으로 특활비를 대신할 꼼수를 쓰지 않을까 싶다. 열 경찰이 한 도둑 못 막는다고, 김지하가 꼽은 ‘오적(五賊)’ 중 으뜸 도적의 무소불위를 뉘라서 막을쏜가.

국민적 여론의 비난은 짧고 돈맛은 길다. 철면피는 저리 가라 수준이다. 도적질에 이골이 났으니 거리낄 게 없다. ‘자신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남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하’는 게 일상화됐다. 국정원과 국방부 등 실제 특수활동비가 필요한 국가기관들의 상납 등에 대해서는 호통을 치면서 자기들이 쓴 특활비 내역은 꽁꽁 감추니 ‘내로남불’이기도 하다. ‘영수증’과 ‘양성화’, 그리고 ‘특활비’라니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없다. 눈과 귀가 멀었고 판단력은 실종됐다. ‘나를 잡아가라’ ‘우리도 국민 취급해 달라’며 거리로 나온 570만 자영업자의 절규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망해도 국회는 도산할 턱이 없다는 심산이다.

특활비는 빙산의 일각이다.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들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도처에 수두룩하게 숨겨져 있다. 국회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이들 중 많은 것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언제나 말뿐이었다. ‘셀프 개혁’이 갖는 원천적인 한계는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이들의 완강한 ‘밥그릇 지키기’에는 대적할 장사가 없다. 여야가 짬짜미로 세비를 기습 인상하고 보좌관을 늘려도 속수무책이다. 혈세 먹는 하마고,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법적으로 허용된 정치자금도 모금할 수 있으니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시쳇말로 ‘신의 아들’이다.

국회의원의 특활비와 특권은 반성할 줄 모르는 몰염치와 탐욕에 뿌리를 대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기득권 지키기는 제도개혁을 가로막는 최대의 암초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문희상 국회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주창한 선거제도 개편 문제는 작금 정치권을 달구는 화두이긴 하지만 여야와 거대·소수 정당별 셈법이 동상이몽이다. 특단의 국민적 압박이 가해지지 않고서는 성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정치개혁만 제대로 한다면 각종 특혜인들 뭐 그리 문제 삼을 것인가. 공짜인생 소리를 듣지 않고 밥값 좀 한다 평가를 받으려면 기득권과 탐욕의 제어를 통한 제도개혁에 나서는 게 급선무다.

특활비 사용내역을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빗발치는 요구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항소를 하거나 공개시기를 늦추려 꼼수를 동원하고 뭉개기로 일관한다. 국민 여론의 분노가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징후와 조짐은 선연하게 포착된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지지율 동반 하락을 경험하고 있고, 한국당은 반사이익을 챙기지 못한 채 비대위체제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민주·한국 두 거대 정당이 현실에 안주해서는 결코 지지율 반등을 노릴 수 없는 위기를 동시에 맞았다. 기득권에 안주해 머뭇거리다가는 민주당은 정권 창출에 실패하고, 한국당은 이대로라면 다음 총선에서 참패한다. 소선거구제 포기 등 선거제도 개혁으로 돌파구를 찾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나가지 않으면 어느 당도 안심할 수 없다.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의 유산이자 정당의 정책화와 민주화를 가로막는 암초다. 민주·한국 두 거대 정당이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 이를 고수·고집하다가는 정의당 등 소수 정당들에 다수당의 지위를 내줘야 할 터이다. 상향식 국민참여경선 등 공천개혁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개헌도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연착륙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기존 권한을 분산·수용해야 할 국회가 불신을 사고, 이를 교정할 생각이 없다면 국민이 직접 나서서 반개혁적인 선량들을 모조리 갈아치우며 ‘여의도를 점령하는’ 수밖에. ‘헌법기관이 국민 눈높이에 많이 부족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적은 여의도 붕괴를 우려하는 경고음으로 긴 여운을 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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