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술의 섬, 강정을 가다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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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6 00:00  |  수정 2018-09-21
20180816

강정대구현대미술제가 올해로 7회째를 맞고 있다. 2012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본행사는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미술축제로 자리를 잡았고, 이제 지역을 넘어 세계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장소특정성으로 치자면 낙동강을 끼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강은 문명의 젖줄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문명이 거의 예외 없이 강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강이 풍요의 상징이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가 않다. 강변에 살림을 꾸린 본행사가 예술을 매개로 신문명을 연다는 조짐으로 봐도 되겠다. 인류는 그동안 종교적 인간, 이념적 인간, 정치적 인간, 그리고 경제적 인간을 경유해왔고, 이후 놀이와 문화 그리고 특히 예술을 매개로 종전과는 사뭇 다른 신인류의 출현을 예비하고 있는 경우로 봐도 되겠다. 예술이 삶 자체인, 예술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차원 혹은 경지를 열어놓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예술의 섬, 강정’이란, 이번 행사를 위한 주제설정과도 무관하지가 않다.
 

이처럼 본행사와 관련해 강이 갖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에는 보다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 강정대구현대미술제는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고, 당시 그 주요 배경이 지금의 장소(낙동강 강정고령보 디아크 광장 일원)였다는 사실이다. 대구현대미술제는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보다도 가장 먼저 열렸고, 이후 지역별 현대미술제가 연이어 열리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전시가 이루어졌고, 그중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간은 현재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강정의 낙동강 변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실험미술 이벤트가 열린 것이다. 대략 200명의 작가가 전시에 참여한 것을 보면, 사실상 당시 국내의 전위 예술가들을 망라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대구현대미술, 나아가 국내현대미술을 견인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가 있겠다. 본행사는 바로 이처럼 뜨거웠던 역사적 현장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 만큼 당시의 불씨를 살려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며, 그때의 열기를 살려 지금 다시 신아방가르드의 전초기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예술의 섬, 강정’이란 주제를 보면, 전시가 열리는 강정 현장을 예술의 섬으로 정의하고 강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섬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섬은 고립을 의미하면서, 다르게는 자생성과 고유성을 상징한다. 전시현장을 자생적인 예술, 고유한 예술이 움트는 현대미술의 산실로 보아달라는 주문을 담았다. 그런 만큼 섬은 지정학적 장소로서보다는 의미론적인 매개체에 가깝다. 보들레르는 평생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는 삶을 살았고, 그 꿈으로 인해 상징주의라는 이름을 얻었다. 여기가 현실이고, 꿈이 섬이다. 존재론적인 섬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꿈꾸는 섬 하나 정도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섬은 유토피아가 될 것이고,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섬은 비현실이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상으로부터의 휴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섬은 기꺼이 쉼의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꿈꾸기 위해 육지로부터 섬으로 건너간다. 그 섬에서 사람들은 현실과는 다른 세상을 겪게 될 것이다. 다른 세상 곧 유토피아를, 비현실을, 휴식을, 치유와 주술의 계기를 매개해 주는 예술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자기와 만나게 만드는 마술을 경험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조각 설치작가 17명이 참여하는데, 참여 작가 모두 이미 다양한 경로로 유사전시경력을 축적해온 터라 신뢰가 가는 편이다. 이번 전시에는 어떤 작품을 어떻게 선보일지 기대해도 좋다. 그 대략을 보면 공공미술 혹은 환경조형물을 통한 공공성의 실현, 더불어 사는(이를테면 인간과 자연)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 치유와 휴식의 계기로서의 예술, 시대의 아이콘 혹은 전형으로서의 캐릭터, 그리고 조각 고유의 물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조각의 물성을 강조한 것은 노동력의 산물인 정통적인 조각을 제작하는 작가층이 점차 엷어지는 현실에서(개인적으론 그래서 오히려 더 희소가치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조각 고유의 미덕을 되묻는 것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
 

그렇게 동양 최대의 수문에 해당하는 강정고령보와,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시드가 설계한 디아크와 같은 인프라, 그리고 여기에 대구현대미술제의 아방가르드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역사적 현장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꿈이 예술로 승화되는 섬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고 충 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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