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쉼표, 이야기 따라 포항여행 .8] 운제산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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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4   |  발행일 2018-08-14 제14면   |  수정 2018-08-21
원효대사·혜공선사가 법력 과시했던 곳…가뭄 땐 기우제 지내는 영험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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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대송면의 운제산 대왕암 모습. 대왕암 때문에 운제산은 대왕산(大王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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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대송면 대각리 운제산산림욕장 생태관찰원의 모습. 산림욕장에서는 숲 탐방, 산림욕, 수목 감상 등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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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산 자장암. 자장암과 대왕암 사이는 산이 가파른 편이다. 대송면 영일만온천을 통해 대왕암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상대적으로 체력 소모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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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산(雲梯山)은 구름의 처소다. 예부터 자주 상스러운 운무가 서려 깊은 골짜기를 더욱 신비하게 감추곤 했다. 포항시내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형산강 너머 우람하게 산맥들이 치달리는 중에 문득 우뚝 솟은 가장 높은 산. 태백산의 지맥과 토함산의 지맥이 맞부딪쳐 솟은 봉으로, 이 지맥은 다시 구룡포로 향해 호랑이 형국을 한 한반도의 꼬리를 쳐들게 하는 요추에 해당하는 산이기도 하다. 산 속에는 오어사가 있고, 근처에는 일월지와 영일읍성의 유적지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운제산, 신라 운제부인 성모단에서 유래
올해도 기우제 지낼만큼 신앙터로 유명
진평왕 때 지은 유서 깊은 사찰 오어사
주변에 큰 저수지·둘레길 조성돼 인기
산 정상에 오르면 기도처 ‘대왕암’ 자리
아들없는 사람에게 영험하다고 소문나 

#1.운제 성모의 영검이 깃든 산

덥다. 38℃가 넘는단다. 온통 후끈후끈한 열기 속에서 바라보는 산이 흡사 증기로 쩌낸 듯 거무스럼한 덩어리로 뜨거운 기운을 뿜어낸다. 여름의 드센 기운으로 무성해진 산은 그늘이 짙지만 더위를 먹은 듯 고요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탓일까, 끓는 침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산에 대한 경외감이 유달리 더해지는 듯하다.

운제산. 높이 482m. 높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깊은 골과 두터운 육질로 의외로 거대한 산괴의 기운이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 산에서 함께 수도를 하면서 구름을 사다리 삼아 절벽을 넘나들었단다. 그래서 이름을 운제산이라고 했단다. 이 산이 품고 있는 천년고찰 오어사는 원효와 혜공의 설화와 관계가 깊은 절이다.

한편 운제산은 신라의 제2대 남해왕의 비 운제부인(雲帝夫人)의 성모단이 있어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그러니까 운제부인은 운제산의 산신으로 떠받들어져 왔고, 이를 기리는 제단이 해마다 차려졌던 것이다. 운제산 성모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1권 남해왕조에도 전하고 있다. “남해거서간은 또한 남해차차웅이라고 이른다. 이는 존장의 칭호로서 왕을 일컫는다. 아버지는 혁거세, 어머니는 알영부인이다. 비는 운제(雲帝)부인이다. 달리 운제(雲梯)로도 쓴다. 지금도 영일현 서쪽에 운제산 성모를 기리는 제당이 있다. 가뭄에 빌면 영검이 있다”는 게 그것이다.

그러니까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 당시에 운제산 성모 신앙이 잔존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 빌면 가뭄에 대한 영검을 얻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많이 전해온다. 기우제 터로서의 신앙은 지금도 여전하다. 올해 같은 큰 한발과 가뭄에도 역시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낼 만큼 여전히 이곳은 살아있는 신앙의 터다.

운제산 성모 신앙은 신모(神母)신앙 또는 산모(山母)신앙의 한 양태로 추측된다. 신모신앙은 경주의 진산인 선도산 성모(仙桃山 聖母)와 지리산 성모, 그리고 가야산의 정현모주(正見母主)와 치술령신모(述嶺神母) 등이 꼽힌다. 이들 가운데 운제산 성모는 가뭄과 관련이 깊다는 점에서 농사를 돕는 신으로 크게 모셔진 듯하다. 물은 곧 농사와 관련이 깊은 만큼 풍농신(豊農神)의 성격을 지닌다고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왕권신화·산모신앙·지역수호신앙 등이 복합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2.대왕바위의 의젓한 기세

대송면에서 산여리로 뻗은 길을 차로 달려서 운제산을 오른다. 오어사가 있는 골짜기로 오르기도 하나, 산여리로 뻗는 이 길은 예부터 경주에서 오어사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그러니까 추측건대 이 산과 관련이 있는 원효와 자장, 그리고 혜공 스님 등이 오갔던 그 길인 셈이다. 대송면에 있는 포스코 철강단지 남쪽으로 가다보면 산 아래쪽에 대규모 휴양지인 영일만온천이 있고 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토함산 자락을 만날 수 있다. 대송면에서 운제산 오르는 길에는 자연휴양림이 골짜기 하나를 점해 있기도 하다.

산 아래서 구불거리며 오르는 산길은 완만하면서도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다. 길은 곧장 자장암으로 오른다. 자장암은 절벽 위에 세워진 절로 절벽 아래에는 오어사가 내려다보인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원래 항사사(恒沙寺)였으나 원효와 자장의 설화로 인해 오어사(吾魚寺)로 바뀐 얘기가 유명하다. 원효와 혜공이 어느 날 계곡에서 법력을 겨루었다. 개천에 노는 고기를 잡아먹고 그것을 다시 살려내는 내기였다. 둘은 고기를 먹고는 함께 똥을 누었는데, 한 마리만이 나와서 서로 저 고기는 내가 살린 고기(吾魚)라고 주장했다는 것. 오어사 주변에는 큰 저수지가 있고, 그 둘레길이 조성돼 산책길로도 인기가 있다.

우리는 오어사를 잠시 내려다보고 곧장 산을 오르기로 한다. 운제산은 대왕산(大王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산 정상에 있는 거대한 대왕바위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대왕암 가는 길은 자장암이 있는 곳에서 곧장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자장암~대왕암 코스로 해서 정상과 대왕암으로 오르는 한 시간 반 남짓 걸리는 산길이다. 더운 데다 산이 아주 가팔라서 오르기에 무척 힘이 든다. 잠시 올랐는데 바지와 등이 온통 땀에 젖는다.

가까스로 산정에 올라서자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인다. 멀리 푸른 바다가 펼쳐진 게 장쾌하게 조망된다. 또한 형산강이 굽이쳐 흘러 영일만으로 들어가는 멋진 흐름도 눈에 들어온다. 포항을 내려다보는 이 장쾌한 조망이야말로 운제산 등산의 최고 매력이라 할 만하다. 바위 아래에는 오래된 샘이 있다. 찬물이 솟구친다. 젊은 기자는 웃옷부터 벗어던지고 등물로 샘물을 끼얹는다. 한기가 대번에 열기를 식힌다.

영일읍지에는 이 바위를 두고 “바위 기세가 수려하고 영검하다. 높이가 수백 장이며, 수십 인이 앉을 만하다”고 했다. 이 바위는 범상치 않은 기세 때문에 기도처로 예부터 유명했다. 영험이 있는 운제산의 중심 기도처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 가뭄이 심한 해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름났다. 아들이 없는 사람이 기도를 하면 영험이 있는 장소로도 꼽힌다. 올해 유난히 심한 가뭄을 맞아 이곳에서도 기우제가 올려졌음은 물론이다.

#3.축제와 산림욕장으로 자연 만끽

운제산이 포항지역의 영산인 만큼 그 기운을 받고 뿜어내는 축제가 없을 수 없다. ‘운제산 문화축제’가 그것인데, 올해 다섯 번째로 10월에 열린다. 대송면 대각리와 영일만온천 그리고 운제산 일원이 떠들썩해진다.

이 축제는 포항의 진산인 운제산을 오르면서 자연을 만끽하는데 중점을 둔다. 아울러 온천욕 등을 통해 지역민과 자연이 공존하는 쾌적한 환경을 누리면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웰빙 욕구를 충족시키자는 취지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문화관광의 고장을 알리고, 우리 쌀 및 지역 농·특산물을 판매를 두드러지게 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 운제산 산악 마라톤 경기와 운제산 대왕암 사랑 가족등반대회 등의 메인 행사가 성황리에 치러지고, 지역 특산품 직거래 장터가 토종 먹거리 장터와 함께 열려 떠들썩한 축제의 분위기를 돋운다.

한편, 포항시는 시민이 행복하고 미래가 풍요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운제산산림욕장을 조성하고 지난 3월 준공식을 가졌다. 대송면 대각리 산 105 일원에 총사업비 40억원을 투입해 2014년부터 산림욕장, 숲속쉼터, 광장, 야외공연장, 유아숲체험원, 습지관찰원, 족구장, 목공체험실을 설치해 시민들을 맞고 있다. 숲 탐방, 산림욕, 수목 감상 등을 만끽할 수 있다. 목공예체험장은 한국숲해설가 경북협회에서, 유아숲체험원은 푸른숲문화연구회에서 운영한다. 운제산과 오어사 둘레길을 연계한 수준 높은 산림휴양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포항시는 “우리 시의 산림정책은 과거 녹화 중심에서 잘 가꿔진 숲을 활용해 자연휴양림, 치유의 숲, 산림욕장 등 산림복지 서비스로 전환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고 의욕을 나타낸 바 있다. 정연규 대송면장은 “운제산은 그 역사가 깊고 영산으로서의 품격이 뚜렷하며, 여전히 기우제가 올려지는 등 이름값을 하는 산이다. 역사와 신화가 숨을 쉬는 운제산을 최고 수준의 힐링 명소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글=이하석(시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문헌=영일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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