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도세권’ 효과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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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3 07:51  |  수정 2018-09-21 11:04  |  발행일 2018-08-1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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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부동산업계에는 ‘역세권(驛勢圈)’이란 영향력 있는 용어가 있다. 보통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안팎의 지역을 표현하며, 다양한 상업 및 업무활동이 일어나는 집객 세력권을 의미한다. 신규 아파트 분양이나 부동산 거래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요소다.

이와 함께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일컫는 ‘빅세권’, 학교 인근을 표현하는 ‘학세권’, 숲을 가까이 둔 ‘숲세권’, 호수나 강이 보이는 ‘물세권’, 공원이 주변에 있는 ‘공세권’, 문화센터 주변의 ‘문세권’, 쇼핑몰이나 대형마트가 인근에 있는 ‘몰세권’ 등이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널리 쓰인다. ‘○세권’ 시리즈는 생활의 편의성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장점 때문에 부동산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소재로 인정받는 것이 대세다.

‘도세권(圖勢圈)’이란 신조어도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통용되고 있다. 부동산업계뿐만 아니라 지적 문화생활을 추구하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사용되는 이 용어는 ‘도서관(圖書館)’ 인근 지역을 일컫는다. 도서관 주변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가격이 다른 곳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서관이 요즘 들어 지역사회의 플랫폼으로서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수행한다는 방증이어서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로서는 은근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 위치한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에서도 도세권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직장을 은퇴한 뒤 도서관을 거의 매일 찾는 한 남성 이용자는 택지개발사업으로 범물동에 아파트가 들어설 당시 입주해 살다가 10여년 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지만, 최근 이 동네로 다시 이사를 왔다. 수필가이기도 한 그는 범물동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는 이웃에게 은퇴생활을 하는 데 도서관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곤 한다.

또한 현재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필자의 한 여성 후배는 2010년대 초반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 경북에서 대구로 이사를 오면서 범물동에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다. 대학시절 문학도였던 그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도서관이 가까이 있는 범물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도세권을 언급하는 글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신혼집을 도세권과 역세권 등이 갖춰진 곳에 구해 만족한다는 새댁의 ‘자랑스러운’ 후기가 있는가 하면, 도세권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인지 궁금해하는 문의도 있다. 도서관을 찾아 이사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주민들을 위해 도세권 효과가 커지도록 애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김상진<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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