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음식 외길’ 전국 7人의 식객, 맛의 비밀을 논하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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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0   |  발행일 2018-08-10 제41면   |  수정 2018-08-10
食客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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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서관면옥에서 열린 전국식객연대(가칭) 서울모임에 모인 전국의 식객들. 왼쪽부터 영남일보 이춘호 기자,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최원준 시인,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상희 통영음식문화연구소장.

바야흐로 음식과 여행이 한국인의 정서를 독점하고 있는 것 같다. 음식과 여행은 국내 전 TV채널을 장악해버렸다. 세계 각국의 음식은 물론 국내 명물음식을 넘어 이젠 골목음식·별미음식까지 종횡으로 묶여져 나온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식객(食客)’이다. 그들은 음식전문기자, 외식업컨설팅전문가, 세계음식연구가, 향토사학자, 여행작가, 음식칼럼니스트, 맛칼럼니스트, 푸드블로거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다.

유명인 먹방·쿡방 방송국 잡담 구별
韓中日 음식기원·팔도 식문화 공유
팔도 국밥 이어 수시로 책 출간 계획

전국식객연대
음식전문기자·시인 등 한뜻 모아
작년 대구 첫 모임 후 각지서 회합
음식칼럼니스트 10년차 이상 활동
세계·국내외 외식업 흐름 상호체크

서울 ‘서관면옥’‘진진’
북한식 물냉면, 원형 가까운 면발
새우 샌드위치 튀김‘멘보샤’화제



◆한국 식객 연대기

광복 이후 식객문화의 얼개를 제대로 알려면 일단 전통요리 연구가부터 알아야 된다. 광복 직후에는 한국 고조리서의 계보를 학문적으로 천착해 나간 이성우 교수, 그리고 조선궁중요리 부문 인간문화재가 된 고(故) 황혜성이 한식문화의 한 축을 형성했다. 또한 안동소주 장인인 안동의 조옥화도 안동반가음식의 한 흐름을 잡고 있다. 조옥화 덕분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1999년 자신의 생일상을 안동 하회마을에서 받을 수 있었다.

동아일보 전 편집장 홍승면(1927~83)은 국내 첫 음식칼럼니스트로 꼽힌다. 그는 1950~60년대 독일·홍콩 특파원이었고 견문이 넓어 동서양의 음식계보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49년 합동통신사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그가 기념비적인 음식 관련 연재를 시작한다. 1976년부터 83년까지 월간 ‘주부생활’을 통해 연재된 ‘100미(味) 100상(想)’이란 음식칼럼이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 흥미로운 저작물과 맛집 기사가 신문지상에 등장한다. 80년대 초 한국일보가 주도적으로 전국의 음식정보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시리즈물을 펴낸다. 바로 ‘한국의 여로’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소설가 표성흠도 80년대 대표적 식객으로 볼 수 있다. 그뒤를 이어 소설가 백파 홍성유가 조선일보를 통해 맛집기행을 연재해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백파가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맛집 신드롬 1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독학으로 만화를 터득한 뒤 월간 산을 통해 ‘뫼뿌리’를 연재한 조주청도 있다. 그는 다양한 직군을 돌아다닌 만화가이면서 세계여행작가로 유명하다. 1985년부터 신동아에 ‘조주청과 함께하는 지구촌기행’, 이어 문화일보에 ‘조주청의 맛기행’을 연재하면서 80년대 ‘글쟁이 식객’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에 이어 80년대 바캉스 부록에 실을 전국 맛집을 찾아 산천을 10여 회 일주한 황광해. 그는 요즘 고조리서 속의 한식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뒤를 이어 TV드라마 ‘대장금’과 여수 출신의 만화가 허영만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만화 ‘식객’, 2002년 5월에 등장한 KBS2 ‘VJ특공대’는 국민 맛집순례를 본격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한국의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한식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안동 출신의 산당 임지호는 ‘방랑식객’이란 별명을 갖고 한때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자연요리전문점 ‘산당’을 차리기도 했다. 이밖에 ‘한국음식의 뿌리를 찾아서’(백산출판사)란 책을 낸 김영복, 베이징 특파원을 거쳐 매일경제를 은퇴하고 2007년 출간한 ‘음식잡학사전’으로 유명해진 윤덕노도 음식 원전을 찾아다니는 ‘문헌연구파 식객’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보했다.

경남 마산 출신의 두 명의 음식 전문가가 있다. ‘식탁 위의 한국사’로 더욱 유명해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그리고 2010년 ‘미각의제국’이란 저서로 유명해져 이후 맛칼럼니스트의 신지평을 연 황교익이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시절 생물학을 부전공한 황교익은 농민신문 재직 시절 전국 식재료 흐름을 추적했고 맛집보다는 맛의 원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후 백종원과 함께 TV채널을 쥐락펴락하는 유명인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먹거리X파일’의 주인공 이영돈 PD도 국내 음식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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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국식객연대 회원들의 시식 대상이 된 서관면옥의 평양냉면(왼쪽)과 중식당 진진의 멘보샤.

◆서울에 모인 전국식객연대

다양한 식객군이 존재하지만 정작 현재 우리의 식객문화는 상당히 ‘불통’이다. 그래서 담론이 아주 음습하다. 식객의 지식과 견해가 제대로 정리·정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식객 간 검증도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다. 일방적 주장만 있다. 식객 상호 간에는 논쟁만 있다. 좀처럼 오순도순한 연대를 하지 못한다.

이미 스타급으로 부상한 백종원과 황교익. 둘이 명성을 앞세워 자신만의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그 주장도 더 객관적인 사실이 나온다면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방송시스템상 그게 쉽지 않다. 먹방과 쿡방도 방송사 편한 대로 진행한다. 유명인이 말하면 곧 대세가 되고 진리가 되기도 한다. 그건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 교수급 논문보다 방송용 멘트 하나가 더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도래한 탓이다. 바쁜 방송 일정상 제대로 검정되지 못한 프로그램 담당 구성작가의 엔터테이너식 진행 멘트가 음식문화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정확한 음식문화와 방송국의 잡담인문학과는 조금 구별될 필요가 있다. 국내 한식의 신지평이 방송용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점도 사실 식객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직업 특성상 음식전문가는 다들 ‘교주급’이다. 누구를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파워 푸드블로거들도 툭하면 쌈질이다. 자기 주장이 맞고 상대는 틀렸다는 흐름이다. 그러다 보니 ‘그 음식은 쓰레기다’와 같은 잘 걸러지지 못한 식객담론 때문에 ‘식품파동’까지 야기된다.

서로가 가진 정보가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하려면 일단 식객끼리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 음식문화가 더욱 심대해질 수 있고 국제적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교수들은 학술대회를 통해 그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식객도 그래야 된다. 아무리 실력파 식객이라 해도 자신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체크하기란 어렵다. 한 지역에 정통한 로컬 기반 식객을 전국구 식객이 더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압도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전국구가 지역구 정보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자신이 괜찮다고 하면 그건 절대적으로 괜찮은 식당이라고 전국구 식객이 생각하면 자칫 지역 음식문화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음식 외길을 걷는 다양한 음식 전문가가 맘을 합쳐 혁신적 모임을 탄생시켰다. 바로 ‘전국식객연대’(가칭)다. 한·중·일 음식의 기원과 원조식당의 실체, 팔도 식문화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음식문화콘텐츠뱅크’ 같은 모임이다.

3개월에 한 번씩 만나 그동안 변화된 세계와 국내의 외식업 흐름 등을 상호 체크하고 필요한 항목에 대해선 수시로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이와 관련 식객연대는 조만간 팔도의 국밥(탕)에 대한 비밀을 밝히는 공저를 출간할 계획이다.

지난해 대구에서 첫 모임을 가진뒤 이후 부산·제주·통영·전라도 등에서 회합을 가졌다. 모임은 항상 1박2일이며 그 지역의 상징적 식당에서 진행된다. 지난 3일 서울모임은 식객연대 발기인대회 성격을 지녔다. 이날 회원들은 평양냉면의 신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서초구 서초동 서관면옥(대표 김인복)에서 만났다. 28년간의 외식업 경험을 가진 김인복 대표가 자신의 제면 과정을 설명했다.

서관면옥의 메밀은 기존 업소와 달리 단메밀, 쓴메밀, 기타 메밀 등 몇 종의 메밀을 전처리해서 사용한다. 북한식 물냉면의 원형에 가까운 면발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어 한국 내 최고의 중식당 사부로 불리는 왕육성이 운영하는 서교동의 ‘진진(津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집만의 새우샌드위치튀김인 ‘멘보샤’는 단연 화제였다. 정회원인 박정배는 2013년 펴낸 ‘현장한식학’의 신지평을 연 ‘음식강산’(한겨레 간)으로 유명해진 음식칼럼니스트. 그는 지난해 왕육성 대표, 박찬일 셰프, 일본에서 온 짬뽕 전문가 하야시다 마사아키와 함께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란 국내 첫 ‘한·중·일 푸드토크쇼’에서 사회를 맡았다. 이후 관련 내용을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냈다. 그는 국회도서관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심지어 중국 갑골문까지 연구하며 동북아 음식문화의 원류를 추적 중이다.

정회원이 되려면 나름 푸드스토리텔러적 삶을 살아야 된다. 음식 관련 저서를 갖고 있어야 되고 음식을 찾아 10년 이상 전국과 해외를 돌아다닌 음식칼럼니스트라야 된다. 만장일치제라 한 회원이 반대하면 가입할 수 없다.

현재 정회원은 모두 7명. 박정배씨를 비롯해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가 서울권을 커버하고 있다. 제주도는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겸 제주음식 전문 레스토랑 ‘낭푼밥상 ’대표, 부산·경남권은 최원준 시인, 통영 및 남해안권은 사진가 겸 관청의 주방문화를 연주하고 있는 이상희 통영음식문화연구소장, 대구·경북은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 전라도권은 섬과 갯벌문화 전문가인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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