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서문시장과 버스킹

  • 조진범
  • |
  • 입력 2018-08-07 08:00  |  수정 2018-09-21 10:24  |  발행일 2018-08-07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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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댄스팀 아트지 멤버>

‘무대’라는 경계가 희미해진 요즘 많은 예술가들이 길거리로 나온다. 흔히 ‘버스킹(Busking)’이라고 부르는 거리공연은 댄스, 연주, 노래, 마술, 각종 묘기 등 다양한 재주를 가진 재주꾼들이 거리로 나와 공연을 펼치는 행위다. 버스킹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버스커(Busker)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가벼운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게 해주며,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연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대구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 메인 광장 앞은 오후 7시 이후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 장소가 된다. 대구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가봤을 서문시장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상 같은 곳이다. 오랜 시간 대구의 역사와 함께 성장한 대구의 명물과도 같은 이 장소가 바로 ‘버스킹 핫플레이스’다. 오후 7시,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고 상인들이 퇴근하였을 때 즈음 각가지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과 대구 지역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출근한다. 서문야시장의 개장을 알리는 신호다.

오후 7시 더위가 조금이나마 가신 시각, 스트리트 댄서들이 신나는 음악과 함께 댄스 버스킹을 시작한다. 가만히 있어도 맥이 빠지는 습하고 뜨거운 거리 위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로 격렬하게도 춤을 춘다. 다섯 명의 댄서가 돌아가면서 춤을 추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데, 조금은 앳된 얼굴이 무심할 만큼 노련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다 관객들이 제법 모였을 즈음엔 관객들로부터 즉석에서 노래 신청을 받아 즉흥 춤을 추니 관객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절로 묻어난다. 서문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즉석에서 신청한 노래는 트로트부터 동요, 발라드 심지어 애국가까지 가지각색에 조금은 짓궂은 요청도 있다. 하지만 댄서들은 당황한 기색도 잠시, 요청한 노래에 맞춰 자신의 스타일대로 춤을 보여주니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참여와 함께 공연 분위기가 점차 고조된다.

스트리트 댄서들과 다양한 인디밴드의 공연이 서문시장을 찾은 대구 시민들의 발걸음을 더욱 활기차게 한다. 서문시장의 역사는 조선 중기부터라고 한다. 약 500년의 세월을 대구와 함께한 것이다. 이렇게 유서 깊은 장소에서부터 젊은 예술의 바람이 불고 있으니 흥이 넘치는 세대 간 화합의 장이 마련되는 셈이다. 트로트에 춤추는 젊은 댄서들, 흥을 못 이겨 무대에 난입하는 아이와 어르신들까지.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공연이 있다면 버스킹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무더운 여름, 그 어디보다 뜨거운 대구의 저녁을 서문시장에서 즐기는 것은 어떨까? 열기가 조금 가신 저녁 서문시장 거리 위에서 열정을 더욱 불태우고 있는 예술가들의 빛나는 눈과 땀방울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를 가지자. 그 어떤 공연보다 소탈하지만 예술가들과 호흡을 함께하며 공연을 즐기다 보면 훗날 더웠던 여름 저녁이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박혜진 <댄스팀 아트지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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