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산단 최악의 불황] (상) 실태와 원인

  • 백종현,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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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30 07:17  |  수정 2018-07-30 09:23  |  발행일 2018-07-30 제3면
협력사도 대기업따라‘脫구미’…곳곳 공장매매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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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국가산업단지 1단지 곳곳에 ‘공장부지 임대·매각’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구미=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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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 조성 공사가 한창인 구미국가산단 하이테크밸리(5단지) 전경. <구미시 제공>

국내 대표적 수출도시 구미는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도시’였다. 대기업들이 줄을 서서 이곳에 둥지를 틀고, 전국에서 너도나도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두운 불황의 그림자가 넓게 드리워져 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구미만 경기 불황에 허덕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악의 불황’으로 세간(世間)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구미가 차지하는 경제적 위상과 비중이 다른 그 어느 도시보다도 높고 크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구미는 대기업의 쌍두마차인 삼성 및 LG의 대표적 계열사들이 오래전부터 터를 잡아 온 ‘경북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다. 영남일보는 구미국가산업단지의 심각한 경기불황 실태·원인과 구미산단의 희망찾기를 두 편으로 나눠 살펴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27일 낮 시간에 찾은 공단동 구미국가산업단지 1단지. 길가 전주 서너 개마다 한 개씩엔 공장 ‘매매’와 ‘임대’를 알리는 전단이 붙어 있다. 곳곳에서 정문을 굳게 닫은 공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대로변 한 공장 입구엔 ‘공장 급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오후 6시 무렵이 되자 공장의 문이 하나둘씩 닫히기 시작했다. 근로자들이 저녁까지 남아서 일하는 공장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잔업과 철야 근무는 이미 옛말이 됐다.

◆구미산단 ‘어제와 오늘’

구미산단은 49년간 전자·반도체·섬유 생산기지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의 발전 속도가 늦어 대기업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1970년대 흑백 TV 생산기지로 명성을 떨친 구미산단은 1980년대엔 컬러TV와 VCR, 90년대 이후엔 휴대전화, LCD·PDP 모니터, TV를 중심으로 주력산업이 바뀌면서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성공 신화를 썼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전자산업 후발국이던 중국·인도 등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섬유·전자업체들은 노동력이 싼 베트남·필리핀·중국 등으로 공장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많은 섬유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전자업종도 후발국에 뒤처지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삼성·LG 사업장 해외로 옮겨가
하도급업체 물량 줄어 가동률 뚝
조업중단 위기에 근로자들 짐 싸

주력 전자제품 수출 해마다 급감
산단 연간 총수출액도 수직 낙하
올 상반기 124억달러 10년전 수준

‘하이테크밸리’로 불리는 5단지
공장부지 분양률 목표 20% 그쳐
입주업체 중 국내 대기업은 全無



구미산단이 경기 불황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은 총수출액의 63%를 차지하는 LCD·휴대폰·모니터 등 전자제품 수출이 최근 5년간 해마다 20%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는 수 년 전부터 수출·생산 물량 감소로 유휴 인력을 수도권에 배치했다. 최근에도 수도권으로 직장을 옮길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도 상당수 인력을 수도권·해외로 이동시킨 상태다. 지난달 말 불거진 ‘삼성전자 구미1사업장 네트워크 사업부 수원 이전’은 43만 구미시민을 패닉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구미 경제계는 구미산단 삼성·LG 계열사에서 최근 2년간 최소한 5천명 이상의 근로자가 빠져 나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산단 조성 49년 만에 최악 경기

구미산단은 1969년 1단지 1천22만3천㎡ , 1981년 2단지 227만5천㎡, 1987년 3단지 508만6천㎡, 1996년 4단지 678만5천㎡, 2008년 확장단지 245만7천㎡, 2009년 5단지 933만9천㎡를 각각 착공했다. 구미산단 1~5단지와 확장단지를 합한 총면적은 3천799만9천㎡에 이른다. 2013년 367억달러를 훌쩍 넘겼던 구미산단 연간 총수출액은 지난해 283억달러로 수직 낙하했다. 4년 만에 무려 84억달러 감소한 것이다.

올들어 구미산단 수출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구미세관이 집계한 구미산단 수출 실적은 올 들어 6월 말 현재 123억9천200만달러로 2009년 실적(137억달러)에 못미쳐 10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구미산단 상반기 수출은 2010년 144억달러, 2011년 165억달러, 2012년 155억달러, 2013년 180억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14년엔 165억달러, 2015년 137억달러, 2016년 138억달러, 2017년 133억달러로 떨어졌다. 구미산단 상반기 전자제품 수출도 10년 만에 30% 수준으로 확 줄었다.

◆삼성·LG 생산 물량 국내외 이전

구미산단 경기 추락은 지역경제 양대 축으로 자리잡고 있던 삼성·LG 계열사들의 생산 물량 국내외 이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들 대기업의 생산물량 해외 이전이 1~3차 협력업체의 주문량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8년 베트남 박닌성에 1공장, 2013년 베트남 타이응우옌성에 2공장을 짓고 휴대폰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 휴대폰 생산기지는 베트남을 비롯해 중국·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구미에 있으나 베트남이 전체 생산물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LG전자도 2년 전 베트남 흥이옌 생산공장과 하이퐁 생산공장을 하이퐁 캠퍼스로 통합 이전했다. LG전자는 2028년까지 80만㎡ 규모의 하이퐁 캠퍼스 내 생산라인을 지속적으로 신설할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도 구미공장보다 파주공장에 ‘통 큰 투자’를 하고 있다.

LG전자 협력업체 관계자는 “30여 년간 긴밀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던 삼성·LG 계열사가 잇따라 해외로 생산 물량을 넘기면서 하도급 물량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면서 “대기업 해외 진출이 시대적 흐름이긴 하지만, 우린 조만간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짐 싸는 근로자들

구미산단 근로자도 5년 만에 큰 폭으로 줄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구미산단 근로자는 2014년 10만명을 넘긴 뒤 2015년 10만2천240명으로 정점에 올랐다. 2016년(9만5천901명)엔 10만명 선이 무너졌고, 지난해 말엔 9만5천153명으로 또다시 줄었다. 최근 2년 새 전체 근로자의 7%인 7천87명이 구미산단을 떠난 셈이다.

근로자 감소세는 구미산단을 떠나 수도권으로 옮겨간 외국인 근로자도 한몫했다. 지난달 말 기준 구미시에 등록된 외국인은 모두 5천399명으로 2014년 말(6천212명) 대비 13%(813명)나 줄었다. 구미산단 입주 기업체는 2015년 말 2천109곳에서 2016년 말 2천152곳, 지난해 말 2천248곳으로 2년 만에 139곳이 늘었다. 구미산단 근로자 수와 기업체 수가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은 오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LG·삼성 계열사 중심의 인력 감축 때문이다. 구미산단 공장 가동률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중소기업은 존폐 위기

구미산단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는 삼성·LG 계열사의 생산물량 감소는 중소기업을 포함한 지역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구미산단 1단지엔 공장 임대와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이곳에선 공장 문을 굳게 닫은 중소기업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랜 경기침체로 대기업 생산 물량이 떨어지면서 하도급 물량도 함께 줄어 조업중단 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대기업의 하도급 물량 감소는 휴대전화·TV·LCD 등 모든 업종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쉽게 말해 일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구미산단 대기업 1차 협력회사 대표인 이모씨(57)는 “2~3년 전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 하도급 물량이 올해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연말 쯤엔 작업 물량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해야 할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인 못찾는 하이테크밸리

하이테크밸리로 불리는 구미산단 5단지는 1단지를 제외하면 구미산단 산업단지 가운데서 가장 크다. 구미시는 2009년부터 하이테크밸리 조성 사업에 1조5천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 18조2천억원 규모의 생산유발 효과와 12만명가량의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구미산단 경제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고, 하이테크밸리 분양률이 당초 계획보다 저조해지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하이테크밸리는 공사와 분양을 1~2단계로 나눠 전체 면적 934만㎡ 가운데 376만㎡를 지난해 8월부터 1단계 분양을 시작했다. 한국수자원공사 구미단지건설단이 분양하는 하이테크밸리 공장 부지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1단계 목표의 20%만 분양됐다. 현재 구미 5단지에 입주를 확정한 기업은 일본계 기업인 도레이첨단소재, 국내 중소기업 4곳뿐이다. 국내 대기업은 한 곳도 없다. 하이테크밸리 분양 실적 저조는 구미산단이 단기간에 경제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구미=백종현기자 baek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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