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 경천호 금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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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7   |  발행일 2018-07-27 제36면   |  수정 2018-07-27
저 ‘돌문섬’은 수몰전 마을의 뒷동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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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8경 중 하나인 경천호. 정면의 섬은 ‘돌문섬’으로 ‘돌문안’ 마을이 있던 곳이다.
비단 같은 천, 금천(錦川). 문경 동로면의 황장산에서 발원해 경사스러운 샘 경천호(慶泉湖)가 되었다가, 보물을 숨겨둔 산 아래를 살금살금 흐르고, 400년 노송 곁을 한결같이 지켜 적시고, 이내 너른 들을 펼쳐 놓고는 영순면 달지리에서 내성천에 합류한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59번 국도와 어울 더울 나아가는 비단길이다.

76개마을 농업용수 공급 계곡형 저수지
메기·피라미·꺽지 1급 강물고기 보고
빙어양식·은어방류 낚시꾼들의 천국

온화하게 자리잡은 내화리 삼층석탑
탑 앞쪽 절 있던 흔적인 몇개의 석재

1949년 경찰·공비 교전 ‘경찰전공비’
서장·민간인 15명 순직…매년 추념제
키보다 넓게 가지 뻗은 대하리 소나무
금천에 의젓하게 앉아있는 금두꺼비


◆ 동로면 경천호

경천호 중간 즈음 마련되어 있는 포토 존, 아무도 없다. 자그마한 주차장에 차들은 있는데, 아무도 없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만이 시간이 정지해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벤치가 몇 개 놓인 테라스 전망대에 내려선다. 정면으로 ‘돌문섬’이라 불리는 섬이 보인다. 경천호가 생기기 전 ‘돌문안’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섬은 마을의 뒷동산이었을까. 경천호는 금천을 막아서 만든 전형적인 계곡형 저수지다. 물은 맑고 수심이 깊다. 경천댐은 1983년에 착공해 완공까지 3년6개월이 걸렸다. 경천호 물은 문경과 예천 2개 시·군 9개 읍·면의 76개 마을에 농업용수를 공급해 준다.

경천호의 북쪽 시작은 동로면 수평리(水坪里) 수평삼거리다. 수평리에는 3대째 머슴살이를 하던 단양장씨(丹陽張氏)가 있었다고 한다. 경천호 북쪽 천주산(天柱山) 천주사의 수도승이 장씨에게 당대에 천석꾼이 난다는 명당자리를 알려주며 묘를 쓴 후 9대까지는 주손(主孫)이 그곳을 찾지 말라고 했단다. 수도승의 말에 장씨는 예천으로 이사를 가서 큰 부자가 되었다. 경천댐 건설 초기 댐의 제방 장소가 장씨 묘소 자리였는데, 수십 개소에 암반층 탐사작업을 벌여도 암반층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경천호의 남쪽 끝인 마광리에 댐을 지었고 담수를 하자 물이 묘소 앞까지 차 들어와 완벽한 명당이 되었다고 한다.

천주산 봉우리가 경천호에 비친다는데 보이지 않는다. 하늘 높이 우뚝 솟아 기둥처럼 보인다는 천주봉. 수평 삼거리 즈음에서나 보이려나. 댐이 축조되기 전 금천은 메기, 피라미, 꺽지 등 강물고기의 보고로 1급 천렵지였다고 한다. 물이 워낙 맑아 댐 조성 후에도 경천호에는 다양한 어종이 산다. 담수 초기에 향어 가두리양식장에서 흘러나온 향어가 너른 물의 자유를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빙어양식과 은어방류로 낚시꾼들의 천국이다.

◆ 산북면 내화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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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화리 삼층석탑과 절터 흔적인 석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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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면 금천 금산교의 금두꺼비. 행운과 만복, 다산을 비는 마음이다. 


남쪽으로 향한다. 높은 산들은 가깝고 길은 좁고도 한산하다. 길가에는 한껏 몸을 부풀린 수목들이 가득해 아주 청량한 기운이다. 갑자기 거대한 돌들이 잔뜩 부려져 있는 터가 나타난다. 석재상인가. 그 옆에 ‘내화리 삼층석탑’ 안내판이 있다. 놓치기 쉬우니 경천호에서 출발할 때부터 잘 살펴야 된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좁아 보여 자박자박 걷기로 한다. 덥다.

금세다. 갑자기 땅이 확 넓어진다. 부드러운 골격의 산과 가지런한 과수원 앞에 탑이 오뚝 서 있다. 높이 4.26m인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1960년 9월에 세웠으며 보물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지만 균형을 갖춘 잘생긴 석탑이다. 탑 앞쪽에 석재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절이 있었던 흔적이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곳을 ‘탑들’, 혹은 ‘탑등’이라 불렀다고 한다. 발굴조사에서 금동불상 한 구가 발견되었다지만 탑이 자리한 절터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고 현재는 대부분 과수원이다. 일각에서는 원효대사가 있었다는 화장사로 추정하기도 한다.

처음 보지만 자꾸만 눈에 익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석탑을 제법 자주 보면서 살았다. 옛날 편지 봉투에 찍혀 있던 날짜 도장, 그 동그라미 안에 있던 탑이 내화리 삼층석탑이다. 1974년 11월20일부터 1993년 1월3일까지 사용되었다고 하니 꽤나 긴 시간이다. 탑은 바람 한 점 없는 대지 위에 저 홀로 서 있건만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어진 고승처럼 온화하다.

◆ 노루목 넘어 대하리 소나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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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리 소나무. 산과 나무가 하나로 보인다. 수령 약 400년으로 천연기념물 제426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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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리 소나무 곁을 흐르는 금천. 비단 같은 천이다.
내화리에서 노루목 넘어 대하리로 향한다. 6·25전쟁 1년 전인 1949년 9월16일, 이 노루목 고개에서 공비와 경찰의 교전이 있었다. 그때 경찰서장과 경찰관 11명, 동로면장, 민간인 2명 등 15명이 순직했다. 길섶의 ‘경찰전공비’를 지나친다. 그때 순직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1954년 12월 문경군민의 이름으로 건립해 매년 추념제를 연다고 한다.

이제 자못 들이 넓고 마을이 크다. 대하리에서 금천은 대하리천과 합류해 연안 평야를 만든다. ‘대하리 소나무’ 이정표가 길 왼쪽에 큼지막하게 서 있다. 터가 넓다. 소나무는 너른 터를 앞에 두고 가장자리에 서있다. 아니, 앉아 있다고 해야 하나. 키보다 넓게 가지를 뻗어 마치 치맛자락 펼쳐 놓고 앉아 있는 것만 같다. 두 개의 우산을 맞대어 놓은 듯한 수형이라고 한다.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26호다. 높이는 6.8m, 수관 폭은 동서로 11m, 남북으로 12m,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대하리 영각(影閣)마을이다. 소나무 곁에 황희(黃喜) 정승의 영정을 모셨던 영각이 있었다고 생긴 이름이다. 황희의 후손인 황정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영각을 짓고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영각동제(影閣洞祭)’라는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 소나무는 장수황씨 사정공파 종중 소유다. 태풍 피해도 입고 솔잎혹파리 피해도 심하게 입었다는데 멋지게 살아남았다. 소나무 옆으로 금천이 흐른다. 천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마을 정자가 있다. 할머니들이 정자에 앉아 계신다. 고요해서, 살금살금 걷게 된다.

산북면 남쪽은 산양면이다. 몇몇 솔깃한 이정표와 풍경들을 만나지만 멈추지 않고 달린다. 금천도 달린다. 금천에 금두꺼비가 의젓하게 앉아 달리는 것들을 본다. 많이 웃었다. 두꺼비는 복을 가져다준다더니.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향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문경새재IC로 나간다. 901번 지방도를 타고 동로면으로 가 적성삼거리에서 59번 국도를 타고 남향하면 된다. 점촌 함창IC에서 내려 산양면에서 북향해도 된다. 내화리 삼층석탑 바로 앞, 대하리 소나무 앞에 주차할 수 있다. 산양면 금천의 금두꺼비는 금양교, 금산교, 황사교, 산양교, 존도2교 등에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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