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크로아티아의 분투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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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7   |  발행일 2018-07-17 제31면   |  수정 2018-07-17

초승달은 프랑스어로 ‘croissant’이다. 크로아상이란 빵도 초승달 모양이라 프랑스에서 그렇게 불렸다. 발칸 반도의 ‘크로아티아’ 국토 모양은 딱 초승달이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인가 하고 지레 짐작했지만 알고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말은 고대 슬라브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느 정도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은 1600년대 지금의 독일을 무대로 한 30년전쟁과 관계가 있다. 크로아티아 군대가 프랑스로 파견됐는데, 프랑스의 루이14세가 크로아티아 군사들의 목에 맨 붉은 천인 ‘cravate’를 보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붉은 천은 살아돌아오라고 크로아티아 군사들의 가족들이 매준 것이다. 이는 넥타이의 유래이기도 하다. 그런 크로아티아가 이번에는 시공(時空)을 달리해 2018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와 맞붙었다.

유럽은 숱한 민족이 뒤섞이며 도시국가, 봉건제후, 민족국가가 명멸해 왔다. 축구 특히 지역 간 클럽 대항전에 그렇게 열광하는 배경도 도시와 민족 간 끝없는 투쟁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는 분석이 정설이다.

월드컵 역사상 3번의 연장전 경기를 모두 이긴 최초의 팀인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외관상 강인함이 인상적이다. 경기 중에 웃는 모습도 거의 없다. 원래 발칸반도 쪽은 스포츠에 유능하다. 공산·사회주의 붕괴로 지금은 해체됐지만, 크로아티아가 속했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한때 티토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든 면에서 유럽의 중견 국가였다.

2 대 4란 골잔치 속에 분루를 삼켰지만 지구촌 축구팬들이 한달 내내 인구 410만명에 국토 면적이 경상도와 강원도를 합친 정도인 크로아티아를 주목했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을 껴안아주던 여성 대통령 콜린다 키타로비치가 새삼 부각됐고, 크로아티아가 세계적 관광지로 떠오를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대(對)러시아 8강전 승부차기를 TV로 보던 크로아티아의 소방관들이다. CCTV 영상인데, TV중계에 몰입하던 크로아티아 소방관들은 비상벨이 울리자마자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제히 일어나 장비를 챙기고 출동했다. 나라가 잘되려면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소박한 규정은 예나 지금이나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박재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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